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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장광설(長廣舌)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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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단소’(輕薄短小), 글자 그대로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것을 말한다. 흔히 상품을 유통하는 데 있어서 잘 팔리는 아이템의 특성으로 그 넷을 든다. 책 또한 상품의 속성을 지니는 한, 그쪽으로 내몰리는 형편이고 보면 아쉽다. “조선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안다”는 속언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터, 누구나 단번에 알아챌 말만으로 온전히 표현해 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김삿갓이 어느 환갑잔치에 가서 시를 지었는데, 첫 구부터가 매우 도발적이었다. “저기 앉은 노인, 사람 같지 않구나(彼坐老人不似人)”로 시작했던 것이다. 잔치의 주인공더러 사람 같지 않다니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인가. 사람들이 발끈했을 것은 뻔한 일. 시인은 짐짓 그다음 구를 이어 나갔다. “천상에서 내려온 신선인가 의심스럽네(疑是天上降眞仙).” 그제야 사람들의 낯빛이 환해졌고 시인은 다음 구를 냈다. “그중 일곱 아들은 다 도둑이로고(其中七子皆爲盜).” 자식들이 노발대발할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러나 시인은 시치미 떼고 마무리 지었다. “신선의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잔치에 바쳤네(偸得王桃獻壽筵).”(‘환갑연’(還甲宴)에서)

쥐락펴락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한 구절을 읊어서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는 다음 구절로 이내 풀어 버린다. 풀어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앞 구절의 불쾌함 덕에 더욱 유쾌해지는 맛까지 지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요사이는 이런 기법이 먹혀들기 어려울 것 같다. 제 마음에 맞지 않는 대목을 만나면 발끈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면전에서 즉각 모욕을 주든가, 인터넷상이라면 대뜸 악플을 달고는 다른 페이지나 사이트로 옮겨 가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드러내는 신체적 특성이 여럿 있는데, 혀도 그중 하나다. 부처님의 혀는 유난히도 길고 넓었다고 한다. ‘장광설’(長廣舌)은 그런 부처님의 혀를 나타내는 말이며, 그 혀로 주옥같은 말씀을 막힘없이 미려하게 내뿜었을 것이다. 보통사람의 깜냥으로 부처님 흉내라도 내기 어렵겠지만, 상대의 말이 조금만 길어진다 싶으면 “장광설 집어치우고∼”라며 말허리를 끊고 들어오는 데야 속수무책이다.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 ‘중후장대’(重厚長大)를 견디거나 기다리지 못한다면 경박단소의 소용은 더욱 짧고 작을 듯하다. 경박단소의 발랄함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한 템포 늦춰 다음 말을 기다려 주는 진득함과 아량이 그립다.

이강엽 대구교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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