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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엔 없고 목동엔 있다, 22만t 폭포비 삼킨 '거대한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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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억 원을 들인 보람이 있죠?”

서울 양천구 목동빗물펌프장에서 만난 김명보 양천구 치수과 주무관이 말했다. 서울 강남을 침수시킨 이번 폭포비에도 양천구 신월동과 강서구 화곡동 등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기자를 안내하던 그는 빗물펌프장 근처 목동유수지에 있는 ‘거대한 구멍’을 가리켰다. 축구장 3개 크기의 목동유수지 바닥에 지름 7.5m의 구멍이 있었다. 깜깜한 구멍 아래 지하 40m 지점에 터널이 있다. 지름 10m의 터널은 목동의 서쪽 신월동과 화곡동으로 4.7㎞ 길이로 이어져 있다. 지난 8~9일 쏟아진 비 12만 5000t을 머금고 있는 ‘빗물터널’이다. 신월·화곡동의 하수구에 모인 물이 이 터널로 흘러 그 끝자락인 목동유수지까지 이어져 물 저장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수해보다 더 큰 홍수로 안양천과 터널 모두 물이 가득 찰 경우 구멍으로 물이 넘치게 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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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빗물펌프장 인근 지하 공간의 빗물저류시설 유출구. 아래로 40m를 더 내려가면 지름 10m, 길이 4.7km의 터널이 나온다. 빗물터널의 물이 32만t 이상으로 가득 차면 이곳으로 넘치게 된다. 편광현 기자


지난 2020년 5월 빗물터널이 완공된 이후 물이 넘친 적은 없다. 지난 사흘간 양천구 강수량은 291mm였는데, 빗물터널 용량의 53%만 쓰였다. 지난 8, 9일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물은 22만5728t이다. 강종구 양천구 배수시설팀장은 “상습 침수지역이던 신월동이 이번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지 않은 건 빗물터널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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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동 빗물터널 모식도. 좌측 신월동에서 3개 직수구를 통해 물을 흡수하고, 우측 목동펌프장에서 안양천으로 배출한다. 가운데 시설은 환기 장치. 양천구청





올해 39만t 흡수…3년간 홍수 없었다



흔히 빗물터널로 불리는 이 ‘대심도(깊은 지하) 터널’의 공식 명칭은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이다. 양천구 신월5동부터 목1동의 4.7㎞ 구간의 지하 40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 만장굴(길이 8.9㎞)을 연상케 한다. 평소에는 완전히 비워두다가 폭우가 내리면 빗물을 임시 저장하고 비가 그치면 한강으로 내보낸다. 빗물이 들어오는 곳은 신월동 3개 지점 지하 10m에 있는 거대한 직수구들이다. 거기서 빗물이 흡수되도록 설계됐다. 빗물저류배수시설의 용량은 32만 671t으로 올림픽 규격 수영장 55개를 채울 수 있다.

양천구에 빗물터널이 지어진 건 지난 2010년 9월의 폭우 때문이다. 시간당 90㎜의 폭우로 건물 6000여 채가 침수됐다. 1980년대 중반 목동 지역 개발로 상대적 저지대가 된 신월동은 침수 피해에 시달렸다. 대책을 찾던 중 지난 2011년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 가스카베(春日部)시의 6.3㎞ 터널이 중앙일보 지면에 소개됐고, 이를 본 서울시 고위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한 이후 국내에서도 도입이 추진됐다. 신월 빗물터널이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흡수한 빗물은 약 60만t이다.



총 공사비 1390억…강남은 무산됐던 계획



빗물터널은 11년 전 강남역에도 설치 논의가 있었다. 서울시가 꼽은 후보지는 효자동~청계천, 사당역~한강, 삼각지역~한강, 강남역~한강, 신대방역~여의도, 길동~천호동 등이었다. 기후변화로 국지성 폭우가 잦아진 데다 빠른 도시 개발로 도심이 콘크리트로 뒤덮이면서 재해가 반복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지금도 서울 면적의 47%가 불투수(不透水) 지역이고, 강남이나 광화문 같은 도심의 불투수율은 90%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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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빗물저류시설에 물이 비어있을 때 모습. 중부지방 폭우가 내린 지난 8일엔 53% 수준까지 물이 차올랐다. 양천구청


하지만 신월동을 제외한 6개 지역의 대심도 터널 건설은 비용과 위험성 문제로 무산됐다. 서울시는 터널 건설비로만 들어가는 8500억 원이 지나치게 많고, 신월동을 제외한 곳엔 대체 배수시설을 확충할 수 있고 판단했다. 지하 발파 작업 등의 위험성을 걱정하는 여론도 있었다. 이후 강남역 일대는 대형하수관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광화문 일대는 빗물받이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도림천 월류를 막기 위해 서울대 내외부에 중규모 저류시설 3개소도 설치됐다.

신월동에서만 대심도 터널 사업이 승인된 이유는 적절한 평탄한 분지 구조인 점과 반지하가 많은 지역 특성 때문이다. 만 7년 1개월이 걸린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의 공사비는 1390억원이었다. 강종구 팀장은 “신월 빗물터널은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계속 내려도 버틸 수 있다. 연간 유지보수 비용이 6억 원대지만 침수로 입을 피해보다는 적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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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신월동 지하 10m 지점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수직구. '하수구의 하수구'라고 불린다. 양천구청


“도시에 스펀지 갖춰야”

일부 전문가들은 신월 빗물터널 같은 대심도 터널을 서울에 더 지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폭우로 강남역 일대 등에서 물난리가 나자 서울시는 과거 6개 후보지에 대심도 터널 건축을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예산을 막대하게 투입했음에도 침수가 계속 일어나는 건 배수시설 용량보다 더 많은 비가 와서다. 상습 침수지역인 강남 등엔 대규모 빗물받이를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심도 터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강수량과 강수 지역이 불규칙적으로 변해서 대심도 터널이 필요한 지역이 바뀔 수 있어서다. 한무영 서울대 빗물센터장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공사를 진행했다가 그 지역에 막상 비가 안 올 수도 있다. 게릴라성 폭우엔 게릴라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도시 전체에 빗물을 흡수하는 ‘스펀지’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폭우가 언제 어디에 쏟아질지 모르니 여러 크기의 빗물받이를 동네 특성에 맞게 최대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빗물을 3000t 머금을 수 있는 광진 스타시티처럼 대형 건물에 빗물받이 시설을 만들고, 지역 곳곳에 중소규모 저류시설을 확충해서 ‘스펀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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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빗물터널의 귀감이 된 일본 도쿄 환상 7호선 지하의 빗물 저장시설. 지름 12.5m, 길이 4.5㎞인 터널에 54만㎥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사진 도쿄도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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