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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결 방안, 원칙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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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중첩적 채무인수'라는 해법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12일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별도의 재단을 통해 '판결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내 놓았다. 토론회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이 제시한 해법은 '제3자 변제 방식'인 '중첩적 채무인수'라는 방안이었다.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열렸던 네 차례 민관협의회에서 나온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었다. 발제자인 서 국장에 따르면, '순수하게 법적 측면'에서 볼 때, 이 문제는 민사사건의 채권-채무 이행의 문제이며, 채무자인 일본기업 대신 제3자가 변제하고, 우리 피해자들이 이를 수령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기업 대신 채무를 인수하여 '판결금'을 지급할 주체와 관련해서는 현존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지목했다. 그 이유로 이 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신규 재단 설립에 소요되는 절차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원칙을 깨는 '창의적인 접근'

한편 피해자 측에서 '병존적 채무인수'안이 제시된 이후 외교부와의 면담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피고기업의 기여와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대해 서민정 국장은 피고기업의 재정적 기여나 사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국내 의견수렴 결과를 일본정부에 전달하고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하면서, 긴밀한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 표명으로 미루어 볼 때, 현재 남은 것은 일본 측의 '호응'이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일 뿐, 우리 정부가 위 재단을 통해 선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단은 작년 12월 21일 이사회를 열어, 제3자 변제의 주체가 되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개정을 마친 상태다. 재단 이사장은 재단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관여할 경우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라고 정관 개정의 목적을 설명했다. 기존의 정관에는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이 재단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위령과 기념, 문화 학술과 조사 연구를 주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였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 관련 사업은 위 특별법에 근거해 따로 설치된 '지원위원회'가 담당하고 있었으나, 존속기간이 만료되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단에 '현금 지급' 기능을 부여하는 '창의적인 접근'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관 개정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이 지급될 경우, 그 '판결금'은 대법원 판결이 피고기업에 지급할 것을 명령한 '위자료'의 명목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위자료'란 위법한 행위에 의하여 발생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으로서, 대법원 판결은 불법적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의 구제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그러나 특별법에 따라 지급되는 것은 '위로금'으로 표현되어 있어서, 위 재단을 우회로로 이용할 경우 대법원 판결의 핵심인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이라는 의미가 지워질 수밖에 없다.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이 이를 자기 입맛에 맞춰 해석할 것이 뻔히 보인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거부하는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 구제를 실시하는 것이 난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여러 '창의적인 해법'이 제시되어 왔다. 그럼에도 지켜야 할 원칙과 선이 있다. 한일기본조약에 적힌, 1910년에 이르는 협약과 조약이 '이미 무효'라는 문구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석이 그것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입장에서 내려 온 적이 없었고, 이에 입각해서 '이미 무효'가 '원천 무효'라는 해석을 변경한 적이 없다. 대법원 판결은 그런 원칙 위에 서 있는 것이고, 따라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기 나온 대법원 판결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대법원 판결이라고 달라질 수가 없는 것이었다.

프레시안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 당시 서 있던 자리들

확정 판결이 그토록 늦어진 원인으로 사법농단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9년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되었을 때, 서울중앙지검장으로서 수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3차장 검사로서 사법농단 수사팀장이었다.

2019년 2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하면서 그에게 적용한 혐의 가운데 핵심은 2013년에서 2016년에 이르는 기간,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을 '박근혜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지연시키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는 의혹이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되는 경위를 되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은 그 누구보다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그에 따른 해결을 관철시키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마땅하다.

현 집권 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이를 환영하며, 당시 윤영석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가 구제되고 역사를 바로세우는 계기로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한다"고 했다. 일본이 "대법원 판결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 구제와 식민지배의 불법행위를 확인하고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명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일본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데, '국민의힘'의 태도가 먼저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싶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도,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여 일본에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었지만 오사카 G20을 앞두고 2019년 6월에 제시한 이른바 '1+1안'이 그것이다.

이는 "소송 당사자인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한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하여 확정판결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해당액을 지급"한다는 방안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하고 7월 1일 수출규제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1+1안'을 보완하는 다양한 안이 제시되었는데,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바른미래당의 하태경 의원이 '2+1(한국 정부와 기업+일본 기업)안', '2+2(한국 정부와 기업+일본 정부와 기업)안' 등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의 원칙을 벗어난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들 제안에는 적어도 일본 피고 기업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윤덕민 주일대사는 국립외교원장이던 2015년, 한 칼럼을 통해 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메이지산업유산 등록과 관련해서 일본 정부가 "과거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노역했던 사실을 인정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표명한 사실을 '우리의 끈질긴 전방위 외교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한 바 있다.

우리 대법원 판결이 그러한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희생자의 존재를 인정한 일본 정부에 그 책임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주일대사로서 해야 할 일이다.

심규선 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도 2021년 12월에 실시된 한 인터뷰에서 "결국 문희상 안으로 귀결될 것"이라면서, '양국 기업과 정부의 개입'이 해결의 조건이라고 하여 일본 정부와 기업의 행동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피력했었다.

이렇게 보면,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태도는 당파를 불문하고 국가 차원의 의지를 담아낸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왜 지금 정부가 제시하는 안에는 이러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는가?

정부가 마련하고 있다는 해법에서 일본이 취할 행동은, 우리 정부의 선제적 행동에 대한 호응의 수준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도 일본 측에 '기여 및 사과'가 중요하다는 점을 전달은 하겠다는 것이며,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미리 밝히고 있다,

설령, 일본이 호응해서 '기여와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도의적 수준의 행동으로서, 법적 책임의 이행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대법원 판결은 형해화의 수순으로 들어서게 된다. 지난 1월 12일의 토론회에서 강력한 반발이 나왔던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국제법 위반론의 덫

토론회 내용은 1월 16일의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전달되었고,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을 놓고 견해차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17일, 조현동 외교1차관도 "일본으로부터 호응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면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자못 강력한 입장을 피력했다.

그럼에도 일본에 요구하는 것이 '호응 조치'인 이상, 그것이 일본 측 피고기업의 책임 이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 즉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만들었고, 한국 정부가 이를 시정할 책임이 있다'는 '국제법 위반론'을 수용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어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한덕수 총리가 아베 전 총리 국장에 참가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국제법적으로 보면 일반적으로 이해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라고 발언한 것이 그 전조였다. 이러한 일본의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해법이 의미하는 바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문제해결의 문이 최종적으로 닫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문을 다시 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의 과정이 보여준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국제법 위반론을 뒤집어 쓴 결과 우리 정부가 기껏 내놓은 해법이 채무자의 호의에 기대는 방안이다. 그런데 정작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와 일본제철은 '언급을 삼가겠다'면서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일본 기업이 '기여'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것으로 청구권 문제를 해결한 1965년의 재현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일본의 '호응'이 없을 경우 1965년에 설정한 마지노선까지 무너지는 꼴이 될 수 있다. 물론 1990년대 이래 양국 시민과 정부가 노력하는 가운데 어렵게 쌓아 올린 역사인식의 진전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이른바 '해법'의 방향과 속도를 재조정해야 한다

왜 이러는가? 그 방향과 속도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이 정부가 이러한 방식을 강행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먼저 방향과 관련된 것으로, 국내정치적 요인이 있다. 이번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대일외교를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과 법무장관, 주일대사와 여당, 그리고 재단 이사장을 포함해서 모두 한 때 견지했던 입장에서 물러나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정부가 대일협상의 마지막 고비에서 협상의 지렛대를 확보하려면, 과거 정부 시기의 대일외교에 대한 정밀한 복기와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다음 속도와 관련된 것으로, 국제정치적 요인이 있다. 이 정부에서는 '현금화 시계'를 이유로 '속도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금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하며,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한 때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시간의 압력은 한미일 안보협력 복원을 최고 중요 과제의 하나로 설정한 데서 오는 국제정치 일정상의 압력이라 생각된다.

일본이 안전보장 3개 문서를 발표한 것이 지난 해 12월 16일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이 적극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연말에는 미국 및 일본의 전략구상과 동조하는 내용으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이 발표되었다.

그 이면에 12월 26일 도쿄에서 국장급 협의가 열려 서민정 국장이 공개토론회 개최 계획을 전달했고, 올해 1월 3일에는 한국의 한 미디어를 통해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이 과거에도 검토된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그동안 '병존적 채무인수'라는 용어로 소개되었던 정부 방안이 '중첩적 채무인수'라는 용어로 공개토론회에서 제시되었다.

마침 기시다 총리는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1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에 언급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속히 현안을 해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고 외교 당국 간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1월 16일에는 다시 국장급 회의가 열렸다.

이후 들려오는 것은 피고기업의 '기여'가 필요하다면 일본에 배상금 반환을 요구하는 '구상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피고기업이 재단에 기부를 해도 우리 법원의 판결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 당시, 마지막 단계에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압박해 오던 일본의 모습이 겹쳐진다.

프레시안

▲ 17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역사를 지키는 광주 시민사회단체 일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도록 하는 정부 배상안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가 한일관계 개선에 골몰한 나머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법을 둘러싸고, 원칙에서 너무 멀어져 가고 있다. 바늘귀에 실을 넣지 않고 바느질하겠다고 덤비는 격이다. 이 시점에서 다시 대법원 판결이 서 있던 지점으로 돌아가 해결의 기본 원칙들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주일대사와 현 집권여당 중진들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한 때 섰던 그 지점이다. 국제법 위반론으로 압박해 오는 일본의 입장대로 현 정부 방침을 밀고 가다가는 백년이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역사의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일본과의 공조를 강조하며, 대외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는 것이 가치외교다. 국제규범을 지지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규칙기반 질서를 강화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세우는 국제규범과 인권의 가치에는 피해자 중심의 접근이라는 원칙이 담겨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이를 공유하고 있다면 강제동원 문제에 관한 해법도 그 원칙 위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평화재단 (staff@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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