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동이라 불리는 건물 2층에 들어서자 테니스장보다 큰 거대한 수조가 눈에 들어왔다. 수영장에서 나는 염화칼슘 소독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수조의 정체는 음향수조. 현장에서 만난 이원병 함정성능연구팀 책임은 “음향수조는 국내 조선사 중에서 유일하게 한화오션만이 보유하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가장 조용한 함정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한다”고 했다.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 음향수조 [사진제공=한화오션] |
길이 25m·폭 15m·깊이 10m의 음향 수조에는 가정용 욕조 1만개 즉 3100t 정도 물이 들어간다. 물을 넣고 빼는 시간만 3~4일 걸린다. 외부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기 위해 1m의 두꺼운 이중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만져보니 내벽은 오돌토돌하고 거칠었다. 이 책임은 “음파가 벽에 맞으면 산란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방사소음 저감 기술인 마스커 에어 시스템(Masker Air System)을 가동하자 소음과 함께 엄청난 양의 공기방울이 모형선박을 감쌌다. 여러 소음들이 공기방울을 통과하면서 감소하게 된다. 소음저감은 특수선에선 생존을 위한 기술이다. 이 책임은 “잠수함의 가장 큰 특징은 ‘은밀성’과 ‘정숙성’”이라며 “시끄러우면 적에게 먼저 발각돼 제기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방산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짠 한화오션에 이 음향수조는 ‘최종 병기’다. 한화오션은 글로벌 초격차 방산 솔루션을 구축하기 위해 최근 실시한 유상증자 2조원 중 45%에 해당하는 9000억원을 방산 기술력 확보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박진원 함정성능연구팀 책임은 “한화오션이 진입할 수 있는 글로벌 함정 시장 규모는 320조원”이라고 했다.
한화오션은 음향수조를 활용해 인위적으로 저주파수를 발생시키는 '파라메트릭 어레이 시스템'(Parametric Array System)을 개발했다. 잠수함 배관 내부의 유체 흐름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저감하는 유체 소음기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6월엔 모형선박 거리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정밀하게 측정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마련했다.
세계 최대 상업용 공동수조 [사진제공=한화오션] |
세계 최대 상업용 공동(空洞·Cavitation)수조도 시흥R&D센터에 자리하고 있다. 이장휘 연구기획팀 책임은 “총 길이 62m에 건물 높이 4층(21m) 정도 된다”며 “각진 도넛 모양의 수조 안에서 물이 순환하는 구조”라고 했다. 총 3600t의 물을 순환시켜 최대 15㎧까지 유속을 형성할 수 있다.
이곳에선 캐비테이션을 줄이는 연구를 한다. 캐비테이션은 쉽게 말해 선박에서 프로펠러가 물속에서 빨리 돌게 되면 프로펠러 주위에 기포가 생기는 현상이다. 이 현상으로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고 추진력도 감소한다. 잠수함의 경우 적에게 탐지될 수도 있다.
공동수조에서 선박의 공동현상을 실험하는 모습 [사진제공=한화오션] |
모형제작워크샵에는 몸체 곳곳에 일련번호와 각종 마크가 표시된 길이 10m내외 노란색 모형선들이 늘어서 있었다. 수주한 모든 선박을 실제와 동일한 형상으로 축소 제작해 각종 성능을 예측하고 시험, 평가하는 곳이다. 그간 선체는 나무, 프로펠러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었지만 내년부터 3D 프린터를 도입해 플라스틱 ABS 소재로 제작할 계획이다. 3D 프린팅 기법을 적용하면 3주가 소요되던 모형선 제작 기간을 최대 40%까지 단축할 수 있고 선주의 갑작스러운 실험 요구에도 더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모형선들을 지나면 예인(曳引) 수조(Towing Water Tank)가 나온다. 모형선을 물에 띄워 예인차로 끌며 선박의 저항·자항·운동·조종 성능을 시험한다. 이날은 공사 중이라 직접 볼 순 없었다. 예인 수조는 길이 300m,폭 16m, 담수량 3만3600t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18년 시흥R&D캠퍼스개소와 동시에 건립된 이 수조는 업계 최신 설비다. 최대 7m까지 수심을 조절할 수 있어 상선과 함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박을 대상으로 맞춤식 시험이 가능하다.
세계 최대 규모 예인수조 [사진제공=한화오션] |
자율운항선 관제센터에서는 한화오션의 자율운항 전용 시험선인 '한비'(Han-V) 원격 제어하는 설비를 볼 수 있었다. 커다란 화면 3개가 펼쳐진 이 곳에선 작년 경기 시흥시 제부마리나에서 테스트했던 녹화 영상이 나왔다. 중앙 화면에선 항해 중인 선박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이 펼쳐졌다.
유동훈 자율운항연구팀 책임은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에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해서 운항과 안전 관련 정보들을 덧입혀서 보여드리고 있다”며 “위험도에 따라 화면 색깔을 다르게 해 사용자에게 경고한다”고 했다. 왼쪽 화면에는 엔진 RPM 조정 등 선박 제어 장치와 경로 최적화 정보가 자리했다.
자율운항선 관제센터 [사진제공=한화오션[ |
오른쪽 화면에는 디지털 트윈 기반 한화오션의 가시화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실제 항구와 지형을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구현한 이 화면을 통해 육지에서 선박을 원격제어할 수 있다. 유 책임은 “자율운항 기술적인 측면은 경쟁사와 대등한 수준”이라며 “자율운항 전용 시험선이 있는 것과 디지털 트윈 시스템이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했다.
한화오션 'HS4' 미디어 연구실 [사진제공=한화오션] |
맞은편에는 HS4 미디어 연구실이 있다. HS4는 한화가 자체 개발한 ‘한화 스마트십 솔루션 서비스(Hanwha SmartShip Solution & Service)’의 약자다. 2021년 국내 선사 대상 총 3척을 수주하며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까지 총 18척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제4세대 전투형 무인 잠수정 개념 설계를 수행하고 있다.
강중규 중앙연구원 원장은 “무탄소로 움직이는 무인 완전 자율 운항선을 만드는 게 저희의 꿈”이라며 “2030년 정도에 업계 최초로 꿈을 현실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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