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없는 소녀’가 국내 언론에 첫 공개된 현장. 사진=정희원 기자 |
“(뱅크시에게) 당했다!”
작품이 망가졌는데 오히려 더 귀하신 몸이 됐다. 작품 가격은 무려 300억. 베일에 싸인 영국의 아티스트 뱅크시의 ‘풍선없는 소녀’는 지금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 와 있다.
2018년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가 104만 2000파운드에 낙찰된 순간이었다. 작품이 손쓸 새도 없이 절반이 파괴됐다. 소녀의 얼굴과 풍선을 향한 손이 프레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됐다. 이는 작가의 의도였다. 뱅크시는 액자 속에 분쇄기를 장치해 낙찰 순간 분쇄기를 원격 가동,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망가뜨렸다.
뱅크시의 '풍선없는 소녀'(Girl without Balloon, 2021). |
경매를 주최한 소더비는 물론 그 자리의 모두가 경악했다. 이후 이 사건을 ‘뱅크시당했다(Banksy-ed)’고 회상했다. 낙찰받은 사람은 반쯤 잘려 나간 상태의 그림을 그대로 구매하며 “미술사에 남을 일”이라고 기뻐했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혼란스러운 소더비와 관계자들, 세계 미술계의 주목. 이후 풍선과 소녀는 미술의 가격 가치의 평가를 주제로 열띤 논쟁을 일으키는 작품의 리스트의 상단에 오르게 됐다. ‘지루함, 지루한 예술을 혐오한다’는 뱅크시다운 행동이라는 평도 있다.
이 작품은 다시 ‘사랑은 쓰레기통에’로 이름을 바꾸고 2021년 경매에 재등장한다. 무려 1870만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304억원)에 낙찰됐다. 뱅크시 작품 사상 최고가 거래 기록을 쓴 것.
이 작품을 국내서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작품명 대신 ‘풍선 없는 소녀’라는 새 이름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만난 소더비의 닉 버클리 우드 세일즈 디렉터는 언론을 대상으로 “전시를 준비하며 뱅크시 스튜디오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2021년을 기점으로 작가가 작품 제목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며 “새로운 제목으로 공개하는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닉 버클리 우드 소더비 세일즈 디렉터가 이번 전시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
소더비는 아시아 진출 50주년을 맞아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러브 인 파라다이스: 뱅크시 앤 키스 해링’ 전시를 펼치고 있다.
뱅크시의 주요 작품 여러 점도 함께 한국을 찾았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며 시작된 미국의 ‘플라워 파워’ 운동에서 모티브를 따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든 인물이 등장하는 ‘사랑은 공중에(Love is in the Air. 2006)’ ▲키스 해링의 ‘짖는 개’ 이미지를 차용한 스텐실 벽화 ‘무기를 고르시오(Choose Your Weapon. 2009)’ ▲기폭장치를 들고 폭파의 의지를 드러내는 듯한 원숭이를 그린 ‘멍키 디토네이터(Monkey Detonator. 2000)’ 등 19점이 기다린다.
관람객이 뱅크시의 ‘사랑은 공중에’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
뱅크시의 '멍키 디토네이터'(Monkey Detonator, 2000). |
뱅크시가 영향을 받은 키스 해링의 작품 13점도 함께 왔다. 32세에 요절한 키스 해링(1958~1990)은 뉴욕 지하철 낙서에 그치던 그래피티를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 작가다. 걸어 다니는 하트, 많은 사람이 북적북적 춤추는듯한 그림, 강아지 등의 이미지는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수많은 브랜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친숙한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업용 비닐 방수포에 그린 1984년작 ▲해링을 대표하는 ‘빛을 내는 아기’ 이미지를 크게 그린 1981년작 ▲함께 모여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로 길이 6m 규모의 대작(1985) 등 13점을 만나볼 수 있다.
키스 해링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 사진=정희원 기자 |
빛나는 아기와 강아지 등을 무던히 반복해 그리던 해링. 해링은 “개는 동물과 영혼의 대변자이고 아이는 원초적 인간의 이미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작품 제목도 대부분 ‘무제(untitled)’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느낌은 보는 사람 몫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키스 해링의 무제(Untitled, 1984)키스해링의 재단. |
키스 해링의 무제(Untitled, 1985)키스해링 재단. |
전동휘 파라다이스시티 아트디렉터는 “두 작가의 작품을 매개로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한 인류에 대한 메시지를 전시 주제로 담았다”고 소개했다.
전시는 파라다이스시티의 예술전시공간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서 이어지는 중이다. 파라다이스시티 측은 “뱅크시 스튜디오가 이번 전시를 공인한 조건은 ‘무료 관람’이었다”고 전했다. 오는 11월 5일까지.
인천=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인천=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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