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사라진 절집의 자취 지켜온 큰 나무

경향신문
원문보기

사람 떠난 자리에 나무가 남는다. 아름다운 남도의 섬, 진도를 대표하는 노거수인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도 그렇다. 가뭇없이 사라진 사람살이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이룬 보금자리 한 귀퉁이를 버티고 서 있는 큰 나무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사진)’ 곁에는 구암사라는 절집이 있지만, 이 역시 새로 지은 절집이다. 구암사라는 이름은 절집 뒷산에 ‘비둘기 바위’ 혹은 한자로 ‘구암(鳩巖)’으로 부르는 큰 바위가 있어서 붙였고, 이 자리는 흔히 ‘상만사 터’라고 부른다. 마을 이름인 ‘상만리’에 기대어 ‘상만사’라는 절집이 있었을 것으로 본 때문이다. 이름조차 알기 어려울 만큼 오래전에 사라진 절터라는 이야기다.

오래된 흔적이라 해야 절집 앞마당에 있는 오층석탑이 유일하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가졌지만, 실제 조성은 고려 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연원을 바탕으로 고려 초기에서 중기 사이인 1000년쯤 전에는 이 자리에 번창한 절집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오층석탑에서 불과 100m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는 600년쯤 이 자리에서 살아왔다. 옛 절집에 있던 시절에는 석탑의 위치를 기준으로 짐작건대 큰법당 앞 너른 마당이나, 마당 가장자리의 울타리쯤에 있었던 나무다.

나무높이 12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6.5m, 뿌리둘레는 7.5m 가까이 되는 이 비자나무는 규모에서 대단히 큰 나무라 할 수는 없지만, 생김새만큼은 옹골차다. 언제 누가 심은 나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절집의 흥망성쇠를 또렷이 지켜본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나무는 마을의 쉼터이면서 사람의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매달렸다가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을 위할 줄 아는 나무라는 이야기다. 절집의 기억을 간직한 ‘절집나무’가 옛사람 떠난 자리에 새 사람들을 품고 ‘정자나무’로 살아가는 세월의 풍진이 아득히 그려지는 풍경이다.


고규홍 나무 칼럼니스트

▶ 채용부터 성차별, 27년째 OECD 꼴찌 이유 있었다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병헌 이민정 아들 영어
    이병헌 이민정 아들 영어
  2. 2북한 무인기 압수수색
    북한 무인기 압수수색
  3. 3임성근 음주운전 횟수
    임성근 음주운전 횟수
  4. 4김상식호 3-4위전
    김상식호 3-4위전
  5. 5토트넘 도르트문트 프랭크
    토트넘 도르트문트 프랭크

경향신문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