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어디에도 있을 법한, 변화하는 감정에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배우 홍경이 연기한 ‘약한영웅’의 오범석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감정은 복잡하다. 그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건 인물에 온전히 녹아든 홍경의 연기 덕이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클래스 1)’(이하 약한영웅)은 ‘상위 1% 모범생 연시은(박지훈)이 처음으로 친구가 된 수호(최현욱), 범석과 함께 수많은 폭력에 맞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약한 소년의 강한 액션 성장 드라마다.
웨이브에 따르면 ‘약한영웅’은 공개 직후 단숨에 2022년 유료 가입자 견인 1위를 기록했다. 아이치이(iQIYI) 미국과 대만을 비롯해 미주 '코코와(KOCOWA)'를 통해 공개된 ‘비키(ViKi)’ 채널에서 평점 9.9점을 받으며 K콘텐츠의 저력을 입증했고, 공개 2주 차에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한 11월 넷째 주 TV&OTT 화제성에서 쟁쟁한 경쟁작을 제치고 SNS 부문 1위에 올랐다.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약한영웅’ 공개를 기념에 인터뷰를 진행한 홍경은 “내가 이 친구(범석)의 손을 잘 잡고 걸은 건지 모르겠지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위로가 된다”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 범석 역을 제안받았을 땐 “캐릭터가 너무 어렵다. 못 할 것 같다”를 되풀이했다. 오래 고민해 출연을 결심했다. 한준희 크리에이터는 홍경이 고민하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줬다.
홍경이 인터뷰 동안 가장 많이 한 말은 “범석이에 대해 어떠한 말을 하는 게 힘들다. 한 사람이 한 가지의 모습만 가진 게 아닌 것처럼, 범석이에 관해 말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는 것. 그는 “내가 말하는 게 범석의 의도가 될까 조심스럽다. 뭔가 분명 느껴지지만 입을 꾹 다물고 싶다. 10대뿐 아니라 이런 종류의 관계 속에서 오는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범석은 10대를 지나는 소년이었다”고 답했다.
홍경은 기자들과 ‘약한영웅’, 그리고 극 중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해석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 생각을 공유하는 자체가 정말 건강하지 않나. 이해하진 못해도 알아가려는 노력과 과정 담겼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품이 줄 수 있는 가장 재밌고 뜻깊은 요소다. 공통된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게 화합이자 연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얗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피부, 동그란 안경, 길게 내린 앞머리와 하얀 가디건. 범석은 학창시절 하나쯤은 있을 법한 학생이었다. 다만 이전 학교에서부터 학교 폭력에 피해자였고, 전학을 와서도 동급생들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범석의 흑화가 진행되고 나서는 어두운 가디건을 입었다.
홍경은 “의도가 아닌 건 없었다. 의상팀과 분장팀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동전 뒤집듯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보이길 바랐다. 어떻게 하면 단순히 악해 보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고등학생다울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범석이 숨는 공간은 방구석 옷장이다. 어두운 그곳에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바들바들 떤다. “집에라는 건 가면을 쓰지 않고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이다. 범석에겐 그 옷장이 (집처럼)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아닐까”라고 짐작하며 “미술팀의 노고에 감사하다. 범석이가 입양되기 전 만져봤을 법한 물건들을 가져다주셨다”고 인사했다.
범석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그려서 표현하진 않았다. ‘그 순간 그 친구(범석)가 느끼는 것에 온전히 다가가 보자’고 생각하고 순간의 솔직한 감정을 담았다. “모든 순간 같이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셨다”면서 가장 가까이서 범석의 감정을 담아준 촬영 감독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공들인 장면을 하나 꼽을 수가 없어요. 모든 게 연결고리가 됐죠. 세밀하고 섬세하게 잘 터치해주셨고, 따라가는 것조차 벅찰 것 같았어요. 모든 장면이 쌓였죠. 범석이가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지만, 누군가 등 돌리더라도 그 친구와 함께 있으려 했어요.”
범석은 극 중 가장 입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해선 안 될 것만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시청자를 빠트린다. 홍경은 “의지와 이성적 판단으로 선택할 수 있으면 좋지만, 10대엔 감정적으로 휩쓸린다. 시청자 역시 과연 범석이가 의도적이고 계산적일까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의지로 나아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범석도 평범한 10대였다.
시은과 수호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그는 “사랑이라는 게 연인 간의 사랑일 수도 가족 간의 사랑일 수도 있다. 사랑이 다르더라도 깊이는 깊다. 범석에겐 (두 사람이) 첫 친구였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 모르는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비록 서툴렀지만, 마음만은 순수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해석했다.
연시은 역의 박지훈, 안수호 역의 최현욱과 진한 호흡을 나눴다. 박지훈은 자발적 아웃사이더이자 공부밖에 모르는 연시은을 연기했다. 홍경은 “(박)지훈 배우의 작품을 보면 힘이 대단하다. 내가 배운 게 더 많다. 온전히 작품을 끌어본 경험이 많은 배우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표현하는 직업도 그렇다. 집중도는 그 분(박지훈)이 더 높았다. 시은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 배우의 눈에서 간접적으로 다 느껴졌다. 정말 비범한 배우”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최현욱은 연시은과 결이 다른 안수호를 통해 세 인물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의리의 파이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시은, 겁도 없이 친구를 위해 나선 오범석을 지켜준다. 최현욱에 관해서는 “너무 유연하다. 본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많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 그 안에서 자연스러움을 찾는다”고 바라봤다.
전석대 역의 신승호에 관해서는 “동갑이라 행복했다. 같은 나이의 배우가 같은 시기를 살아가면서 ‘D.P.’에 이어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뜻깊다. ‘D.P.’에서는 존재만으로도 위협적이고 몸이 움츠러드는 느낌을 받았다. ‘약한영웅’에서도 힘이 강하더라.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 액션 하나에도 책임감이 있었다.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전개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10대의 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수년 전,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쉴 때는 영화관을 찾아 영화를 보며 위로를 얻었다. “지금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당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과 영화를 보곤 했던 것까지 모두 감사하다”는 그는 “당시엔 어떻게 먹고 살지, 뭘 해서 먹고살지 고민이 컸다. 혼자 셀프 테이프를 찍어 오디션에 내면서 준비했다. 순탄치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의 괴리가 크지만 지금까지 올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어두운 동굴에서 손전등 하나 들고 찾아 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치열했고, 온 마음을 쏟았죠.”
‘약한영웅’의 범석은 어려운 인물이었다. ‘연기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며 “‘순간에 충실하고 솔직하자’ 그게 내가 가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석이를 향한 호평에 유수민 감독을 언급한 홍경은 “감독님 덕이다. 섬세하고 따듯하고 열려 계신 분이다. 배우를 처음부터 끝까지 믿어주기 힘들 텐데 그 믿음에 너무 감사했다. 배우는 연기로 설득시켜서 믿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의심할지라도 감독님은 당신이 맞다고 해주셨다. ‘이 정도의 믿음을 받아도 되나’ 생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KBS2 ‘학교 2017’(2017)로 출발해 영화 ‘결백’, 넷플릭스 ‘디.피.(D.P.)’의 상병 류이강, 영화 ‘정말 먼 곳’의 시인 현민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색깔을 굳혀가고 있는 홍경이다. 두려우면서도 당기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은데 또 해야 할 것만 같은 감정들이 그의 원동력이다.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나를 당긴다. 그럴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든다”는 답을 내놓는 천생 배우다.
아직 ‘약한영웅’을 시청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정보 없이 보셨으면 한다. 전복되듯 큰 충격이 올 거라 생각한다”면서 “작품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왜 그랬을까’ 의견을 서로 부딪쳐보면 어떨까.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을 것 같다. 사회 전반에 이런 분위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웨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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