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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돔 세트로 지은 꿈…'미스터트롯2' 임찬 "제 향기 천리만리 갈 때까지"[인터뷰S]

스포티비뉴스 장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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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 트로트 가수 임찬.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미스터트롯2-새로운 전설의 시작(이하 미스터트롯2)’에서 그는 ‘빛날 찬(燦)’이라는 이름처럼 환하게 빛났다. 2년 전 출사표를 던진 시즌1에서는 통편집의 설움도 겪었지만, 시즌2는 달랐다. ‘다크호스’라는 평가 속 당당히 톱25까지 이름을 올리며 시청자들에게 ‘실력파’라는 이름을 진하게 새겼다.

‘미스터트롯2’ 모든 경연을 마치고 만난 임찬은 “좋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하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차진 노래와 에너지 넘치는 무대 매너로 마스터 예심 올하트, 팀미션 올하트 등을 기록하며 톱25에 안착한 그는 “당연히 1등까지 생각한 건 아니다. 꿈은 높을수록 좋으니까 톱7을 목표로 열심히 했다. 서바이벌이고 경쟁인데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탈락 후 상실감도 있었지만, 시원섭섭함도 있더라”라며 “동료들과 무대를 꾸미는 게 활동하면서 트로트 가수에게는 쉽지 않다. 앞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동료들과 알게 된 것도 좋고, 앞으로 ‘미스터트롯2’를 발판 삼아 좋은 활동으로 녹여내고 싶다”라고 각오를 전했다.

임찬이 ‘미스터트롯’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시즌1에서는 손, 명찰만 나오고 통편집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저도 저를 못 찾았다. 사실 트로트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나도 풀리려고 하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너무 빨리 가려고 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했다.

통편집보다 더 아팠던 것은 무대에 스스로 졌다는 생각이었다. ‘미스터트롯’ 이후 트로트 붐이 일어나면서 지방을 배경으로 활동하던 가수들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지만, 임찬은 오히려 이후 자신에게 찾아온 타 오디션 기회마저 마다하고 지방으로 향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임찬은 서울살이마저 정리하고 지역 라디오 게스트, 전통시장 리포터 등으로 활약하며 바닥부터 다시 배웠다.

임찬은 사실 국악부터 민요, 피아노, 클래식, 뮤지컬까지 두루 섭렵한 ‘음악 영재’다. 한국의 3대 악성이라 불리는 박연의 고장 충북 영동 출신인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했고, 초등학교에서는 대금, 중학교에서는 태평소 등을 섭렵했다. 그러다 교사의 추천으로 민요를 부르게 됐고, 2004년 난계박연 국악 학생 경연대회 금상, 2009년 전국 청소년 민속 경연대회 전래민요부문 대상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고향인 영동에서 포도밭을 크게 하던 조부모도 임찬의 ‘트로트 DNA’에 큰 밑거름이 됐다. 조부모의 포도밭은 어린 임찬의 놀이터이자, 노래방이었다. 노동의 흥을 돋우던 나무 위 카세트에서는 늘 같은 트로트 20곡이 흘러나왔고, 조부모의 일을 돕거나 밭에서 뛰어놀던 임찬도 자연스럽게 트로트의 ‘멋’이 아닌 ‘맛’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됐다.

그러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부터는 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포도밭 노래 속 흥과 한은 임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줬다. 임찬은 “졸업을 압두고 대학로에서 ‘화랑’이라는 뮤지컬을 했는데, 음악 감독님이 밝은 노래에 밝은 춤을 추는데도 뭔가 한스러운 게 느껴진다고 하시더라. 창법이 올드한 것도 아닌데 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라며 “다른 작품 오디션을 봤을 때도 ‘너무 한국적인 느낌이 든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시골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래가 묘했나보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임찬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줄 트로트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됐고, “앞으로 인생을 걸 수 있을지 모험을 해보기 위해 테스트를 해봤다”가 추풍령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하게 됐다. 졸업 공연 준비하면서 틈틈이 공부했던 노래로 단번에 우승을 하며 ‘트로트가 내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임찬이다.



다만 모든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스터트롯’ 시즌1에서는 단번에 마스터 예심까지 갔지만, 통편집으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존재만큼 자신감도 사라졌다. 다만 마스터들의 든든한 칭찬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진성 선배님이 은쟁반에 옥구슬 흘러가는 것 같은 미성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은 조금 트로트보다는 뮤지컬에 가깝다고 하셨다. 그런 말씀이 너무 큰 도움이 됐다. 트로트에 조금 더 녹아들면서도 제 목소리를 찾자고 생각했다. 정도를 가자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했다.

통편집의 아픔 후, 약 3년 만에 ‘미스터트롯2’에 재도전한 임찬은 톱25라는 성과를 받아들며 성공을 거뒀다. 임찬은 ‘미스터트롯2’ 출연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특히 같은 무대, 같은 공간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3년 전 저와 3년 후 제가 어떻게 달라지고 발전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 말처럼 임찬은 수직상승한 순위로 스스로의 가능성과 성과를 증명한 셈이다.

그는 “사람들마다 만족하는 성과가 다르겠지만, 만족하다. 처음(마스터 예심)부터 올하트를 받았고, 시즌1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떨어졌는데, 시즌2에서는 달라서 ‘바른길로 한 계단 한 계단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경연을 하며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다. 한 라운드를 진행할 때마다 ‘내가 잘 걸어나가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커졌다”라고 했다.


‘미스터트롯2’의 모든 것이 그에게는 배움과 깨달음의 현장이었다. 임찬은 “제 색깔을 확실하게 찾은 것 같다. 3라운드 경연에서 장윤정 선배님이 ‘미스터트롯1’에는 영탁이 있었고, ‘미스터트롯2’에는 임찬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리듬감, 목소리의 힘 등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해주셨을 때 길잡이, 방향선을 명확히 제시받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제게는 너무 속시원한 심사평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은 깊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쉽지 않다. 경연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깊이감은 연륜에서 올 수도 있지만, 노래나 목소리에서도 올 수 있고, 테크닉에서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일단은 가수로서 더 잘 농익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웃었다.

‘미스터트롯2’로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 시기, 임찬은 누군가를 위한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조명을 달던 시기를 되돌아봤다. 뮤지컬 전공을 하며 무대 세트 제작과 철거, 조명 설치 등에 익숙한 그는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각종 음악방송 및 공연 무대 철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세트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퀸 내한 공연이다. 임찬은 “그 세트를 제가 만들었다. 조명도 제가 달았다”라고 웃었다.

임찬에게 무대를 만들고 부수는 일은 곧 조명 아래 환하게 빛날 자신을 끝없이 그려보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는 “무대 뒤에서 다른 가수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준비하고, 조명을 달면서 ‘나도 지금은 무대를 만들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무대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꿈꿔보는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 무대를 만들며 무대 센터에 은근슬쩍 서보기도 하고, 조명을 움직이며 관객석을 멀리 내다보기도 했다. ‘멜론 뮤직 어워드’ 시상식 이런 무대도 만들었다.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있지만, 제 스스로 동기부여를 위한 경험이기도 했다”라고 했다.

임찬의 마지막 목표 역시 자신이 수없이 무대를 짓고 철거했던 고척돔에 있다. 임찬은 “고척돔 입성이 목표다. 제가 고척돔 무대 뒤에서 꿈을 키웠기 때문에, 더 좋은 공연장들도 있을 테지만 제 목표는 그곳”이라며 “제가 조명 들고 못질 하면서 ‘내가 기필코 이 무대에 서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마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라고 웃었다.


‘미스터트롯2’를 통해 임찬은 자신의 이름과 얼굴, 실력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알렸다.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임찬에게 ‘가수 DNA’를 물려줬고, 임찬이 음악을 시작한 후 노심초사 걱정하던 부모, 자신처럼 노래를 잘했고, 한때는 음악을 진지하게 꿈꿨던 남동생의 자랑도 됐다.

‘미스터트롯2’를 시작으로 트로트 가수로 활동에 박차를 가할 그는 ‘화향천리 인향만리’를 자신의 각오로 내세웠다. ‘꽃의 향기는 천 리를 가고, 인간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말처럼 가수 임찬의 향기가 천리만리 가닿을 수 있을 때까지 변함없이, 오래 노래하고 싶다는 포부다.

본명이 임창빈인 그는 활발한 활동을 위해 환하게 빛날 수 있는 ‘임찬’이라는 이름을 새롭게 받았다. “임찬이라는 이름과 만나면 제가 팔도를 등에 짊어질 사주라고 하더라”는 그는 “30살 이후부터 기운이 꽉 찬 이름이라고 하는데 제가 올해 만 30살”이라고 슬쩍 귀띔했다. 그 말처럼 이제야 운수대통이다. 트로트 흥과 한, 멋과 맛이 꽉 찬 임찬이 팔도를 등에 짊어질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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