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흐림 / 4.8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정지영 감독 “남들이 안 하니 사회비판영화 만들 수밖에“

한국일보
원문보기
영화 '소년들'로 공권력의 어둠 들춰
1982년 데뷔 감독으로만 만 41년 창작
"좋은 노장 많아... 나이로 판단 말길"
정지영 감독은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해 오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다음 영화는 4·3사건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J ENM 제공

정지영 감독은 “큰 계획을 세우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일들을 해 오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다음 영화는 4·3사건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J ENM 제공


노장은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영국 런던에서 받은 갈채의 여운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그의 새 영화 ‘소년들‘은 지난달 18일 막을 연 제8회 런던아시아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다. 감독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고, 평생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소년들’(1일 개봉)은 정지영(77) 감독의 17번째 장편영화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정 감독을 만났다.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슈퍼마켓 강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가 베테랑 형사 준철(설경구)의 노력으로 17년 만에 결백이 밝혀지는 세 소년의 사연을 그린다. 정 감독은 “잘 배우지 못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여 있던 소년들의 사정이 너무 딱해서 영화화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부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진범과 소년들이 함께 자리했던 모습이 준 영향도 크다”고 덧붙였다. '소년들'은 4일까지 18만여 명을 모았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2012) 이후 ‘남영동 1985’(2012), ‘블랙머니’(2019)에 이어 네 번 연속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의식적인 연출 행보로 보일 수 있으나 정 감독은 “남들이 안 하니 내가 만들 수밖에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눈길이 가는 여러 소재 중 남들이 영화화하지 않은 내용을 스크린으로 옮기다 보니 잇달아 사회 비판적 영화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민감한 소재라고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렸으나 세 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며 "사회비판영화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건 편견"이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한국의 켄 로치(사회 비판적 사실주의 영화로 유명한 영국 감독)'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 감독은 “적절치 않은 칭호”라고 말했다. “로치 감독은 실제 있었던 일을 정교하게 영화로 옮기지만 저는 장르적 특징과 재미를 활용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이유에서다. 정 감독은 스릴러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로 데뷔해 ‘위기의 여자‘(1987)와 ‘블랙잭’(1997) 등 장르 영화를 다수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 '소년들'. CJ ENM 제공

영화 '소년들'. CJ ENM 제공


감독으로 활동한 지 만 41년. 연출부로 1975년 영화계에 정식 입문한 시기로만 따져도 만 48년을 영화인으로 살았다.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영화계와 세상은 급변했다. 그사이 정 감독은 “지금이면 제작비 200억 원은 들어갔을" ‘하얀전쟁‘(1992)을 태국에서 촬영했고, 연예계 실태를 그린 논쟁적인 영화 ‘까’(1998)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 감독은 영화 인생 최대 변곡점으로 빨치산을 정면에 내세운 ‘남부군‘(1990)을 꼽았다. 그는 “이전 연출작 ‘거리의 악사’(1987)는 심의로 10분이 잘려 나가 이야기 연결이 잘 안 됐다“며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남부군‘을 만들 수 있게 돼 시대 변화를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함께 했던 동료들은 현업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정 감독은 국내에서 메가폰을 쥐고 있는 영화인 중 가장 나이가 많다. 그는 “저보다 능력 있는 노장 감독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건 한국 영화계의 손해“라며 “투자사들이 감독을 나이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세태를 꼬집었다. 정 감독은 최근 불거진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외 영화제에만 나가도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이 여전히 뜨겁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며 “어렵게 이뤄놓은 부흥기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조세호 유퀴즈 하차
    조세호 유퀴즈 하차
  2. 2자매다방 이수지 정이랑
    자매다방 이수지 정이랑
  3. 3최재영 목사 디올백
    최재영 목사 디올백
  4. 4박나래 갑질 의혹
    박나래 갑질 의혹
  5. 5황희찬 벤치 울버햄튼
    황희찬 벤치 울버햄튼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