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뮌헨 필하모닉과 지난 26일(왼쪽 사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현재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스타 피아니스트 임윤찬(19)과 조성진(29)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주 간격으로 같은 곡을 연주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가진 두 천재의 연주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예매 시작 1분 만에 합창석까지 모든 객석 티켓이 매진됐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객은 복도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아예 낚시용 의자를 준비한 관객도 눈에 띄었다.
베토벤의 음악은 강한 투쟁 의지를 품은 영웅적인 드라마가 특징이지만 ‘베피협 4번’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장엄하면서도 사색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부드럽다. 협주곡 역사상 처음으로 오케스트라보다 피아노가 먼저 시작하는 파격을 시도한 작품이기도 하다.
임윤찬은 지난 26일 정명훈이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과 이 곡을 협연했다. 1악장에선 아이가 뛰어가듯이 가벼운 타건으로 출발했지만 곳곳에 무게를 싣고 공백을 만들며 독특한 흐름으로 이끌었다. 1악장 말미의 카덴차는 가을날 오후의 비처럼 맑으면서도 몽상적이었다. 카덴차는 악장이 끝나기 전에 오케스트라의 반주 없이 혼자 연주하는 구간이다.
2악장에선 뮌헨필의 현악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서도 오케스트라에 묻히지 않는 뚜렷한 존재감이 있었다. 짧은 악장이지만 처연한 정감이 뿌듯할 만큼 진하게 담겼다. 3악장에서 뮌헨필이 웅장한 소리로 기세를 올리자 임윤찬의 피아노도 이에 질세라 내달렸다. 임윤찬이 오른손을 점점 바삐 움직이면서 박동을 높여가자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뮌헨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뮌헨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 뒤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앙코르곡에선 임윤찬의 뚜렷한 주관과 독특한 해석이 한층 훤히 드러났다. 임윤찬은 리스트 ‘사랑의 꿈’ 3번을 골랐다. 후반부는 거의 편곡이라는 기분이 들 만큼 변주해 가슴이 저리는 황홀감을 안겼다. 평소 익숙한 곡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임윤찬은 어떤 틀에 가두기 어려운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커튼콜 때 첫 줄 관객이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장미를 내밀자 임윤찬은 꾸벅 인사하며 받더니 곧장 악장에게 건넸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조성진도 지난 12일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피협 4번을 협연했다.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와 귓속말하듯이 대화하면서 감정의 진폭을 점점 크게 열어갔다. 하지만 감정의 최고조에서도 결코 이성을 놓아버리지 않는 특유의 절제감은 여전했다. 1악장 카덴차는 조성진의 세밀한 기교가 쌓아올린 서정미가 투명하게 빛나는 명장면이었다.
2악장에선 장중한 관현악과 섬세한 피아노의 대비가 절정을 이뤘다.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베를린필은 단원 한 명 한 명이 명인급 연주자지만 음악을 과시하지 않았다. 조성진을 누르지 않고 단단하게 받쳐줬다. 3악장에서 베를린필이 장대한 행진을 시작하자 조성진은 손을 맞춰 함께 장대한 마무리를 연출했다. 조성진이 앙코르곡으로 선택한 리스트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04번에서 보여준 감흥도 선을 넘지 않았다.
조성진은 실수가 없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변화가 많고 속도가 빠른 난곡도 거의 실수하지 않는다. 베피협 4번에서도 깔끔하고 정확한 트릴(2도 차이 음 사이를 빠르게 전환하는 꾸밈음)이 돋보였다. 조성진의 정교한 기술은 이미 정평이 났지만, 감정적 표현력이 이성적 절제감과 절묘한 균형을 찾으면서 더 고급스럽게 진화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임윤찬과 조성진의 나이는 열 살 차이다. 공교롭게 조성진도 딱 임윤찬 나이였던 10년 전 ‘뮌헨필’과 ‘베피협 4번’을 한국에서 협연한 적이 있다. 이번 베피협 4번 협연에서도 드러나듯이 임윤찬과 조성진의 연주 스타일은 무척 다르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앞으로 한국에 뛰어난 연주자가 많이 나오겠지만 조성진과 임윤찬 같은 재능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진은 음악에 지적인 조망이 있고 매번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줍니다. 무대 위에서 아주 열정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하죠. 임윤찬은 어린 나이지만 작품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눈을 가졌고, 자유자재로 뛰노는 듯한 유희적인 연주를 보여줍니다. 작품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흥을 개성 있게 연주해요.”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의 강점으로 ‘안정’을, 임윤찬의 강점으로 ‘직감’을 꼽았다. “조성진은 철저하게 설계해 완벽하게 정제한 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한층 대범해지고 자유로워지면서 새로운 단계를 보여준 것 같아요. 임윤찬은 자신의 직감에 기대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연주를 합니다. 때로는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도 음악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죠.”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1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하고 있다. 빈체로 제공 |
임윤찬은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 조성진은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하면서 ‘K클래식’ 열풍을 이끄는 기수로 떠올랐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과 달리 한국은 젊은 관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임윤찬은 명문 클래식 음반사 ‘데카’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내년 봄에 공식 데뷔 앨범이 나온다. 조성진은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필 상주음악가에 선정됐다. 내년에 베를린필과 다양한 협주곡과 실내악을 협연한다.
황 평론가는 “조성진·임윤찬 신드롬은 ‘K클래식’에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대중이 클래식에 관심을 가진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스타 연주자에게만 편중된다면 독이 될 수 있어요. 클래식의 다양한 분야, 다른 장르나 악기도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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