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아시아경제 언론사 이미지

"반성할 게 더 많다"…필즈상에도 씁쓸한 韓 과학계[과학을읽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원문보기
'제2의 허준이' 나올 시스템 부실, 교육·연구 체계 바꿔야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반갑지만, 반성해야 할 게 더 많다."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 겸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하자 과학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다. 6일 오후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허 교수와 화상 인터뷰가 진행됐다. "한국 교육이 날 키웠다"며 겸양했지만 수학자로 꽃 피울 때까지 허 교수의 여정을 살펴보면 우리 과학계가 고치고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여실히 알 수 있다.

허 교수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과학고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재능이나 실력 여부와 관계없이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준비해야 과학고를 갈 수 있는 입시 체계 때문이다. 또 문제 풀이 중심의 학교 과목 수학에 염증을 느꼈다고 한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은 이와 관련해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만 테스트하는 현재의 체계를 보완할 때가 됐다"고 일침을 놨다.

허 교수가 홈 스쿨링을 하게 된 경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부모는 당시 체력이 약한 허 교수를 야간 자율학습에 빼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가 거부를 당했다. 허 교수는 이후 시인이 되겠다며 홈 스쿨링을 택했다. 빡빡한 교육 현장은 허 교수를 자칫 ‘낙오자’로 만들 수 있었다. 만약 허 교수가 의대나 법대를 선호하는 평범한 부모를 만났다면 의사나 변호사는 됐을 지 몰라도 위대한 발견에 필요한 '자유로운 영혼'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천재들이 즐비하다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였지만 허 교수를 품지 못했다. 허 교수는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휴학을 했고, 외국인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를 만나서야 영감을 얻어 본인의 수학적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다. 200년전 서양에서 만들어진 교육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학문의 감옥', 억지로 '융합학과'를 만들어 놓아야 할 정도로 학문간 구분이 엄격한 한국의 대학 교육의 실체였다.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전공 선택을 보장하는 외국 명문대였다면 일찌감치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학문을 골랐을 수 있다.

한 서울대 명예교수는 "혁신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려면 일정한 자격만 갖춘 학생들을 입학시킨 후 산업 수요나 적성에 맞게 알아서 전공을 선택하도록 대학 교육 전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은사인 김영훈 서울대 수학부 교수도 "우리나라에선 대학 (전공을) 선택시 정보가 제한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본인의 뛰어남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 돌아 간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영재임을 일찍 발견하고 육성할 수 있었다면 4~8년 전에 (필즈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과학계에선 허 교수처럼 좀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연구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허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하루 4시간만 연구에 몰두한다"고 밝혔다. 하루 종일 학교에 나와 1년에 최소 6개 과목을 강의하고 시험 감독ㆍ채점, 행정 관리에 시달리는 국내 대학 연구자들은 꿈도 못 꿀 환경이다. 중세 유럽에서 사상ㆍ철학의 암흑기를 뚫고 과학이 발전한 것은 귀족들의 사생아들을 모아 놓아 '할 일이 없었던' 수도원 수사들이 연구에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로운 연구, 호기심을 채우려는 열정, 안정적인 생활이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대발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과학자들이 큰 프로젝트나 연구비 따내기 보다는 자기만의 호기심을 추구하는 연구 문화가 자리잡으면 노벨상도 보다 빨리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이병헌 이민정 아들 영어
    이병헌 이민정 아들 영어
  2. 2북한 무인기 압수수색
    북한 무인기 압수수색
  3. 3임성근 음주운전 횟수
    임성근 음주운전 횟수
  4. 4김상식호 3-4위전
    김상식호 3-4위전
  5. 5토트넘 도르트문트 프랭크
    토트넘 도르트문트 프랭크

아시아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