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은 비상장주식 사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경찰의 수사 의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뉴시스] |
최근 기승을 부리는 '피싱범죄'에 휘말렸음을 뒤늦게 인지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십중팔구 경찰서다. 문제는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했을 때 사기꾼을 잡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며 한탄한다. 왜 그럴까. 비상장주식 사기에 얽힌 피해자 정희진(가명·64)씨, 김민진(가명·42)씨, 박형진(가명·35)씨의 이야기를 이어서 들어봤다. 금융사건해결사-비상장주식 사기 열번째편이다.
정희진씨, 김민진씨, 박형진씨. 이들 세 사람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비상장주식 사기의 피해자다. 정씨는 높은 수익률에, 김씨는 언론사의 광고성 기사에, 박씨는 상장에 실패하면 투자금을 돌려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피땀 흘려 벌어들인 돈을 비상장주식 사기꾼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사기꾼들이 약속했던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고, 이들은 그제야 비상장주식 사기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기꾼들은 이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사기꾼의 꼬리는 과연 잡혔을까.
✚ 비상장주식 사기꾼에게 당했다는 사실은 언제 알아차렸나. 경찰에 신고는 했나.
김민진 : "지난해 5월께부터 비상장주식 거래 사이트에 베노디글로벌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비상장주식을 판매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그때 사기란 걸 직감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박형진 : "비슷하다. 비상장주식을 판매한 회사 관계자가 돌연 연락을 끊었다. 그러자 나와 비슷한 피해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더라. 그들과 뜻을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정희진 : "같은 종목에 투자한 사람을 통해 사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개인적으론 이미 경찰에 고발했다. 투자자들과는 공동소송을 진행 중이다."
✚ 경찰 수사는 진행 중인가.
김민진 :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고 있다. 경찰에서 마지막으로 연락받은 건 지난해 하반기다. 베노디글로벌 수사를 한곳에서 통합한다는 문자를 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엔 아무런 소식도 없다."
박형진 : "수사 종결로 끝났다.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사용한 탓에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관련 기업에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결과가 좋을지는 의문이다."
정희진 : "마찬가지다. 경찰에 물어보면 '수사가 진행 중이니 기다려 보라'는 말만 돌아온다."
✚ 비상장주식 사기라는 걸 알아챘을 땐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정희진 : "'괜한 짓을 했구나'란 자책을 많이 했다. 피해금액이 너무 커서 남편과 집에는 얘기도 못 했는데, 최근 법원에서 온 통지서 때문에 남편이 비상장주식 사기를 당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남편과의 불화에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고 있다."
김민진 : "마찬가지다. 왜 한번 더 확인하지 않았는지, 왜 섣불리 돈을 보냈는지 후회하고 있다. 취업 후 한푼 두푼 어렵게 모은 돈을 비상장주식 사기로 모두 날렸다. 충격에 공황장애가 생겼다. 지금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 약을 먹으며 버티고 있다."
박형진 : "사기꾼들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오랜 시간 경찰서를 들락날락한 탓에 한동안 생업도 뒷전으로 미뤄야 했다. 회사생활은 물론 가정도 엉망이 됐다."
✚ 비상장주식 사기가 일상을 흔들어 놓은 것 같다.
김민진 : "그렇다. 사실 사기를 당할 때쯤 남자친구와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사기를 당한 게 알려지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했다. 정신적 충격에 교사생활도 그만뒀다. 도저히 교단에 서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겠더라. 지난해 5월쯤 일을 관두고 서울로 올라와 사기꾼들을 잡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12월 반포기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기간제 교사로 지내면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을 잊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희진 : "무엇보다 아이들을 볼 면목이 없다. 힘들게 번 돈을 사기로 날렸다고 하면 얼마나 실망할지 걱정이다."
✚ 사기꾼들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박형진 : "반반이다. 함께 경찰에 고발하고 소송을 진행했던 피해자 중 많은 사람이 이제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한다. 사기꾼을 잡아도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끝까지 범인들을 잡기 위해 힘을 쏟을 생각이다. 그들의 잘못으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돈을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처벌은 받게 해야 하지 않겠나."
김민진 : "사실상 포기했다. 경찰은 개인정보를 이유로 사기꾼들의 신원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나에게 주민등록증을 보낸 사람이 범인이 맞는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사이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범인들을 잡는다고 해서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희진 :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 비상장주식 사기를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박형진 : "많은 사람이 '너는 피해금액이 적으니 괜찮지 않냐'고 말한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다른 사람에겐 수백만원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수천만원의 가치가 있는 돈이다. 피해금액이 적다고 덜 속상하고, 많다고 더 속상한 건 아니지 않나."
정희진 : "돈도 돈이지만 자책을 많이 했다. 사람을 쉽게 믿은 것이 너무 후회된다."
김민진 : "얼마나 어리석으면 그런 사기에 당할 수 있느냐는 주위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 사람들은 사기꾼도 문제지만 사기에 당한 사람도 문제라고 비난한다. 그런 비난이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더 신중하지 못한 건 잘못이지만 사기를 당한 게 전부 나의 잘못은 아니지 않나."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박형진 : "비상장주식 사기 등 서민들 등치는 사기꾼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찰의 수사 의지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제발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김민진 : "비슷한 생각이다. 처음 경찰서에 갔을 때 경찰관에게 들은 얘기가 '없는 돈이라 생각해라' '사기꾼들은 대부분 해외에 있어서 잡기 어렵다'는 거였다. 처음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 피해자들은 희망을 잃는다. 언급했듯이 개인정보를 이유로 사기꾼들의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피해자보다 사기꾼들의 인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 속상했다."
정희진 :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는 자기가 받는다는 뜻이다. 사기꾼들이 지금은 호의호식하고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비상장주식 사기를 돕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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