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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 남긴 경제계·학계의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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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별세했다. 사진은 조 전 부총리가 2016년 2월 26일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한국재정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90년대 초 국가 경제 사령탑·서울시장 시절 ‘포청천’ 별명도
‘경제학원론’ 함께 쓴 정운찬 “아버님 여읜 듯”…정·관계 추모

한국 경제학계의 거두이자 1990년대 초 국가 경제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세대 유학파이자 정통 경제학자 출신인 고인은 교수뿐 아니라 관료와 정치인 등 다양한 자리에서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192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 전문부를 졸업하고 강릉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입대해 통역 장교로 활동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요원으로 선발돼 당시 육사 생도였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 노태우씨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종전 후인 1957년 고인은 미국으로 유학해 UC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8년 귀국해 20년 동안 모교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8년에는 육사 교관 시절 인연을 맺은 노태우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았다. 1992년에는 한국은행 총재에도 임명됐으나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로 정부와 갈등 끝에 1년 만에 사임했다.

그러던 고인은 당시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신분이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민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특유의 길고 흰 눈썹과 그간의 대쪽 행보가 당시 유행하던 <판관 포청천>이라는 대만 드라마와 연결되면서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다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시장직을 사퇴하며 민주당 잔류파가 중심이 된 통합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영입됐다. 저조한 지지율로 인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단일화했고 양당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은 고인이 직접 지었다. 고인은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 강릉을에 당선되며 국회에도 입성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한 고인은 탈당파를 모아 민주국민당을 창당해 총선을 지휘했지만 선거에서 참패하고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정치권을 떠난 고인은 서울대·명지대 명예교수와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한반도선진화재단 고문,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의 원로 역할을 했다.

고인은 미국식 현대 경제학을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와 전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인이 1974년 발간한 <경제학원론>은 미국 주류 경제학의 기본서가 되는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에 비견된다. 고인은 강단에 선 20년 동안 ‘조순학파’라고 불리는 수많은 후학을 양성한 국내 경제학계의 거목으로 꼽힌다.

고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제자들은 입을 모아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고인과 함께 <경제학원론>을 함께 쓸 정도로 가깝게 지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고인을) 아버님처럼 여기고 지냈는데, (타계 소식을 들으니) 아버님을 여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지난달 <나의 스승, 나의 인생>이라는 책을 통해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한 바 있다. 정 전 총리는 책에서 “조순 선생은 나를 끌고 밀며 내 인생을 만들어주신 분으로, 그런 스승을 만난 나는 참 운이 좋았다”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경제학자로서, 인간으로서 더 크게 성장하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고 회고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인에 대해 “자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한 선생님이고, 후학으로서 바라본 선배로서는 높은 봉우리”라고 평가했다.

관가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가 잇따랐다. 고인의 경제부총리 시절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개인적으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시기도 하다”며 “지금 한국 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이 주신 여러 지혜를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고인의 조카인 박종규 금융연구원장은 “최근 건강이 악화돼 시력도 안 좋고 손을 떨면서도 끝까지 책을 놓지 않고 우리 경제를 걱정하셨다”며 “비단 조카와 외삼촌 관계를 떠나서 우리 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모든 경제학자와 지식인들의 표상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씨(92)와 아들 기송·준·건·승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이창준·반기웅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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