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의 멘탈 퍼포먼스] WK리그 경주한수원과 함께했던 시간들

사진=한수원 SNS

‘현대제철 2022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다. 필자는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높은 허탈감은 온몸에 힘을 빠지게 했고 간신히 운전대를 잡았다.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주변 지인들과 심리전문가들의 위로 문자였다.

필자는 지난 시즌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에 스포츠 심리지원을 한 스포츠 심리전문가다. WK리그 시즌이 종료된 뒤 많은 이들에게 문의가 왔다. 어떻게 스포츠 심리지원을 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적 근거를 궁금해 했다. 하지만 1년가량 보이지 않은 곳에서 많은 애정을 쏟고 몰입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에 문제가 발생했고 머뭇거리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모든 학문적 지식과 경험적 근거를 총동원한 상황에서 마지막에 꽃을 피우지 못해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한동안 말을 아꼈고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자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의 스포츠 심리지원 목적은 팀 응집력 향상과 위닝 멘탈리티를 만드는 것이었다. 즉, 팀의 모든 구성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일치단결하고 승리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만들기 위해 심리지원을 시작했다. 심리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매우 좋았던 건 경주한수원 송주희 감독이 심리지원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팀의 코칭스태프가 심리지원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심리 지원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고 상황마다 수시로 요구 사항과 피드백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심리지원을 할 때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실제로 이 과정은 팀의 맞춤형 심리 교육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송 감독이 심리 교육에서 배운 심리기술 전략과 팀 멘탈 플랜을 팀 훈련과 경기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한 번 더 지도한 덕분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스포츠 심리전문가가 수준 높은 심리 교육을 진행해도 결국 코칭스태프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유는 스포츠 심리전문가가 코칭스태프처럼 매일 팀 훈련에 참여하고 경기 중 벤치나 라커룸에서 멘탈적인 지도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 감독은 이러한 부분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고 팀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제한점을 개선하기 위해 스포츠 심리전문가들이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의 심리지원 방법은 팀 교육, 개인 상담, 팀 관찰 리포트, 선수권 대회 파견, 심리측정 분석 등을 나누어 진행했다. 심리지원 일정은 사전에 코칭스태프와 협의를 통해 계획하고 설정한 뒤 WK리그 경기 결과에 따라 조금씩 수정 보완하며 일정을 소화했다. 심리지원을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심리지원 일정을 사전에 공유 받고 체크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스포츠 팀들은 리그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음 주 팀 스케줄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심리지원 일정을 사전에 공유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심리지원에 대한 준비 수준을 높이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 심리지원은 이러한 부분들이 원활하게 진행되면서 보다 나은 교육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사진=한수원 SNS

팀 교육은 2주에 한 번씩 총 12회기의 팀 교육을 진행했다. 팀 교육은 대부분 대면으로 진행했고 상황에 따라 비대면(화상회의)도 같이 진행했다. 팀 교육 주제는 사전 심리 측정 결과를 토대로 선정했고 팀 교육을 진행할 때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교육 워크시트를 제공했다. 팀 교육 진행은 매 회기마다 주제에 맞은 심리기술 전략을 소개하고 선수들이 팀 훈련과 시합 상황에서 심리기술 전략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이해시키고 도왔다. 또한 모둠 활동을 통해 팀의 의미 있는 자료를 만들고 서로 공유했다. 예를 들면 포지션별 팀 목표 설정, 팀 승리 루틴, 팀 비공식 리더와 중간 리더의 역할 등이다. 추가적으로 WK리그 경기에서 팀의 모든 구성원이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팀 멘탈 플랜을 제시했다.

개인 상담은 팀 교육이 끝나고 진행하거나 선수와 일정을 조율한 뒤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심리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개인 상담이었다. 여자 선수들이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상담을 한다는 것이 매우 큰 부담이었다. 상담을 진행할 때마다 미팅 룸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오해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상당히 경직된 상황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상담을 진행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개인 상담을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코칭스태프가 추천한 선수들과 개인 상담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팀에 상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칭스태프의 정보 전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심리지원에서는 이러한 제한점을 꼭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필자는 지난 시즌 WK리그에서 진행된 경주한수원의 모든 경기를 관찰했다. 경기장에 직접 방문하여 관찰을 하거나 중계방송을 통해 관찰을 했다. 범죄 프로파일러가 범인을 잡기 위해 사건 현장을 자주 찾는 것처럼 스포츠 심리전문가도 팀 훈련이나 공식적인 경기를 계속 예의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팀 관찰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팀 관찰을 하게 되면 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팀을 진단하게 되면서 팀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약속된 팀 멘탈 플랜 안에 다양한 요인들을 분석하여 긍정적인 요인은 더 강화시키고 부정적인 요인은 수정 보완하여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팀 관찰 리포트는 경기 종료 후 돌아오는 주중에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지난해 7월, 창녕에서 열린 선수권 대회 파견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경주한수원의 창단 첫 우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필자는 선수권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동행하며 밀착 심리지원을 했다. 팀 교육은 장소가 여의치 않아 각자 방에서 비 대면으로 팀 교육을 진행했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개인 상담을 진행해 선수들의 마음과 생각을 회복시켰다. 경기 당일에는 팀 미팅에 참여하여 멘탈 전략을 설명했고 선수들이 워밍업을 할 때에는 최대한 가까이 가서 박수를 쳐주며 용기를 전달했다. 선수권 대회에 파견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코칭스태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팀이 요구하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알게 된 점이다. 이 계기를 통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심리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진=한수원 SNS

심리측정 분석은 심리지원에 대한 효과 검증을 위해 사전사후 심리측정을 진행했다. 심리검사지는 국내 공인 저널에서 신뢰도와 타당도를 확보한 수행전략(TOPS), 수행 프로파일링(IZOF), 운동선수 자기관리 행동 검사지를 활용했다. 사전사후 심리측정을 분석한 결과 사전 시기보다 사후시기에 심리적 요인들이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수행 프로파일링(IZOF)의 모든 심리 요인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추가적으로 팀 응집력 검사지도 활용했다. 팀 응집력 검사는 60일 주기로 총 5회 연속 측정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팀의 응집력 수준을 확인하고 관리했다. 예를 들면 팀 응집력의 4가지 요인(개인사회, 개인과제, 집단사회, 집단과제)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여 코칭스태프에게 솔루션을 제공했다.

심리지원을 하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을 아주 많이 경험했다. 우선 팀이 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신선한 자극을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팀이 잘나가고 연승을 달리고 있을 때 심리지원을 통한 관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알게 됐다. 필자는 이러한 골든타임을 2번이나 놓쳤다. 또한 WK리그가 진행되는 시기에 팀 빌딩 활동을 추가하여 팀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고 팀 응집력을 관리한 점도 기억에 남는다. 이들이 활용한 팀 빌딩 활동은 단체로 영화 보기, 단체로 탁구 치기, 단체로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등이 있다. 추가적으로 WK리그 경기 직전에 벤치에서 송 감독과 나눈 따뜻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제철 2022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경기 종료 후 송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준우승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원팀이 되어 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가슴이 너무나도 아팠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했지만 여전히 후회와 아쉬움이 존재한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글=이상우 박사, 에디터 이혜진 기자

사진=경주한수원여자축구단 SNS

*이상우 대표는...

△멘탈 퍼포먼스 대표 △스포츠 심리학박사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 FC안양 선수 △KFA ONSIDE ‘이상우 박사의 축구심리 상담소’ 연재(2023) △인천유나이티드 U15, U18 심리기술훈련지원(2023) △서울 풋볼A U18 심리기술훈련지원(2023) △경기 SOL FC U18 심리기술훈련지원(2023) △충주상고 U18 심리기술훈련지원(2023) △경기 여주SD U12 심리기술훈련지원(2023)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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