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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인플레' 이탈리아 총선, 주요 유럽국 첫 극우 총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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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이끄는 우파연합이 25일(현지시간) 조기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조르자 멜로니(45) FdI 대표가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멜로니 대표는 주요 유럽 국가 중에 2차 세계대전 후 첫 극우 총리라는 타이틀도 예고했다. 이탈리아에선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1922~43년 집권)의 등장 이후 100년 만에 가장 극우 성향의 집권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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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형제들의 당수 조르자 멜로니가 '감사합니다, 이탈리아'라고 쓰인 플레카드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파연합, 상·하원 모두 넉넉한 과반



이날 하원 개표가 61.7% 진행된 상황에서 우파연합은 43.7%를 득표해 차기 정부 구성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40%)을 넘어섰다. FdI는 26.5%를 얻어 정당별 득표에서도 1위가 확실시 된다. 우파연합에 속한 동맹(Lega)과 전진하는이탈리아당(FI)은 8%대, 노이 모데라티는 1% 미만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상원(76.1% 개표)에서도 우파연합이 44%를 득표해 앞서고 있다. 반면 좌파연합은 하원 27.1%, 상원 26.7% 득표에 그쳤다.

이에 따라 우파연합은 하원 400석 중 227∼257석, 상원 200석 중 111∼131석 등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최종 결과는 26일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날 최종 투표율은 63.8%로, 지난 총선(72.9%) 대비 9%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우파연합의 승리가 굳어지자, 멜로니 대표는 26일 새벽 “유권자들은 우파가 이탈리아를 이끌기 원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고 선언했다. 이어 “우리는 모든 이탈리아인을 위해 정치할 것이며, 결코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PD)은 즉각 패배를 인정했다. 데보라 세라치아 PD 부대표는 “오늘은 국가에 슬픈 날”이라며 “의회에서는 우파가 과반을 차지했지만, 국가 전체에선 그렇지 않다”는 논평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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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사임한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AP=연합뉴스]





'최악 인플레'가 감세·反난민 극우 승리



지난 2018년 총선에서 지지율 4%대의 군소 정당이던 FdI는 불과 4년 만에 유럽 3위 경제국의 제1당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2월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가 거국 내각을 구성할 당시, 주요 정당 중 유일하게 내각에 참여하지 않고 야당을 자처한 게 존재감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로이터통신은 우파연합의 승리 요인으로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이탈리아의 인플레이션은 지난달 9.1%로, 1997년 유럽연합(EU) 조화 지수(EU-harmonised index) 집계 시작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고용 상황도 악화됐다. 이탈리아 통계청 ISTAT에 따르면, 지난 7월 임시계약직 종사자 수는 1977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였다. 임시직·저임금 노동이 만연하자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해외로 빠져나갔다.

극우 세력은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 저성장, 낮은 고용 등으로 지난 정부에 좌절감을 느낀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하며 지지세를 불렸다. 멜로니 대표는 정부지출 확대, 대대적인 감세를 공약하며 생활고에 불만을 품은 이들의 표심을 끌어모았다.

이민과 난민에 적대적인 정서도 적극 활용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와 마주한 유럽의 관문 국가로, 반(反) 난민 정서가 특히 강하다. 지난 2018년 설문조사에서 ‘이민자가 많아지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답한 이탈리아인의 비율은 58%로, 전체 유럽인 평균(14%)의 4배가 넘었다. ‘범죄율 상승이 이민자 책임’이라고 답한 이탈리아인(74%) 역시, 유럽 평균(57%)을 웃돌았다.

멜로니 대표는 이탈리아 군대를 보내 리비아 해안을 봉쇄함으로써 아프리카 난민의 유입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달엔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피해자 동의 없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려 구설에 올랐다. ‘2차 가해’ ‘인종 혐오’ 논란도 있었지만 멜로니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또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어도 부모가 외국인이면 시민권 부여하지 않겠다는 공약도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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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한 아연 도금 공장. 유럽의 가스 가격 급등에 따라 공장 운영이 불투명하다. AP=연합뉴스





NYT "민족주의 송곳니 드러낼 것"



이탈리아의 우파연합 돌풍은 지난 6월 프랑스 총선에서 제3당으로 급성장한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 지난 11일 스웨덴 총선에서 원내 2당에 등극한 스웨덴민주당에 이은 유럽 정치권의 '우향우'를 반영한다. 독일·프랑스와 함께 EU를 주도하는 이탈리아의 극우 발진은 향후 EU의 정책·노선을 뒤흔들 수 있다. 좌파연합의 레타 PD 대표는 “(극우 집권시) 이탈리아가 독일‧프랑스와 손발을 맞춰왔던 기존의 경제‧외교 정책 노선을 깨고, 극우 성향의 헝가리‧폴란드‧체코 등과 손잡고 유럽 2부 리그로 강등될 수 있다”며 “이는 이탈리아와 EU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親)러·친푸틴 성향이 뚜렷한 마테오 살비니 동맹당수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FI 대표가 차기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수 있다는 것도 유럽 각국에 불안 요소다. 겨울철 에너지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 이탈리아 차기 정부가 유럽 파트너와의 연대보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꾀할 가능성이 있고, 이는 EU와 나토 분열의 빌미가 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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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당수 마테오 살비니(오른쪽)가 푸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옆에서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AP=연합뉴스



다만, 이탈리아 차기 정부가 당장 극우적인 색채를 내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많다. EU가 2026년까지 제공하는 1915억 유로(약 264조원)에 이르는 신종 코로나 회복 기금을 정상적으로 받으려면 EU에 협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친유럽적인 양의 탈은 쓴 멜로니가 일단 집권하면, 민족주의의 송곳니를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대통령이 연정의 다수당 당수를 총리로 지명하는 게 일반적이며, 이후 상·하원의 신임투표를 거친다. 총리가 내각 구성원을 지명해 내각 명단과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내각 구성이 완료된다. 이번 총선 이후 새 국회 개원일은 다음달 13일이다. 이에 따라 1946년 이후 68번째가 될 차기 정부는 아무리 일러도 다음달 말에 구성될 전망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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