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6일 발생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 현장 사진./사진=뉴시스 |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부녀자 4명이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셔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는 청산가리 막걸리를 마시고 숨진 최씨의 남편인 백씨와 그의 막내딸이 지목됐다.
검찰은 "딸이 '15년 전부터 아버지와 성관계를 해왔다. 엄마가 이를 알게 돼 갈등 끝에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어 엄마를 독살하기로 아버지와 공모했다'고 자백했다"고 발표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이후 SBS '그것이 알고싶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 여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뤄지는가 하면 배우 신혜선 주연의 영화 '결백'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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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간 성관계와 범행 사실 자백한 딸…무기징역·징역 20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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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2' 방송 화면 |
사건은 이날 새벽 누군가 집 마당에 막걸리 두 병이 든 봉지를 갖다놓으면서 시작됐다.
남편 백씨는 마당에 있던 막걸리가 담긴 봉지를 발견하고는 토방에 올려놨고, 이후 아내 최씨가 이를 들고나가 함께 풀 베기 작업을 하던 사람들과 나눠마셨다. 막걸리가 이상하다 느껴 뱉어낸 두 사람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최씨를 비롯한 두 사람은 숨졌다.
막걸리에는 청산가리라 불리는 11.85g의 시안화칼륨(KCN)이 들어있었다. 이는 약 0.15g만으로도 성인 1명을 즉사에 이르게 하는 독극물이다.
/사진=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2' 방송 화면 |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백씨의 막내딸은 검찰에 지난 15년간 부녀간 성관계를 맺어왔으며, 이 사실을 엄마가 알게돼 살해하게 됐다고 자백했다. 딸의 자백에 아빠도 범행을 인정했다. 당시 백씨의 막내딸은 동네의 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그를 고소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부녀가 범행을 결심한 건 3개월 전이었다. 엄마에게 심한 꾸중을 들은 딸이 아빠에게 먼저 범행을 제안했고, 아빠 백씨는 사건 4일 전인 7월 2일 아내와 함께 갔던 시장에서 막걸리 3병을 구입했다.
7월 3일 백씨는 17년 전에 산 청산가리와 막걸리 두 병을 창고에 놓은 뒤 딸에게 신호를 줬고, 딸은 7월 4일 저녁 8시 막걸리와 청산가리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막걸리 한 병에만 청산가리를 섞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인 7월 6일 딸은 새벽에 몰래 일어나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를 마당에 꺼내둔 것을 아빠 백씨에게 알려준 뒤 잠들었고, 이후 백씨가 토방에 올려둔 막걸리를 가지고 나가 마신 아내 최씨는 숨졌다.
살인, 존속살해,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백씨 부녀는 2010년 열린 1심에서 살인과 부녀간 성관계 사실을 부인했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1년 2심에서는 각각 무기징역,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고, 2012년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나온 백씨 부녀의 자백이 유죄 판결의 결정적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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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용량·청산가리 입수 과정·자백 신뢰도 등 여러 논란 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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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사람의 자백과 증거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각종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조명됐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막걸리는 750㎖의 작은 병이었으나 백씨가 막걸리를 구입한 식당에서는 900㎖ 큰 병만 팔고 있었다는 점, 청산가리 입수 시기·경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딸은 청산가리를 인터넷으로 구입했다고 했으나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고, 이후 아빠가 구해왔다고 진술을 바꿨다.
아빠 백씨 역시 4~5년 전에 자전거 수리하는 이씨에게 청산가리를 샀다고 했지만 이씨가 당시 세상을 떠난 뒤인 것으로 밝혀지자 다시 17년 전에 산 것이라 다시 진술을 바꿨다.
또한 사건 이틀 전 저녁 8시 집 옥상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섞었다고 했던 딸은 그날 저녁 8시45분 순천터미널 근처 CC(폐쇄회로)TV에 찍혔고, 당시 수차례 폰뱅킹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은 동시다발적인 행동이 어렵고, 암시성 질문을 할 경우 사실을 말하기 보다 허위 자백의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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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압박으로 허위 자백 유도' 주장한 백씨 부녀 측…재심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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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심을 청구한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백씨 부녀의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사진=뉴스1 |
이후로도 억울함을 호소해온 백씨 부녀는 확정 판결 10년 만인 지난해 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잘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다.
지난 4일 광주고법 제2-2형사부(오영상·박정훈·박성윤 고법판사)는 백씨 부녀에 대한 재심 결정 여부를 판단하는 세 번째 심문기일을 열었다.
이날 박준영 변호사는 11년 전 검사와 조사관이 백씨 부녀를 상대로 진술을 받는 조사 영상을 공개하며, 검사와 담당 수사관이 회유, 기만, 강요, 압박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딸 백씨에 대해 수사관은 미리 만들어 낸 진술을 질문으로 쏟아내고 단답형 진술을 회유와 강압으로 유도해 마치 딸이 직접 자백한 것처럼 진술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가 공개한 증거 영상에는 조사관이 청산가리의 생김새를 설명하지 못하는 딸 백씨에게 답변을 알려주는가 하면 진술을 자기 생각대로 유도하는 듯한 장면들이 있었다.
특히 조사관은 "아버지가 지금 너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고 한다. 아빠한테 넌 사건의 도구일 뿐이다. 내가 아빠라면 딸을 감싸면서 내가 했다고 했을 거다. 네가 말을 안 하더라도 조사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등 자백을 강요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또한 박 변호사는 "백씨는 본인 주민등록번호도 모르고 한글도 쓸 줄 모르지만 수사기관이 제출해 유죄 증거가 된 자필 진술서는 오탈자 하나 없었다"며 아빠 백씨의 진술서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자백을 부인하는 백씨를 상대로 '말을 잘 못한 거죠'라고 반복적으로 번복을 유도하거나, 자백을 강요하는 듯한 장면이 담긴 영상도 공개했다.
또한 박 변호사는 당시 검사가 아빠 백씨의 막걸리 구입 관련 CC(폐쇄회로)TV, 톨게이트 이용내역, 딸 백씨의 버스 탑승 이동 CC(폐쇄회로)TV 등 이들 부녀의 무죄를 증명할 유리한 자료들을 모두 확보해놓고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진술 과정은 전형적인 참기 힘든 물리적 강압 없는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례"라며 "특히 가족이 사망한 사건의 피해자를 범인으로 몰고, 그 범행 동기를 가족 간 성범죄로 특정했다"고 검찰 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백씨 부녀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8월8일 오후 2시30분쯤 광주고법에서 열린다. 검찰도 다음 재판에 영상 증거를 제시해 변호인 측의 주장에 반박할 예정이며, 마지막 심리에서는 재심 신청 당사자인 백씨 부녀도 최종 진술할 것으로 보인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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