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청룡영화상 진행을 맡았던 배우 김혜수의 드레스. 2004년, 2006년, 2009년, 2013년, 2023년(왼쪽부터). /사진=스포츠조선 |
지난달 24일 열린 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MC로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김혜수의 드레스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금빛 오프숄더 드레스였다. 이는 캐나다 출신 디자이너 로모나 케베자의 드레스로 앤젤리나 졸리, 레이디 가가 등 세계적인 스타들도 즐겨 찾는 브랜드로 알려졌다. 작별 인사를 남기는 김혜수의 뒷모습 실루엣에 “살아있는 청룡 트로피 같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30년 동안 ‘청룡의 여인’이었던 김혜수. 1993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자 김혜수가 입은 드레스는 청룡영화상을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김혜수가 올해는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까’가 늘 화제였다.
배우 김혜수가 2021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드레스 피팅 후 포즈를 취하는 김혜수. /스포츠조선, 김혜수 인스타그램 |
‘인간 트로피’라는 별명에 걸맞게 김혜수는 가슴과 허리, 골반까지 꼭 맞게 감싸 몸매를 부각시키는 머메이드(Mermaid·인어) 라인의 드레스를 많이 입었다. 1990년대 앙드레김 스타일의 긴팔 드레스나 단정한 원피스가 대세이던 시절, 할리우드에서나 볼 법한 가슴골이 훤히 드러난 클리비지룩을 당당히 선보인 것도 김혜수였다. 2000년대까지 그는 허리 부분을 도려낸 드레스, 미니스커트, 시스루 드레스 등으로 파격을 거듭했다.
2004년에는 반짝이는 파란색 드레스에 30㎝ 위로 솟아오른 풍성한 헤어스타일로, 2013년엔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망사 상의로 화제가 됐다. 다음 해 시상식에서 MC 유준상이 “지난해 김혜수씨 의상 때문에 놀라신 분이 많다”고 하자, 김혜수가 “저 때문에 깜짝 놀라신 분께 죄송하다”고 웃으며 사과하기도 했다.
2003년 청룡영화상 당시 미니 스커트 드레스를 입고 온 김혜수. /스포츠조선 |
우리나라 시상식 드레스는 김혜수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후 여배우들의 드레스 경쟁이 치열해졌다. 노출이 심한 의상에 눈살을 찌푸리는 시청자도 있었고, ‘노출증 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도발적인 의상을 입는 이유에 대해 김혜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일할 때 점퍼 입는 데 이유가 따로 필요한가. 배우가 시상식에서 입고 싶은 드레스를 입었을 뿐이다. 옷은 자신의 취향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나와 다르거나 잘 맞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2010년대 중후반엔 노출이나 장식이 적은 미니멀한 블랙 드레스를 주로 선택해 카리스마를 뽐냈다. 2016년엔 쇼트커트 헤어스타일에 러플 블라우스와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고 나와 또 한 번 고정관념을 깼다. 최근 몇 년간은 우아하고 원숙한 매력을 강조하는 드레스들을 선보였다.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선 망토를 두른 듯 길게 늘어뜨린 시폰 소재의 청록빛 점프 슈트를 입고 나와 “역시 청룡 여신” “청룡을 입었다”는 반응이 나왔다.
화려한 드레스가 무대 위에 오르기까지 진땀 나는 돌발 상황도 있었다. 시상식 직전 드레스 지퍼가 고장 나 스타일리스트가 식은땀을 흘리며 바느질을 하거나, 레드카펫 도중 센 바람에 드레스 형태가 변형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밖에도 최고의 드레스를 선점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국내외 브랜드에서 의상을 공수하고, 수십 벌 피팅 후 체형에 맞게 수선하고,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찾는 일도 스타일리스트의 몫이다. 김혜수는 올해 시상식 후 소셜미디어에 “서른 번의 청룡상을 함께해준 모든 나의 스태프들께 존경과 감사를”이라며 정윤기·윤상미·이보람 등 국내 톱스타 패션을 도맡아 온 스타일리스트들에게 공을 돌렸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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