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지난해 10월 SPL 평택 공장의 20대 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강동석 SPL 전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검찰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SPL에서는 끼임 사고가 12건이나 발생했다.
SPL은 삼립, 샤니, 파리바게뜨 등의 여러 제빵업체를 거느린 SPC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SPC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샤니 성남 공장의 50대 노동자가 반죽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다. 경제신문들은 이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지 않거나 단신으로 처리했지만, 성의 있는 기사를 내보낸 언론도 적지 않았다.
SPC샤니 끼임 산재사의 재구성..."위험 구역에 들어가게 둬"(23.08.26 한겨레21)
"리프트 위험 알고도 대책 없던 샤니, 산업안전법 위반"(23.08.22 한국일보)
3년간 산재 568명 "SPC 허영인 조사하라"...1000억 투자는 말뿐이었나(23.08.31 경향신문)
[단독]SPC 끼입사고 12건 반복..."안전장치 있는데도 설치 안 해"(23.09.14 한겨레)
SPC는 의무설치 아니라는데...경쟁사는 안전장치 '풀가동'(23.08.16 디지털타임스)
사람 목숨 바쳐 빵 굽나...SPC, 4년간 산재사고 759건(23.09.06 뉴스로드)
<뉴스로드> 보도에 따르면 지난 4년간 SPC그룹의 공장에서 빵을 굽다 죽거나 다쳐 산재 승인을 받은 건수만 759건이다. 유독 SPC그룹의 공장에 산업재해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디지털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사고가 발생한 샤니 공장의 반죽 기계와 비슷한 기계가 설치된 경쟁사들의 공장에서는 리프트가 상승하거나 하강할 때 자동멈춤장치(CJ푸드빌) 또는 자동안전장치(신세계푸드)가 가동되고 있었다.
안전장치 문제와 함께 장시간 노동의 문제도 지적되어야 한다. 지난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SPL 평택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일했고, 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샤니 성남 공장도 똑같은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돌아갔다. 지난해 사망사고는 야간근무 종료를 1시간여 남겨둔 아침 시간대에 발생했다. 샌드위치 라인의 배합기 앞에서 강도 높은 밤샘 노동을 하고 나서 노동자의 피로가 가중된 상태였을 것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후에도 해당 생산 라인의 근무시간은 그대로라고 한다.
1년 내내 사람을 구하는 공장
SPC그룹의 빵공장들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에 소속된 SPL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빵은 너무나 잘 팔리는데 직원들의 상여는 줄였고, 빵 생산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근무를 강행하며, 직원들이 다치면 산재 (신청)하는 것을 눈치 보게 하는 회사의 모습을 보며 저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SPL에 2020년 11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를 만들었습니다." 2022년 '노후설비특별법 제정! SPC 노조파괴 분쇄! 화섬노동자 결의대회' 현장에서 나온 SPL 노동자의 발언이다.
SBS <모닝와이드>에서 소개한 성남 샤니 공장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했던 A씨의 증언은 더욱 생생하다. "휴식시간도 거의 3시간에 5분, 10분 이렇게 주다 보니까 업무는 너무 빠르고, 모든 게 컨베이어식으로 되어 있다 보니 빵이 몰려오면 무조건 해야 해요." 샤니 성남 공장의 노동 강도가 매우 높고 휴식시간은 짧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A씨는 공장의 안전교육이 40명을 세워놓고 관리자가 A4 한 장을 들고 '자, 봤죠?' 하면서 사진만 찍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관리자로 일했던 동남아 식품공장도 그렇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베트남이나 파키스탄도 이렇게 안 해요.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내가 정말 잘못하면 여기 죽을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을 다 하죠."("샤니 공장, 다칠까 봐 관뒀다"…'안전불감증' 증언, 22.10.16. SBS <모닝와이드>)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통해서도 SPC 공장의 노동환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다음은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의 '유머 게시판'에 2022년 10월 23일자로 올라온 '고전 SPC 빵공장 취업 알바 후기 모음'이라는 글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1. 10명이 들어와서 하루만에 9명이 전부 도망감
2. 100명이 들어가면 1명만 버팀... 그 1명도 한 달 뒤 퇴사
3. 해병대 출신이 이정도야 하며 들어왔다가 반나절 만에 도망
4.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쉬지 않고 일함. 쉬는 시간은 3시간에 5분;;;밥시간 20분;;;
5. 어떤 글 보니 오후 3시에 출근해서 그다음 날 8시에 퇴근;;;; ㄷㄷㄷ
6. 말로는 휴일 있다고 적어놨지만 실제로는 주간근무 일주일 후 바로 다음 주부터 야간;;;그 틈을 휴일이라고 지칭. 한마디로 휴일 없음;;; (후략)
커뮤니티 사이트의 성격상 이 글에는 유머와 과장이 섞여 있을 것이다. 원문이 작성된 시기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 3시간에 5분밖에 안 된다는 내용은 SBS <모닝와이드>에 나온 A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디시인사이드 웹사이트에 올해 3월 1일자로 올라온 <Spc 삼립 단기 알바후기>라는 글에 따르면 SPC삼립 공장의 노동 강도는 "엄청" 세고, 쉬는 시간은 "오전과 오후 각각 15~30분", 점심시간은 "30분~1시간"이다. 어떤 부서는 생산량 압박 때문에 점심식사도 30분 만에 끝내야 한다. 이 글에는 "연차 따윈 없다"라든가 "여기서 3년 일하면 다른 공장 10년분은 된다" 같은 댓글들이 달려 있다.
그 외에도 인터넷에는 SPC 빵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후기가 많이 올라와 있다. 구직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SPC 빵공장들은 '길게 일할 곳'은 못 되고 '돈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 몇 달만 바짝 일하러 가는 곳'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샤니 공장은 1년 내내 구인광고를 낸다.
▲지난 8월 8일 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SPC 계열사 경기 성남 샤니 제빵공장의 전 생산 라인이 가동 중단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경기도 성남시 샤니 공장 모습. ⓒ연합뉴스 |
공장은 계속 돌아간다, 12시간 맞교대로
'끼임 사망' SPL 공장, 과로 방지책보다 빵 먼저 만든다(23.03.10 참여와혁신)
'20대 여성 노동자 끼임 사고'...그 후 얼마나 달라졌나?(22.12.10 YTN)
지난해 불매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평택 SPL 공장은 달라진 점이 있을까? 사망사고 발생 50일 후에 YTN이 공장을 찾아가서 노동자들을 만났다. 사망한 노동자의 동료 직원은 달라진 점은 있다고 대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씩 교육을 시킵니다." 쉬는 시간도 조금 늘어났고, 인원을 추가 투입해서 2인 1조를 만들었고, 노동부 권고대로 인터록 장치도 설치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주야 맞교대라는 엄청난 노동 강도로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안전하게, 안전을 다 지키면서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거죠." 이 직원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다.
SPL과 삼립 공장에서 빵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위생복으로 온몸을 감싸고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일한다. 장시간 근무라고 해서 쉽고 편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무거운 밀가루 포대를 나르거나, 반죽을 이 기계에서 저 기계로 옮겨 붓거나, 다량의 재료를 손질한다. 그날그날 정해진 생산량을 채우려면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지난해 SPL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던 배합기도 원래는 덮개가 열려 있을 때는 기계가 돌아가지 않도록 설정해야 하고, 재료를 추가할 때는 기계 가동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12시간 안에 생산해야 하는 목표량 채우기가 우선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기계를 멈춰가며 작업할 수가 없었다. 노동자의 안전이 확보되려면 인원 충원과 주야 맞교대 폐지가 필요해 보인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과로사의 원인이 되는 주야 2교대를 폐지하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것이 2013년, 무려 10년 전이다. 요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제조업 현장들은 4조3교대제(새벽·낮·밤 8시간씩 근무)와 4조2교대제(12시간씩 근무하고 사흘 연속 휴무)의 장단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의 공장들은 5조3교대제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노동자에게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는 곳에서는 노동자의 휴식과 건강을 고려한 근무 체제가 도입된다. 그러나 한국의 제빵업계는 시대의 변화에 걸맞지 않게 장시간 노동이라는 틀에 머물러 있다.
1970년대와 지금이 겹친다
SPC그룹의 역사를 보면 공장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탄압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민주노조 활동을 하고 파업을 하려면 구속을 각오해야 했던 1970년대에도 '삼립식품 노사분규 사태'가 있었다.
2002년 노동부 학술연구용역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1970년대 산업화 초기 한국노동사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당시 삼립식품은 현대적 설비를 갖춘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1973년 9월, 노동자 2600명 중 1000여명이 회사에 △50% 임금 인상 △주1회 휴무 실시 △12시간 근무제 개선 △점심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며 3일간 집단 파업을 진행했다.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을 보면 1970년대 삼립식품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주일 내내 휴일 없이 주7일 12시간 맞교대로 일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연속생산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1973년 당시 삼립식품 3년차 여공 월급은 살인적인 연장근무에 대한 초과수당을 다 합쳐도 1만8057원. 같은 해 전체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만5433원이었다. (1973년 9월 삼립식품 파업, 17.09.29 매일노동뉴스)
결국 파업 주동자 13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그중 6명이 구속되었으며, 사업주에게도 3만 원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겪고 나서도 삼립식품 공장의 노동조건은 1970년대 내내 개선되지 않았다. 논문에 따르면 1979년에도 이 공장의 통상근로시간은 12시간이었고, 주야 근무의 교체가 이뤄지는 주말에는 무려 18시간씩 일해야 했다. 중간 휴식은 물론이고 점심이나 야식 시간도 공식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요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고, 점심시간도 없고, 휴식시간도 없었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밤낮으로 굴려 빵을 만들던 삼립식품이 우여곡절을 거쳐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31, 던킨도너츠 같은 브랜드를 가진 SPC그룹으로 성장했다. 세월이 흐른 만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나 생활도 발전했다면 좋았으련만, 지금도 샤니와 SPL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모습이 과거 1970년대와 많이 겹친다.
12시간 노동, 부족한 휴식, 동남아 식품공장보다도 열악한 노동환경, 지켜지지 않는 안전 규칙과 중대재해. 우리가 먹는 빵은 정말 이렇게 만들어져야만 하는 걸까? 지난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했던 말은 달랐다. 향후 3년간 총 1000억 원을 투자해 "전사적인 안전진단 시행과 안전경영위원회 설치, 안전관리 인력과 역량 강화, 직원들을 위한 근무환경 개선" 등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1000억 원은 대체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근무환경 개선"이라는 허 회장의 말이 진심이라면, 공장의 안전장비에 투자를 늘리고 주야 2교대를 폐지해서 과로 없는 환경부터 만들기를 바란다.
[안진이 더불어삶 대표(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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