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튀르키예 STM의 자폭 드론 카르구. 위키피디아 |
카르구는 4개의 회전 날개가 달린 쿼드로콥터형 드론이다. 길이와 폭이 각각 60㎝며, 높이는 43㎝다. 최대 속도는 시속 72㎞. 1.3kg의 탄두를 싣고 5~10㎞ 밖 적 목표에 돌진해 파괴하는 무기다. STM은 10개국 이상에 수출한 실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잠깐. 콧대 높기로 유명한 일본이라니. 그것도 튀르키예 드론에 관심을. 세상에 이런 일이.
일본은 ‘갈라파고스화’로 잘 알려졌다. 일본 자위대의 무기체계도 나름의 갈라파고스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던 자위대가 최근 국산이나 국내 면허생산만을 고집하지 않고, 해외 무기체계를 수입하고 있다. 그러던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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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떨어져 쇠락하는 갈라파고스화
갈라파고스화(Galapagos Syndrome)는 기술ㆍ서비스 등이 국제 표준에 맞추지 못하고 독자적 형태로 발전하면서 세계 시장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갈라파고스는 적도 근처 태평양의 에콰도르령 제도다. 남아메리카로부터 서쪽으로 1000㎞ 떨어졌기 때문에 고립된 환경에서 동식물이 다르게 진화하면서 고유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PM-9 기관단총을 메고 있는 일본 육상자위대 제1공정단. 위키피디아 |
갈라파고스화는 게이오(慶應)대 교수 출신의 기업인인 나츠노 다케시(夏野剛)가 2007년 처음 내놓은 개념이다. 일본은 기술적으로 앞선 휴대폰을 개발했지만, 수출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수시장이 컸기 때문에 해외시장에 눈을 돌릴 만한 동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주도권을 점점 잃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고유종이 면역력이 약해 외래종에 밀려 멸종하듯, 일본의 휴대전화 산업은 애플 등 외국업체에 밀렸다는 의미다.
일본 방위산업의 갈라파고스화는 맥락이 좀 다르다. 일본 자위대는 무기를 가급적 국산을 쓰려고 한다. 전수방위(專守防衛·오로지 방어만 한다) 원칙에 따라 일본 전용 무기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무기는 자국에서 면허생산하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일본 방산업체의 이익을 보장해주려는 ‘카르텔’ 때문이다. 결국 직접 수입하는 것보다 가격이 몇배 더 오른다.
그러다 보니 일본 무기체계는 단가가 높다. 무기는 양산 단계에서 가격이 내려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일본 무기는 비싸기 때문에 예산 부족으로 찔끔 생산하게 되고, 그 결과 단가하락이 어렵다. 전 부대에 배치하는 것도 부지하세월이다. 어느 정도 배치하다 보면 이미 구식 무기가 됐다.
일본 육상자위대의 9㎜ 기관단총인 PM-9이 대표적이다. 명중률이 낮고 개머리판이 없어 제어가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도 1정의 가격은 40만엔이다. 89식 소총(28만엔)보다 비싸다.
일본 해상자위대 3등해좌(해군 소령) 출신의 군사 저널리스트 몬타니 수초(文谷數重)는 지난 7월 닛칸겐다이(日刊現代) 기고에서 “일본 무기는 성능은 떨어지는데 가격은 세계 최고”라면서 “방위 당국은 값싸고 성능 좋은 외국산 무기가 있어도 사지 않고 국내 방위산업을 보호한다며 값은 비싸면서 성능은 떨어지는 국산 무기를 구매해 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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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헬기가 전투기만큼 비싸진 까닭
일본 육상자위대의 공격헬기 AH-64는 또 다른 사례다. 일본은 2001년 AH-64D 아파치 헬기를 64대를 배치하려고 했다. 국내생산을 한다며 생산라인을 새로 만들었다. 한 대 당 가격이 216억엔으로 훌쩍 뛰었다. 2000억원이 넘는 가격이다. 전투기 1대 수준이다. 게다가 일본의 AH-64D는 생산 시점 이미 구형이 됐다. 미국과 한국은 더 신형인 AH-64E를 배치했다. 방위성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13대만 산 뒤 2008년 사업을 중지했다. 금싸라기 같은 AH-64를 사고로 1대 잃기도 했다.
일본 육상자위대 공격헬기 AH-64D 아파치. 위키피디아 |
그래서 일본은 지난해 12월 방위력 정비계획에서 공격헬기와 정찰헬기를 모두 폐기하고 드론과 무장헬기로 공백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튀르키예가 일본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배경이다.
지난해 9월 튀르키예의 메블뤼트 카부소글루 외무장관은 도쿄(東京)에서 자국의 군사용 드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자국 기업들이 일본에 무장 드론을 판매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튀르키예에 따르면 튀르키예 주재 일본 대사가 튀르키예 드론 생산 시설을 방문했고, 일본 자위대 군사정보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전시회에 STM의 카르구 모형이 전시됐다.
일본이 달라졌다. 이제 국산이나 국내 생산을 버릴 줄도 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안보환경이 급박하게 바뀌고 있는데 국산만 찾다 보면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걸 일본이 깨달았다”면서 “개발 비용과 생산 비용이 너무 오르다 보니 일본 방산기업들이 방산을 포기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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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총과 기관총을 직수입하는 일본
일본의 갈라파고스화 탈출이 가장 활발한 곳은 총기다. 지난 7월 차기 5.56㎜ 기관총으로 벨기에 미니미 Mk3를 선정했다. 그것도 국내에서의 면허생산이 아닌 직수입 방식이다.
일본 육상자위대 대원이 기관총을 발사하고 있다. 이 5.56㎜ 경기관총은 1993년부터 벨기에 FN의 미니미를 일본에서 면허생산한 것이다. 최근 일본은 이 기관총의 최신형을 벨기에서 직접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미 육군 |
사정은 이렇다. 일본은 1993년부터 미니미를 벨기에의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생산했다. 그런데 2013년 제조사인 스미토모(住友) 중공업이 품질검사를 조작한 게 드러났다. 2017년 원래 계획보다 800정이 모자란 4922정에서 조달을 중지했다. 스미토모는 5개월 납품중지와 6200만엔 벌금이라는 가벼운 처분만 받았다.
2021년 3월 스미토모가 기관총 사업 전면 철수를 선언했다. 방산의 수익성이 낮고, 스미토모가 개발 중이던 신형 기관총의 도면 일부가 중국으로 유출됐기 때문이었다. 스미토모는 5.56㎜ 말고 장갑 차량에 다는 7.62㎜와 12.7㎜ 기관총도 만들고 있었다. 이들 기관총도 직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권총도 2021년 미국 시그사우어(지크자우어)의 P210 면허생산에서 2020년 독일 H&K의 SFP9 직수입으로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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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된다며 방산을 포기한 고마쓰
지난 8월 핀란드 국영 방위사업체 파트리아 그룹은 일본 제강소(日本製鋼所)와 AMV XP 차륜형 장갑차 제작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제강소가 파트리아 그룹의 지원을 받아 AMV XP를 생산하게 된다.
일본이 도입하려는 핀란드의 차륜형 병력수송장갑차 AMV XP. 파트리아 |
세계적인 자동차 대국인 일본이 차륜형 장갑차를 경쟁 입찰을 거쳐 해외 제품을 선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차륜형 장갑차는 기술 장벽이 낮다. 일본은 96식 차륜형 장갑차를 이미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96식을 육상자위대에 납품했던 고마쓰(小松)가 2017년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방산을 아예 포기했다. 고마쓰는 건설기계 시장의 강자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 대신 차륜형 장갑차를 개발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방위성은 국제 경쟁입찰에 부쳤다. 미쓰비시 외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랜드시스템(GDLS), 핀란드 파트리아가 입찰에 참가했고, 2022년 12월 파트리아가 선정됐다.
AMV XP는 길이 8.4m, 높이 2.4m, 폭 2.8m, 무게 17t에 최대 속도는 도로에서 시속 100㎞다. 후방에 8~12명의 보병을 실어 나를 수 있으며, 병력실에 의자를 빼고 의무후송용 들것을 들이면 의무수송형으로 쓸 수 있다. 12.7㎜ 기관총을 탑재했고, 필요할 경우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발사대를 올릴 수 있다. 슬로바키아ㆍ남아프리카공화국ㆍ폴란드ㆍ크로아티아ㆍ슬로베니아ㆍ아랍에미리트 등이 도입했다.
육상자위대는 2020년 19식 차륜형 155㎜자주포를 배치하기 시작하는데, 이 자주포의 차체는 독일 MAN의 KAT1A1 트럭이다. 원래 자국산 차량을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비용 절감 목적으로 직수입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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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갈라파고스화를 경계해야
최현호씨는 “일본이 그동안 고집해온 국산화 정책을 버린 것에는 일본 방위산업이 원하는 새로운 무기를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며 “특히, 드론은 일본은 소형 헬리콥터형 드론을 개발한 경험이 있을 뿐, 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중대형 드론 같은 것을 연구 개발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육군의 K2 혹표 전차. 파워팩 국산화가 차질을 빚으면서 양산 계획이 많이 늦춰졌다. 육군 |
국산화가 늦어질 경우 전력 도입도 상당히 지연하게 된다. 그러면 전력에도 영향이 미친다. 한국도 K2 전차 파워팩 사업이라는 아픈 경험이 있다.
전차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파워팩은 엔진과 변속기를 하나로 묶어 만들었다. 전차가 이동하다가 엔진이나 변속기가 고장 날 경우 파워팩만 새것으로 갈아주면 재빨리 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2 전차의 파워팩은 독일제인데 이를 국산화하기로 했다. 그런데 변속기가 육군이 요구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양산 일정만 미뤄졌다.
최현호씨는 “우리도 도입 사업을 면밀히 검토해 긴급한 사업은 직도입하고, 그 후 대체품을 국내에서 개발 도입하는 것으로 분리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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