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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외면한 벤투…잔인했던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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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전 관중 ‘출전 염원 연호’
단 1분의 뛸 기회조차 주지 않아
벤투 “기량 문제 아닌 선택 문제”
이 “성원에 걸맞은 선수 될 것”
경향신문

이강인이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카메룬과의 평가전에 출전하지 못한 채 경기 후 동료들과 함께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카메룬의 평가전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를 향해 팬들이 이름을 연호하며 엄청난 응원을 보낸 반면, 팀을 지휘하는 감독을 향해서는 야유가 쏟아진 것이다.

이 장면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바로 이강인(21·마요르카)이었다. 이날 이강인이 받은 환호성은 대표팀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손흥민(토트넘) 못지않았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은 끝내 이강인을 외면했다. 후반에 교체카드로 쓴 황의조(올림피아코스)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되자 팬들은 이강인의 이름을 연호하며 기대감을 드러냈지만, 벤투 감독은 백승호(전북)를 기용하며 끝내 이강인을 선택하지 않았다.

경기 중간 전광판에 모습이 잡힐 때마다 팬들의 환호성을 받았던 이강인이 경기에 투입되지 못하자 팬들도 단단히 뿔이 났다. 벤투 감독이 전광판에 잡힐 땐 이강인을 내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인 듯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경기 후 이강인에 대한 벤투 감독의 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자꾸 팀보다는 선수 개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모든 선수를 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 경기 중에 어떤 선수가 필요한지 분석했는데 이강인이 아닌 다른 옵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술적인 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팬들이 이강인의 이름을 연호한 것에 대해 “나도 귀가 두 개니 들을 수밖에 없다. 잘 들었다. 팬들이 이강인을 사랑하는, 좋은 감정을 갖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한다. 좋게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이강인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벤투 감독은 ‘이강인이 뭘 더 보완해야 하나’는 질문에 “발전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였다”고 했다. 기량이 아닌, 전술적 차원에서 선택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이번 두 차례 평가전에서 벤투 감독이 가장 크게 신경써야 했던 부분은 수비 쪽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같은 강팀을 상대로 점유율 축구를 할 수는 없기에 이를 대비하는 데 신경썼다. 김민재(나폴리)와 김진수(전북)를 제외하면 중앙수비 한쪽과 오른쪽 풀백은 얼굴이 바뀌었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1명을 두거나 2명을 두는 전술을 번갈아 사용하며 테스트를 했다. 수비에 비하면 공격 쪽은 사실상 변동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카메룬전에서 벤투 감독이 선택한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은 손흥민 밑에서 사실상 투톱에 가깝게 움직이면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최전방부터 쉼없이 압박을 가했는데, 이런 스타일을 벤투 감독이 가장 선호한다. 창의적인 플레이에 능한 이강인은 벤투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선수 기용은 감독의 권한인 만큼 존중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 인정받고 2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온 선수에게 단 1분의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정우영을 쓸 수 있었다면, 이강인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팀과 이강인 모두 다독이며 진화에 나섰다. 손흥민은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강인이는 정말 좋은 선수고 재능도 있지만, 대표팀은 어느 한 명을 위한 팀이 아니다. 감독님도 분명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동시에 “나도 강인이 나이 때 분데스리가에서 뛰면서도 대표팀에서는 매번 경기에 나서지 못해 정말 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강인이가 이런 부분을 통해 더 성장하고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감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강인이 아쉬움을 털어내고 다시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강인은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며 “뛰고 싶으니까 아쉽긴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소속팀으로 돌아가 다시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이강인은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기장에서 많은 분이 제 이름을 불러 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함성과 성원에 걸맞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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