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흐림 / 20.1 °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日 애니 거장 미야자키 ‘바람이 분다’, 멜로에 숨겨진 침략 전쟁의 합리화

헤럴드경제 이형석
원문보기
댓글 이동 버튼0
무서운 살육 기계가 아닌 완벽한 비행체를 향한 그의 열정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의 꿈은 수많은 이들에겐 악몽이 됐다. 그의 꿈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바람이 분다’를 두고 일어나는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 일본 정계와 사회가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가운데, 군국주의 및 침략전쟁 미화 논란에 휩싸인 ‘바람이 분다’가 국내 개봉(9월 5일)을 앞두고 29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최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나서서 글과 인터뷰를 통해 아베 정권을 비판한 일이라든가 위안부에 대한 사과 및 보상을 촉구한 행보에서 보듯, 이 영화는 일본 내 극우세력의 입장과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특유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멜로드라마와 ‘중립’을 가장한 반전평화 메시지 속엔 과거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강한 일본’, ‘기술의 일본’에 대한 향수와 지향도 작품 전반에 깔려 있다. 적어도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이 침략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며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주변국들의 주권을 유린했던 시대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청년의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졌던 낭만의 시간으로 추억하고, ‘기술 입국’이라는 일본의 꿈이 태동했던 신화의 시간으로 불러낸다. 대량살상의 핏자욱을 원색의 아름다운 동화로 채색하고, 무차별적인 파괴와 폭력의 시대를 꿈과 열정, 창조의 시간으로 대체한 ‘바람이 분다’를 아련한 감성의 멜로 드라마로 받아들일 것인가, 일본의 우경화를 합리화하는 정치적 텍스트로 읽을 것인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바람이 분다’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완벽한 비행체를 만들려했던 한 청년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소년시절부터 비행에 대한 꿈을 갖고 있던 주인공 ‘지로’가 비행기 설계자로서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과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던 한 소녀와 만나고 헤어지며 이뤘던 사랑을 그렸다. 그 주인공은 영화의 마지막 헌정사에 나오듯, 실존인물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다. 그는 대학졸업 후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꼽히는 미쓰비시중공업에 입사해 비행기 설계팀을 이끌며 2차 대전 당시 일본 해군 주력 전투기 ‘제로센’을 개발했다.

영화는 전쟁 장면이 그려지진 않는다. 다만, 한 기술공학자에겐 아름다운 꿈인 비행기가 현실에선 살육과 파괴의 기계가 되는 아이러니가 거듭 언급된다. 극중 지로가 우상으로 꼽는 이탈리아의 항공설계가인 카프로니는 주인공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서 “전쟁이 끝나면 폭탄 대신 손님을 싣는 여객선을 만들 것”이라는 꿈을 그린다. 지로 역시 미쓰비시에서 정부의 위탁을 받아 비행기를 설계하면서 “과연 일본은 누구와 전쟁을 벌이려는 것일까?”라고 회의하며 영화는 반전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듯 하지만,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라거나 “피라미드(살육과 파괴를 상징)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중에서 고르라고 한다면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할 것”이라며 전쟁에 동원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긍정한다. 뿐만 아니라 지로는 “우리 나라는 왜 가난할까”라며 동료와 함께 기술로 조국을 일으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거듭 보여준다. 미쓰비시는 전범 기업이 아니라 당시 청년들이 기술입국, 조국 근대화를 위해 꿈과 열정을 바쳤던 곳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카프로니가 “설계자로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10년을 바쳤지만 그 끝은 너덜너덜했다, 나라가 망했으니까”라고 말하거나, 지로가 “내 비행기를 탄 이들이 한 대도 안 돌아왔다”는 쓸쓸한 고백을 할 때, 이 말은 ‘반전의 메시지’보다는 단지 조국 패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친절하며, 헌신적이며, 기계공학에 관한 집착을 가진 ‘모범적인 일본인’인 주인공은 그래서 차라리 극악한 전범보다 더 위험해 보인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 헤럴드 생생뉴스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장우 카레집 폐업
    이장우 카레집 폐업
  2. 2전국 눈비 소식
    전국 눈비 소식
  3. 3가자지구 구호선 나포
    가자지구 구호선 나포
  4. 4전진 류이서 2세
    전진 류이서 2세
  5. 5전진 류이서 2세 계획
    전진 류이서 2세 계획

헤럴드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