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제출한 이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142쪽 분량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2018년 12월 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비서 출신인 A씨에게 직접 전화해 자신의 공직선거법 사건에 증인으로 나서달라고 부탁하면서 수차례 ‘허위 증언’을 요구한 정황을 13쪽에 걸쳐 설명했다.
이 대표는 변호사 시절인 2002년 KBS <추적60분> 최모 PD와 ‘분당 백궁 파크뷰 특혜 의혹’을 취재했는데, 최 PD가 김 전 성남시장에게 전화해 검사를 사칭하며 입장을 물었다. 당시 이 대표는 최 PD가 김 전 시장과 통화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추가 질문 사항 등을 전달했다. 이 사건으로 이 대표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는데, 이후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회에서 이에 대해 “검사 사칭을 도운 누명을 썼다”고 허위 발언을 한 혐의로 2018년 기소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 대표는 재판에서 “이 사건은 김병량 전 성남시장이 재선에 방해되는 이재명을 강하게 처벌하기 위해 KBS 측과 모의해 실제 검사 사칭을 한 최 PD에 대한 고소를 취소하는 대신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아간 사건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발언은 단순히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김병량과 KBS가 최 PD에 대해서만 고소를 취하하기로 하는 협의가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이에 과거 김 전 시장의 비서를 지냈던 A씨를 증인으로 내세울 계획을 세웠다. A씨는 당시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의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검찰은 이 대표가 2018년 12월 22일 A씨와 직접 통화한 녹음 파일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 대표는 A씨에게 “시(김병량 측), KBS 측하고 얘기해서 내가 주범인 걸로 해주면 고소를 취소해주기로 합의가 있었던 걸로 내가 기억하거든요”라고 했다. A씨는 “뭐 크게 저기한 기억도 잘 안 납니다. 사실은 안 나는데 아무튼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자신은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어쨌든 KBS하고 우리 시장님(김병량)하고는 실제로 얘기가 좀 됐던 건 맞아요” “전부 다 이해관계가 일치되는, 나에게 덮어씌워야 도움이 되는 사건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A씨에게 자신의 주장을 주입하는 듯한 말을 했다고 한다.
A씨가 “어떤 취지로 저길(증언을) 해야 되는 지를…”이라며 묻자 이 대표는 “내가 변론요지서를 하나 보내드릴게요. 텔레그램 써요?”라며 자신의 변론요지서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표는 이틀 뒤인 같은 달 24일 A씨에게 재차 전화해 “최 PD에게는 고소를 취하해준다고 약속을 미리 했던 거고, 기억하세요 혹시?”라고 물었다고 한다. A씨는 이때도 “김병량 측이 최 PD에게 고소 취하를 약속했다는 내용은 모르겠다”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구체적인 내용은 알 필요도 없고, 십수 년 지난 일 정확히 알 수도 없지만, 그때 당시에 KBS 측하고 성남시 측하고 그런 식의 협의나 논의가 많았다,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 정도를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며 증언을 재차 요구했다. A씨는 “애매한 게 제가 그때는 밖에 먼저 나와서, 내부에서 사실 누가 KBS랑 연결됐는지 모르겠는데 일정이 애매할 수 있을 거에요”라고 했다. A씨 자신은 김 전 시장의 선거 지원을 위해 외부 선거캠프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성남시 내부에서 일어난 일은 잘 알지 못한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며 증언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이 대표의 반복적인 요구를 받은 A씨는 “수시로 말씀하시면 잘 인지해서(증언하겠다)”라고 답했다.
A씨는 이후 자신의 기억이 아닌 이 대표가 보낸 진술요지서를 토대로 진술서를 작성했고, 이를 경기도 비서실장 B씨에게 전송했다. 그러자 B씨는 ‘좀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써달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A씨는 이 대표와 통화 녹음을 들으면서 ‘김병량 시장이 고소 취하 문제를 상의했다’ 등의 내용을 추가해 재차 진술서를 전송했다. 그러자 B씨는 “수고했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후 이 대표는 자신의 변호인과 A씨를 연결해줬고, 변호인을 통해 A씨에게 변호인 증인신문사항을 미리 보내 질문 내용을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A씨는 당초 2019년 1월 24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A씨는 자신의 증언이 과거 자신이 모시며 존경해 왔던 김병량 전 시장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재판 당일 ‘도저히 출석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입장을 B씨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후 A씨는 고민 끝에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로 마음 먹고, 정진상씨 등에게 “차후 지정된 기일에 출석할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A씨는 다음 달 14일 열린 이 대표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대표 측의 변론 요지에 부합하는 증언을 했다. 이 대표는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는데 A씨 증언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최근 검찰에서 “이 대표 요구로 기억에 없거나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진술했다”며 위증 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에 “이 대표가 도지사라는 우월적 권력을 이용해 매우 계획적이고 집요한 방법으로 위증을 교사했다”면서 “실제 A씨의 위증이 재판 결과에 영향을 끼친 점 등을 고려할 때 위증교사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적시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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