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야간 문화제’ 술판도, 오물도 없었다···달라진 건 경찰의 잣대

댓글0
경향신문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집회 엄정 대응’ 지시 이후 경찰의 집회 대응 방식이 돌변했다. 지난 25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공동투쟁)이 주최한 야간문화제에서 경찰은 참가자들의 양 팔다리를 잡아 끌어 강제해산을 하고, 견인차를 동원해 문화제 무대차량을 강제로 옮겼다. 견인을 막은 집회 참가자 3명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주최 측은 문화제 개최 과정이 위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의 강제해산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예술, 오락 목적으로 연 ‘문화제’ 성격의 집회는 신고 의무가 없으며, 문화제가 평화롭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경찰이 수년간 미신고 문화제를 문제삼지 않다가 정부가 집회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과도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3시20분쯤,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행진을 시작할 때는 분위기가 평화로웠다. 행진 시작 10여분 뒤 경찰과 노조원은 미소를 띤 채 대화했다. 노조원들은 대법원으로 향하던 길에 경찰의 길 안내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이동했다.

오후 5시30분, 행진 목적지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대법원 담장을 둘러싸고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교통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며 대법원 정문 인근에 주차된 노조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말했다. 노조원들과 경찰은 “10분 동안 협의하겠다고 했는데 바로 빼는 게 어딨느냐” “카메라로 채증하겠다”며 서로 언성을 높였다.

오후 6시10분, 경찰 견인차가 도착해 노조 무대차량 앞에 섰다. 노조원들이 무대차량을 둘러싸자 기동대가 투입돼 노조원들을 모두 끌어내고 3명을 연행했다. 오후 8시 문화제가 시작됐고, 경찰은 30분 뒤 1차 해산명령을 내렸다. 참가자들이 문화제를 계속하자 3~4명씩 한 조로 편성된 경찰은 참가자의 바지 허리춤을 잡아 들어 올리거나 팔다리를 잡고 인근 공원으로 옮겼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오후 9시20분 모두 현장에서 끌려나갔다.

경향신문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금속노조 무대차량을 견인하기 위해 경찰 견인차가 주차돼 있다. 윤기은 기자



경향신문

금속노조 조합원과 비정규직 노동단체 회원들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야간 문화제에서 이를 봉쇄하던 경찰과 대치 중 연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들의 밀착 감시는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26일 오전 8시50분쯤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노조원을 경찰 세 명이 에워쌌다. 정부의 강경대응 빌미가 된 쓰레기·노상방뇨·술판 등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피켓 등 시위 때 쓰인 물품은 인근 공원 한편에 정리돼 있었다. 문화제를 하고 남은 쓰레기도 쓰레기봉투에 담겨 있었다.

경향신문

26일 경찰 3명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금속노조원 한명을 둘러싸고 있다. 이홍근 기자



경향신문

경찰의 강제 해산에도 노숙 농성을 강행한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맞은편 공원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문화제를 강제 해산한 명분은 두 가지이다.

첫째, ‘야간문화제’가 아니라 ‘미신고 집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최 측은 시 낭송, 노래 제창 등을 하는 예술·오락 목적의 ‘야간 문화제’였다고 반박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따르면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등 목적의 집회는 신고 대상이 아니다. 문화제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윤석열 정권 퇴진” 등 구호를 외치기는 했지만 가수들의 공연도 있었다. 송경동 시인은 해산을 시도하는 경찰을 향해 “문화제에서 시 낭송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했다.

둘째, 문화제가 ‘법관·재판관 직무상 독립, 구체적 사건에 영향 미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법원 청사 앞 100m 집회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8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법관·재판관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와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집회를 허용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법원 앞 집회도 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게 헌재 결정과 개정법의 취지이다. 서울행정법원은 2021년 보수단체 주최의 ‘김명수 규탄 집회’를 금지한 경찰에 패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집시법 조항 중 법원 앞 집회를 금지하도록 한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전날 야간문화제를 강제 해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이날 통화에서 “어제 문화제는 지극히 평화적이었다. 50명 정도 소수가 인도에서 진행할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했다”며 “대법관을 특정해 구체적 사건을 해결해달라 요구하지 않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나 대규며 집회로 확산할 우려도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견인차를 막아선 노조원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어제 체포된 3명은 단지 견인 전에 무대차량 앞에 앉아있거나 기대 서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경찰에 대한 폭행, 협박, 신체 접촉, 욕설은 없었다”며 “무대차량 강제 견인은 위법한 공권력 남용”이라고 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는 ‘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경우 강제 물리력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 무대차량이 이 같은 위험을 끼칠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다.

공동투쟁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판결 촉구를 위해 여러 차례 노숙농성을 진행해 왔다. 이제껏 경찰은 투쟁 당사자들과 협의를 통해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며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참혹한 밤이 돼 버렸다. 윤 정부와 경찰은 민주주의를 철저히 짓밟았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뉴시스김호중 모교 전 교장 "전도 유망한 가수 죽이려 들어"
  • 머니투데이실물 사진 띄우고 "얼차려 사망 훈련병 지휘관은 여성"…신상 확산
  • YTN"호중이 형! 변호사가 안 알려줬어?"...익명 경찰의 일침 [앵커리포트]
  • 조선일보생방송중 경찰까지 출동…‘코인 사기’ 의혹 오킹, 극단선택 암시하며 오열
  • 매일경제“그날도 성관계 문제로”…오빠 안죽였다는 ‘계곡살인’ 이은해, 옥중편지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