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이민정책 교과서’ 캐나다, 시크교도 총격 피살 사건 번지자 인도 외교관 추방

인도로부터 독립 외친 시크교 운동가
지난 6월 캐나다서 총격 살해 당하자

트뤼도 총리 “인도 정부가 사건 배후”
FTA협상 중단·인도 정보국 책임자 추방

캐나다 보좌관 “양국 관계 악화될 것”
18일 인도 정부는 “터무니 없어” 반박

쥐스탱 트뤼도(왼쪽) 캐나다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출처=각각 X 계정

‘다문화 정책 선진국’으로 평가 받아온 캐나다가 자국 내 시크교 분리주의 지도자 피살 사건에 반발해 인도 외교관을 추방했다. 캐나다와 인도는 올해 3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10년 만에 재개했지만 이후 피살 사건이 발생해 파장이 커진 것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식는 분위기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우리 영토에서 분리주의 시크교도 지도자가 살해 당한 것과 관련해 인도 정부 요원이 배후라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에 대해 인도 측은 반발하는 모양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트뤼도 총리는 수도 오타와 소재 연방 하원 연설에 나서 “우리 보안 당국 보고를 들은 결과 캐나다 국적의 하딥 싱 니자르 피살 배경에 인도 정부 인사가 개입됐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면서 “캐나다 땅에서 발생한 캐나다 시민 살인 사건에 외국 정부가 개입한 것은 우리 주권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사항이며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언성을 높였다. 현지 CBC 뉴스는 트뤼도 총리가 이날 자국 야당 인사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사건 전말에 대해 설명했고 앞서 가까운 동맹국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등에게도 사안을 알렸다고 이날 전했다.

한편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부 장관도 “인도 고위 외교관 추방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추방 대상으로 캐나다에 파견된 파반 쿠마르 라이 인도 대외정부기관(RAW) 책임자를 지목했다.

반면 같은 날 저녁 인도 정부는 니자르 살인 사건과 관련해 인도 당국이 배후라는 캐나다 측 주장은 ‘터무니 없다’는 입장을 냈다.

빠르게 식은 캐나다-인도 관계

니자르 피살 사건을 둘러싼 캐나다와 인도 간 관계는 이달 들어 눈에 띄게 냉각됐다. 지난 10일, 트뤼도 총리는 주요20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인도 뉴델리를 찾은 자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지만 모디 총리는 되려 “캐나다 내 시크교도들의 분리주의 운동을 막아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BC는 당시 캐나다 측 대표단이던 조디 토마스 캐나다 국가안보보좌관은 G20 회의 이후 인도를 떠나 캐나다가 아닌 영국 런던을 찾아 영국 측에 “캐나다는 니자르의 죽음과 인도 정부가 관련됐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확보했으며 이로 인해 캐나다와 인도의 관계는 더 악화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달 15일에는 캐나다와 인도 간 FTA 협상이 잠정 중단됐다. 캐나다는 오는 10월 인도에 보내려던 자국 FTA 협상단 파견을 취소한 상태다.

양국 관계가 냉랭해진 시점은 올해 6월 이후다. 지난 6월 18일 니자르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 서리 시 소재 시크교 사원 밖에서 무장 괴한 총격을 받고 사망했고 이를 두고 시크교도들이 반발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됐다. 시크교 대표 이익단체인 세계 시크교 캐나다 지부는 “니자르는 사망 이전부터 생명 위협에 시달렸으며 다른 교도들도 비슷한 압박을 받아왔다”고 반발했으며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는 시크교도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현재 캐나다에는 140만~180만 명의 인도계 캐나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다수가 시크교도다. 인도는 시크교도 분리주의 운동단체가 캐나다에서 활동한다는 불만을 표해왔다. 이밖에 인도 정부는 칼리스탄(시크교도들만을 위한 독립국가) 운동 지도자로 유명한 니자르를 무장 분리 단체 소속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기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캐나다는 다양성과 공존을 가치로 내세워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펴왔다. 인도에 반대하는 시크교 뿐 아니라 중국에 반대하는 홍콩인들도 캐나다 이민 정책을 발판으로 흘러 들어 반(反)중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1984년 6월 블루스타 작전을 통해 시크교도들의 분리독립운동을 무장 진압한 인디라 간디 당시 총리는 같은 해 10월 31일 살해 당했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 최초 여성 총리로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다.

시크교도들은 힌두교 민족주의를 우선하는 인도 정부를 피해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후 외국에서 칼리스탄 운동을 벌여왔다. 지난 1984년 시크교도들은 인도 서북부 펀자브 지역에 있는 시크교 최대 성지인 암리차르 황금 사원에 모여 칼리스탄 농성에 들어갔지만 당시 ‘인도 첫 여성 총리’로 주목받던 인디라 간디는 공수부대를 투입해 무장 진압했다. 당시 진압 작전을 블루스타 작전으로 부른다. 시크교는 이슬람과 힌두교가 융합된 종교로 개인적인 수양과 해탈을 강조하지만 지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분할된 것을 기점으로 인도로부터의 분리독립 운동을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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