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믹스의 주요 메뉴. (Evan Sung 제공) |
Celtuce namul(셀러리와 상추 교배종 나물), Egg jjim(계란찜), Gim(김)….
한국어인 듯 영어인 듯 알쏭달쏭한 단어로 신메뉴를 표기했다. 청국장, 보리굴비도 그냥 한국 발음을 영어로 옮겨 표기한다. 실제 한국 식재료가 창의적인 모습으로 현지인에게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지금 예약하려 해도 반년 이상 걸린다는 뉴욕 한식당 ‘아토믹스’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오른 사진과 글들이다. 아토믹스는 단순히 미국 내 인기 맛집 정도가 아니다. 올해 7월에는 미식 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에서 미국 1위, 전 세계 33위 식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 순위는 세계 미식가 1000명이 최고의 음식, 서비스, 경험을 기준으로 엄선해 발표한다.
한식당 이름이 50위 이내에 오른 건 이 발표가 시작된 지 20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 식당 중에서는 최고 순위, 한국인 셰프 최초 수상이라는 점도 눈길 끈다. 여기에 더해 서비스 부문에서는 특별상(Gin Mare ‘Art of Hospitality’ Award)도 받았다. 고객에게 최고의 환대와 서비스를 하는 식당으로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아토믹스는 이와 별도로 또 다른 레스토랑 평점을 매기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매년 원스타와 투스타를 번갈아 받기도 한다. BTS, ‘오징어 게임’ 출연진 등 스타들의 단골로도 유명하다.
뉴욕에서 아토믹스를 창업한 박정현·박정은 부부 셰프. (Peter ash lee 제공) |
▶아토믹스 누가 열었나
이 레스토랑을 이끄는 이들은 박정현·박정은 부부 셰프다.
이들은 유학파일까? 아니다. 경희대 조리과학과 동문이다. 해외 경험이 많을까? 그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유명한 한식당 ‘정식당’이 뉴욕 지점을 열 때 박정현 셰프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새로운 운명이 열렸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정식당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 시기에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가 뉴욕에 ‘정식’을 연다 해서 뉴욕 창립 멤버로 오게 됐지요. 그때 아내(박정은 셰프)도 함께 왔습니다. 뉴욕에 와서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뉴욕 ‘정식’에서 셰프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저희의 첫 레스토랑인 ‘아토보이’를 열게 됐습니다.”
아토보이는 개점 초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당시 40달러 정도만 내면 15가지 반찬 중 3가지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현지에서 ‘코리안 타파스(스페인에서 식사 전에 술과 곁들여 간단히 먹는 소량의 음식) 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문 연 지 10개월째 되던 때는 뉴욕타임스 음식 칼럼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애초 박 셰프 부부는 한국식 반찬 발음을 그냥 영어로 바꾼 수준으로 메뉴를 계속 선보였다. 그래서인지 현지인들도 ‘창란젓’ 같은 발음을 그냥 그대로 발음할 수 있었다. 이는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한식당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세계 33위 한식당에 오른 미국 뉴욕 소재 ‘아토믹스’. (Evan Sung 제공) |
▶2018년 아토믹스 서막 열다
이런 다양한 실험을 거친 후 부부는 2018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아토믹스’를 열고 한식의 진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아토보이를 먼저 낸 이유는 처음에는 좀 더 캐주얼하고 편한 공간으로 많은 사람에게 우리 음식을 먹어볼 수 있게 하려는 시도였어요. 아토보이를 통해 어느 정도 뉴욕의 미식가들과 현지인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우리 음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되자 자신감이 생기면서 아토믹스를 열기로 했습니다.” (박정현 셰프)
눈길을 끄는 건 뉴욕 한식당 하면 흔히 한인들이나 한국인 관광객, 유학생들이 찾을 법한데 대부분 고객이 현지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보리굴비를 먹기 위해 젓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가 하면 매워하면서도 더덕구이를 입에 넣은 후 환하게 웃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 자연스레 올린다.
여기서 의문. 사실 미국은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인력난이 극심하다. 게다가 레스토랑마다 서비스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상황에서 아토믹스는 서비스 특별상까지 받아냈다. 그 저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실제 아토믹스를 다녀온 이들은 남다른 유니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식기와 담음새 등 보이는 부분부터 특별하다고 평가한다. 그보다 더 큰 칭찬은 직원들 태도다. 음식 설명은 기본, 식사가 물 흐르듯이 진행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지인 직원에게 잘 모르는 한국의 음식 문화나 재료에 대해 많은 교육을 해야 했어요. 당연히 시간이나 노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와서 느낀 가장 놀란 점 중 하나는 서비스직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이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서빙하는 파트타임 혹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전문직으로 생각하더군요. 이런 사람들은 서비스를 고객 경험 그리고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드는 가치 있는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서비스 마인드를 갖고 있는 직원을 집중적으로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더욱 감동시킬까?’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세 번째 레스토랑 ‘나로’ 출격 준비
박 셰프 부부는 여세를 몰아 새로운 레스토랑을 또 준비 중이다. 뉴욕 록펠러센터에 ‘나로’라는 이름의 한식당을 낼 예정.
박정현 셰프는 “아토보이와 아토믹스가 한식이라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오면 퓨전 음식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나로’는 한국인 입장에서도 ‘와~ 맛있는 한식이구나’라고 할 정도로 전통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한식에 어느 정도 입이 길들여진 현지인 고객이라면 정통 한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법하다. 더불어 부부는 국내외 식품 기업, 한식당과 꾸준히 컬래버 작업을 하면서 좀 더 다양한 국가에 소개될 수 있도록 힘쓰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 미쉐린 2스타 한식당 ‘권숙수’와 협업해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 것은 물론 오데뜨 등 현지 기업, 맛집과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일은 음식만이 아니라 문화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문화를 좀 더 다양한 사람이 즐길 수 있고, 또 좀 더 다양한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레스토랑을 기획하는 이유입니다. 늘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고, 어려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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