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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탈출은 지능순? 명예도 처우도 사라진 특수직 ‘군인’의 비애 [오늘도 출근, K직딩 이야기]

매경이코노미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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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부에 대한 처우가 나빠지면서 군문을 떠나려는 간부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부에 대한 처우가 나빠지면서 군문을 떠나려는 간부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 육군 대위 A씨(31)는 최근 곳곳에서 축하 전화를 받았다. 전역 심사를 통과해, ‘전역 대상자’로 분류된 덕분이다.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장기 복무를 신청, 장군의 꿈을 키우던 A씨가 전역을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환경의 변화’가 컸다.

사실 A씨가 임관한 2016년만 해도 장교 처우는 나쁘지 않았다. 사회적인 인식도 좋았고, 병사들도 A씨의 지시에 잘 따랐다. 취업이 어려운 때라 군에 남는 선배들도 많았다. SKY라 불리는 상위권 출신 대학 선배 몇 명도 장기 복무를 신청해 군에 남던 시기였다. 일부 동기들이 ‘다시 생각하라’며 만류했지만, A씨는 군인이 자기가 갈 길이라 생각해 장기 복무를 신청, 군에 남았다.

7년이 흐른 2023년, 대위가 된 A씨는 자신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짧은 시간 사이 장교 인식은 바닥에 떨어졌다. 사회에서는 간부가 병사들을 등쳐 먹는 존재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들어오는 병사들도 점차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부대원들끼리의 소통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밑에 병사들은 말을 안 듣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불합리한 지시는 바뀌지 않았다. 중간에 낀 A씨만 난처하게 되는 사례가 많았다.

전역한 동기들과도 자신의 처지가 비교됐다. 사회에서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이 많은 돈을 벌 때, A씨는 최저시급도 안 되는 당직수당을 받아야만 했다. 미래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 소령 진급에 실패해 떠밀리다시피 군문을 떠나는 선배들을 보고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역도 쉽지 않았다. 너도나도 군대를 뜨려는 탓에 열띤 경쟁이 펼쳐졌다. 장기 신청을 할 때보다 더 준비를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전역’ 판정을 무사히 받을 수 있었다.

흔들리는 軍 위상... 인재들이 외면하는 장교·부사관
대한민국 안보를 책임지는 직장인, ‘군 간부’들이 흔들리고 있다. 열악한 처우와 낮은 인식에 버티지 못하고 군문을 떠나려 한다. 올해 1분기 전역을 원하는 장기 복무 간부들 숫자가 급증했다. 동시에 직업군인 지원 비율은 급감했다. 서울 내 주요 대학 학군단(ROTC)은 정원을 못 채우는 게 현실이다. 다른 장교 육성 기관인 육군3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인기도 한풀 꺾였다. 장교와 더불어 간부의 주축을 이루는 부사관 모집도 차질을 빚고 있다.

매경이코노미 취재를 종합하면 2023년 2분기 전직 지원 기간 신청자는 대위 이하 658명, 중·하사 455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2분기 대비 대위 이하는 200명, 중·하사는 397명 급증했다. 전직 지원 기간은 전역을 지원한 자원이 사회에 나가기 전 교육을 받도록 지정한 기간이다. 해당 기간 신청자 수는 곧 전역할 인원이라고 보면 된다. 초급 간부 전역 희망자 수백 명이 급증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동안은 매년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전역 경쟁이 워낙 치열한 탓에 군 내부에서는 “장기 지원보다 전역 지원이 더 경쟁이 치열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나가는 인재가 많은데 들어오려는 인원도 줄어드는 추세다. 초급 장교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군단은 ‘인원 채우기’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 학군단 대다수가 정원을 못 채웠다. 기껏 모집한 후보생도 유지하기 힘들다. 병사 월급이 오르자 학군단을 탈단하고 병으로 군대를 다녀오려는 인원이 늘어났다. 60년 전 500명 넘게 임관했던 서울대 학군단은 올해 임관한 소위가 9명에 그친다. 고려대와 연세대 등 다른 명문대 역시 학군단 모집에 애로 사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사관 모집도 쉽지 않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사관 획득 계획 인원은 1만2596명이었지만 지원자가 별로 없어 1만837명만 선발했다. 계획한 인원의 86%만 채웠다. 2021년도 선발률 91.5%에서 5.5%포인트 감소했다. 7500여명을 뽑아야 하는 육군의 경우 5815명밖에 뽑지 못했다. 선발률이 타군 대비 더 낮은 77.2%에 그쳤다.

왜 떠나고 외면하나... 처우·인식·비전 모두 부재
한때는 선망의 직업으로 꼽혔던 군 간부가 왜 외면을 받는 것일까. 전·현직 간부들은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낮은 처우와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 그리고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첫째, 고강도 업무 대비 처우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군은 특성상 위험한 야외 훈련이 많고 밤을 새는 당직 근무도 타 직장 대비 많은 편이다. 파견 근무도 비일비재하다. 훈련의 경우 불합리한 규정에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인은 “다른 부대로 파견을 가 훈련에 참여했다. 훈련 기간 동안 초과 근무를 했다. 밤새서 하고 격무가 이어지기 때문에 훈련 종료 후 전투 휴무가 주어진다. 그런데 전투 휴무 하루당 초과 근무 한 시간이 삭감된다. 몸을 혹사시킨 대가로 휴식을 받은 것인데, 왜 멀쩡한 초과 근무를 삭제하는지 모르겠다. 일반 직장이라면 만들지도 못할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전직 군인은 “폐기 일보 직전인 전투 식량을 먹었는데 급식비를 내라고 하더라. 일반 편의점에서도 폐기 직전 음식은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공짜로 주지 않나”고 일갈했다.

밤을 새는 당직 근무는 수당이 현저히 낮다. 군의 당직은 일반 직장의 당직에 비해 할 일이 많다. 병사들을 관리하고, 부대 내의 특이 사항을 매 시간마다 점검해야 한다. 특히 북한과 맞대고 있는 최전방은 쉴 새 없이 적 상황을 살펴야 한다. 하루를 꼬박 세워 당직을 하면 주어지는 수당은 1만원에 그친다. 최저시급에 한창 못 미친다.


둘째, 사회적 인식이 낮아졌다. 월급을 올리는 등 군인 처우 개선 문제에서 간부들은 철저히 소외됐다. 간부들이 소위·하사들의 박봉 문제를 지적하면 “초급 간부보다 병사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사회적 비판에 시달렸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간부는 무능하다’ ‘병사의 주적은 간부’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퍼져나갔다.

셋째, 비전이 사라졌다. 장교 출신을 우대하는 풍토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장교를 따로 채용하는 대기업이 많았다. 그러나 취업난이 가속화되고, 대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면서 장교 전형도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장교를 하느니 병으로 빨리 다녀온 뒤, 교환학생·인턴십 등 스펙을 쌓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졌다. 이는 곧 간부 지원 감소로 이어졌다.

뚜렷한 대책 없는 국방부에...여론 실망
일부 학군단에서는 황당한 해명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독자 제공)

일부 학군단에서는 황당한 해명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독자 제공)


간부 지원율 급감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자, 국방부는 처우 개선과 논란 진화에 나서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일부 군 현직자들의 부적절한 발언과 석연치 않은 해명 탓에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는 3월 2일 월급 인상에 따라 초급 간부와 병사 월급이 역전됐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 자료를 냈다. 그러나 본봉만을 비교한 여론과 달리 각종 수당을 붙여 병사보다 많다고 부풀리면 되냐며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한 전직 하사는 “여론은 병장 월급과 비교하는데, 이병에서 병장까지의 월평균 금액과 비교하면 되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부 지휘관들은 대·중위, 중·하사들에게 논란을 자초하지 말라며 군인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지 말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지탄을 받았다. 군 처우를 지적하는 유튜브를 시청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투도 담겼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군단을 시작하면 후보생 기간을 합쳐 1억2000만원에 달하는 돈을 받는다는 황당한 해명을 해 논란을 샀다. 전직 학군단 출신 A씨는 “군 생활 때 아껴 저축해서 4000만원을 모으고 나오면 ‘대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장교해서 1억2000만원을 타가면 누가 학군단을 안 하려고 하겠나. 이상한 해명이 아닌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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