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웅변술의 대가인 정치인들은 말에서 ‘은유’를 많이 사용합니다. 시인이나 능변가 못지 않는 화려한 수사법을 발휘해 말로 정치를 합니다. 그런 정치인들이 쓰는 수사학들을 단초로 ‘살아있는 생물’로 비유되는 현실 정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맥을 짚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K정치의 속살과 민낯을 밝히는 연재를 할 계획입니다.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그런데 왜 우리가 저쪽 당이랑 마주 보고 싸우고, 행정부는 중간에서 팔짱 끼고 구경하는 구조로 돼 있지?”
한 민주당 국회의원. 국회 본청의 각 상임위 회의장 의석 배치가 이상하다며 보좌진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여야가 서로 쳐다보고, 행정부는 그사이에 껴 있는 좌석 배치 형식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국회 상임위원회는 국정감사든 전체 회의를 할 때 ‘U’자 모양의 좌석구조로 돼 있습니다. 여와 야가 정면으로 마주 보도록 돼 있고, 그 사이에 행정부가 앉습니다. 그래서 각 부처 장관에게 질의할 땐 여당 의원이든 야당 의원이든 몸을 틀어야 합니다.
반면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국회 상임위는 행정부 관료를 마주 보고 여야 의원들이 나란히 앉도록 좌석이 배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형식은 내용을 지배합니다. 이런 공간 배치도가 소모적이고 극단적인 정치 공방을 늘린다는 지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여야는 매번 극렬히 다투고, 대립하고, 설전합니다. 견제받고 감시받아야 할 행정부는 뒷짐 지고 지켜봅니다.
좌석 배치 만이 원인은 아니겠지만, 입법부가 행정부에 충분히 질의하지 못하고 의원들이 삿대질만 하다가 국정감사, 전체 회의가 끝나는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언론은 이를 놓고 ‘정책질의 사라진 맹탕 국감’ ‘정부 견제 헛바퀴, 국감 무용론’이라는 프레임을 달아 보도합니다. 이는 다시 유권자에게 막연한 정치혐오를 심어주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 문제는 14년 전에 공론화됐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습니다. 2008년 당시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은 ‘U’자형 좌석 배치를 미국 상임위처럼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었습니다. 여야의 ‘정치공방적 좌석 배치’를 행정부에 대한 ‘정책견제적 좌석 배치’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예산 문제로 좌초돼 유야무야됐습니다.
20대 국회에서 상임위 간사를 맡았던 한 중진의원은 여야 간 불필요한 갈등이 지속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 당 간사와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귀띔했습니다. 고성과 막말이 오가는 정쟁의 시간이 길어질 때는 간사들이 흐름을 끊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회의장 밖에서 때론 더 언성을 더 높여가며 싸우면 안에 있는 위원들이 진정하고 ‘다음 질의를 이어가겠습니다’하면서 상황이 종결된다. 이런 건 짜고 할 수도 없어서 두 간사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의원들이 싸움을 연출하고,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럼 왜 의회는 싸우기만 하고 행정부 견제는 안해도 바뀌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양당제가 ‘독과점 기업’이기 때문이라는 은유를 썼습니다. 서로 으르렁대며 겉으론 싸우는 형태를 취하곤 있지만, 실상은 ‘독점과 담합’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라는 겁니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의회 권력은 세서 산업 분야의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독과점을 규제할 기관도 없습니다. 산업이라면 고객 요구를 충족 못 하는 기업은 도태되고, 스타트업이 혁신을 일으켜 자정작용과 순환이 일어날 텐데 정치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정책질의를 못하더라도 여야가 매번 ‘공수교대’하면서 집권할 수 있습니다.
정기국회가 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국정감사는 10월 4일부터 24일까지로 일정이 확정됐습니다. 이번 국회와 국정감사야말로 ‘사정 정국’ ‘방탄 국회’ 구도로 가면서 여야 강대강 대치 구도가 심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도 매년 그랬듯이 ‘정쟁에 묻혀 사라진 민생현안’, ‘여야 대치로 반쪽 국감’, ‘정책 국감 실종’과 같은 헤드라인이 언론보도를 장식할지, 유권자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