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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추위 녹인 '나누는 기쁨'…쪽방촌 '온기창고'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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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구니에 담긴 먹거리(왼쪽)와 온기창고 방문 후 사랑방으로 향하는 쪽방촌 주민(오른쪽). 〈사진=김휘란 기자〉




" 형님! 좋아하는 거 많이 골라요"( 쪽방촌 주민 돕는 온기창고 관계자)

" 나눠 먹으려고 여러 개 담았어."( 쪽방촌 주민)

강추위가 찾아온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자리한 '온기창고 2호점'에는 그 이름처럼 따뜻한 기운이 내내 감돌았습니다.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들어오는 쪽방촌 주민들. 다양한 생필품과 먹거리가 가득한 이곳은 어떤 곳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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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창고의 생필품들. 〈사진=김휘란 기자〉




쪽방주민들만을 위한 '마켓'…포인트 나눠주고 물품과 교환



'온기창고'는 쪽방촌 주민들이 필요한 물품을 개인이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 가져가는 곳입니다. 서울 돈의동 2호점의 경우 일주일에 1만 포인트, 한 달에 총 4만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온기창고의 운영 주체는 서울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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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골라볼까?' 〈영상=김휘란 기자〉




털모자를 쓰고 온 71세 전종준 씨는 이틀 전에도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날은 샴푸와 보디로션, 김치라면을 구입했는데요. 오늘은 시리얼에 넣어 먹을 과일을 찾아보려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미 이틀 전, 일주일 할당량인 1만 포인트를 모두 써버린 전씨. 민망한 웃음을 짓는 전씨에게 직원들은 '추운 날 오셨는데 이거라도 가져가시라'며 귤 두 개를 꼭 쥐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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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전종준씨. 〈사진=김휘란 기자〉




발걸음을 돌린 전씨는 "요즘은 물가가 비싸서 샴푸 하나만 사려고 해도 1만원이 훌쩍 넘는데 그런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전씨는 다음 주에 오겠다며 "겨울에 필요한 것들을 좀 사둬야 할 것 같다. 유통기한이 긴 통조림 종류나 방한용품을 위주로 둘러볼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작지만 알차게…직접 고르고 사용하는 재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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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품목인 초코파이와 커피믹스가 있는 온기창고 진열대. 〈영상=김휘란 기자〉




쪽방촌 주민이자 자활근로자인 박상원 씨는 오가는 손님들을 한 명 한 명 정성껏 맞이했습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박씨에게 '오늘은 어떤 품목이 잘 나가느냐'고 묻자 "초코파이와 커피믹스가 인기 있다"고 답했습니다.

박씨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바구니도 들어드리고, 설명도 옆에서 계속 해드리고 있다"며 "그 외 대부분은 이곳에 와서 직접 물건을 고르고 포인트를 사용하는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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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히 물건을 고르는 쪽방촌 주민. 〈사진=김휘란 기자〉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온기창고에는 과자와 라면, 각종 반찬, 냉동식품, 김치 등 다양한 먹거리와 샴푸, 양말, 칫솔·치약, 세제, 두루마리 휴지 등 생필품이 알차게 구성돼 있었습니다.

72세 이찬원 씨는 "점심에도 라면을 먹고 나왔다"며 라면 한 봉지와 간편식 돼지국밥, 휴지가 든 장바구니를 보여줬습니다. 이씨는 "7년 정도 이 동네에서 살았는데, 필요한 것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돼 좋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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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돼지국밥' 〈사진=김휘란 기자〉




"나누는 기쁨 느껴요"…창고를 흘러나온 온기



음료 코너 앞을 한참 서성이던 64세 양순태 씨는 음료 6병을 골랐습니다. 오렌지 주스와 차, 커피를 종류별로 2병씩 담은 뒤엔 양말도 한 묶음 샀습니다. 이어 어딘가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는데요.

취재진이 '왜 음료만 여러 개 사셨느냐'고 묻자 양씨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나눠 마시려고 많이 샀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종류도 취향껏 각기 다르게 산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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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 6병과 양말 한 묶음이 든 양순태씨의 장바구니. 〈사진=김휘란 기자〉




'선생님께 배정된 포인트인데, (다른 분들도 각각 포인트를 배정받으실 텐데) 이렇게 혼자 다 쓰시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나눠 먹으면 더 좋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양씨는 이어 취재진에게 흔쾌히 길을 안내했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자 한 사랑방이 나타났고, 그곳에선 주민들의 식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따뜻한 밥과 국, 여러 반찬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랑방에서 매일 25~3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81세 조분돌 씨는 낯선 취재진에게도 '밥은 먹었느냐'는 인사를 먼저 건넸습니다. 양씨가 챙겨온 음료수 하나 하나에는 넉넉한 덕담이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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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에서 음료를 나눠 마시는 모습. 〈사진=김휘란 기자〉




쪽방주민 재활·자활사업 목표…후원·기부 함께



온기창고는 궁극적으로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의 '재활 및 자활사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직접 POS기(전자식 금전등록기)를 사용하고, 물품을 진열하면서 노하우를 습득하고 자부심을 주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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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돈의동에 위치한 '온기창고 2호점' 〈사진=김휘란 기자〉




앞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 온기창고 1호점'은 지난 8월 2일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10일까지, 100일간의 기록에 따르면 매일 200명 이상이 드나들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의 '온기창고 2호점'은 1호점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쪽방주민들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기부하는 '온기나눔 캠페인'이 함께 추진됐습니다. 여기에는 익명의 기부자가 직접 담근 김치 100㎏, 농사지은 쌀 100㎏, 액세서리, 통조림 등이 모였습니다.

이수연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쪽방촌 주민들이 온기창고를 통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세심히 살피겠다"고 전했습니다.



김휘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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