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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지하는 왜 통일 후 행정구역을 고민했나?

조선일보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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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 김두규의 國運風水]
지자체 경쟁만 과열시키는
’특별’ ‘특례’ 행정구역 문제
지난 5월 별세한 시인 김지하. ‘생명학’을 화두로 삼은 시인은 생전에 풍수에 관심을 뒀다. /조선일보 DB

지난 5월 별세한 시인 김지하. ‘생명학’을 화두로 삼은 시인은 생전에 풍수에 관심을 뒀다. /조선일보 DB


금년 5월 작고한 시인 김지하 선생님과의 에피소드다.

2009년 봄, 전화를 주셨다. “어이, 김 박사. 너, 북한에서 유명 인사 되었어!” 김 시인은 기분에 따라 필자를 김 교수, 김 박사, 이놈, 너 등 편하게 부르셨다. 풍수는 시인의 화두인 ‘생명학’에 중요했기에 가끔 뵙곤 했다. 시인은 “한반도를 서기가 어린 땅, 즉 ‘서기권(瑞氣圈)’으로 만들 수 있는 담론, 즉 서기권 풍수를 고민하라”고 하셨다.

‘북한 이야기’ 사연은 이렇다. 그보다 1년 전인 2008년 초, 시인께서 전화를 주셨다. “서울대통일평화연구소에서 특별심포지엄을 하는데 초청받았네. 주제는 ‘생명·평화·통일’이야. 마지막 부분에 ‘남북한 통일 후 행정구역 개편’을 다룰 생각인데 풍수로 보는 행정구역 개편안을 소개할 셈이야. 연구 좀 해봐!”

얼마 후 ‘통일 후 행정구역 개편과 풍수’란 제목으로 소론을 보내드렸다. 시인은 발표 말미에 필자 원고를 그대로 소개하였다. 이후 글은 서울대통일평화연구소에서 단행본에 포함되어 출간되었고, 모 인터넷 매체에 전문이 소개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1982년 부산대 철학과 윤노빈 교수가 가족과 함께 월북한 사건이 있었다. 윤 교수는 김 시인과 원주에서 함께 자라고 함께 공부하였던 절친이다. 윤 교수가 왜 월북을 했는지에 대해서 김 시인은 늘 의아해하셨다. 북으로 갔지만,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었던지 윤 교수가 북에서 시인의 강연문을 보았던 듯하다. 얼마 후 일본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풍수로 보는 통일 후 행정구역 개편안을 흥미롭게 읽었다”고 김 시인에게 전언한 것이다. 김 시인은 그 소식을 필자에게 전해주시며 농담을 하신 것이다. 짧은 에피소드이다.

그때 김 시인께 보내드렸던 행정구역 개편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통일 후 행정구역 개편은 ‘강국으로 가는 길·국토보존·지역감정 해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스러운(풍수적) 행정구역 설정은 산이 아닌 강(江)이다. ‘같은 물을 먹으면 생각이 같고, 다른 물을 먹으면 생각도 달라진다[同水同想 異水異想]’이라 하였다. ‘금강권’은 충남·충북·전북 일부가 하나의 행정구역이 된다. ‘섬진강권’은 전북·전남·경남 일부가 하나가 된다. 전라도도 경상도도 없어진다….”


이 같은 행정구역의 이점은 무엇인가? “험악한 산세를 파괴하지 않아 국토가 보존되며, 물길 따라 도로가 확장되기 때문에 건설비가 절감된다. 또 강물 따라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인심으로 지역감정이 없어진다. 바다가 새롭게 되고, 바다가 중요한 영토라는 인식 확장으로 인한 심리적 영토 확장 효과와 조선업·해군력 강화로 세계 해양 강국이 될 수 있다….”


뜬금없이 김지하 선생과 행정구역을 끌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얼마 전 강원도가 특별자치도가 된 뒤, 전라북도가 또 특별자치도가 된다는 보도가 있다. 그 궁색한 이유들은 생략한다. 충북·충남·경남·전남만이 특별자치도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그냥 있을까? 몇 년 전에는 특례시란 행정구역이 생겼다. 대한민국 행정구역을 도표화해보니 정말 ‘특별’하다. 난맥상이다.<도표 참고>. 행안부 차관으로 정년퇴직한 지인의 쓴소리이다. “지역소멸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지자체만 특별하다는 경쟁의식 속에 남발되는 특별시·특별자치도·특례시, 참으로 답답합니다. 행정구역 개편은 국운 문제입니다.”

1599년 선조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놓고 말한다. “탄환만 한 작은 나라에 자잘한 고을 360개를 무엇 때문에 설치하였는가. … 짐의 생각은 300이란 숫자 따지지 말고 통합하여 줄이고 싶다.”(‘선조실록’) 그러나 선조 임금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번 정부에서 부디 이것만큼은 ‘혁명적’으로 혁파하기를 기원한다. “좌절된 선지자” 김지하 시인을 추모하며!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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