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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악연’ 박근혜 처음 만난 尹 “참 면목없고, 늘 죄송했다”

중앙일보 손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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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이날 50분간 회동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박 전 대통령은 이날 50분간 회동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윤 당선인은 12일 오후 2시쯤 대구 달성군의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약 50분간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이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옛 친박계 출신인 권영세 의원과 박 전 대통령의 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배석했다.

회동을 마친 윤 당선인은 어떤 대화를 나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님의 건강에 관해서 이야기했고요”라며 약 3초간 허공을 바라봤다. 이어 “아무래도 지나간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라며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음 속으로 갖고 있는 미안함을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님이 지금 살고 계시는 생활에 불편하신 점이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이 자리를 떠난 뒤 권 의원과 유 변호사가 회동 내용을 브리핑했다. 권 의원은 “윤 당선인이 특검(윤 당선인)과 피의자(박 전 대통령)로서 생긴 일종의 악연에 대해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 변호사는 “윤 당선인이 ‘식사를 잘하시냐’고 물으니까 박 전 대통령이 ‘병원 때보다 잘하고 있다. 당선인 시절부터 격무에 건강을 잘 챙기면 좋겠다’고 화답했고, 이에 윤 당선인이 ‘참 면목이 없고 늘 죄송했다’고 말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담담히 듣고 계셨다”고 부연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민트 차와 한과를 대접했다고 한다.



朴 “처음 뵙는 尹, 오래전 만난 분 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취임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취임식에 참석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선인 대변인실 제공



두 사람의 브리핑을 종합하면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에게 5월10일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과 관련해 “건강이 허락하신다면 참석해달라”고 권유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건강 상태로는 자신이 없지만, 가능하면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과정에서 안부와 가벼운 인사도 오갔다. 윤 당선인이 “얼굴이 좀 부으신 것 같다”고 걱정하자,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 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 때 커터 칼 피습을 당한 일을 꺼내며 “그 일 때문에 그렇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윤 당선인에게 “처음 뵙는 분이지만, 화면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아주 오래 전부터 만난 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 윤 당선인 측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만남은 이날이 처음이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2017년 5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첫 재판에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당선인이 직접 나오는 방안이 거론되다가 무산된 적 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이 재평가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윤 당선인은 “박 전 대통령이 재직 중에 했던 정책이나 업적을 보면서 왜 이런 것들이 국민에게 홍보가 안 됐는지 안타까움이 있다”며 “앞으로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서 제대로 평가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고, 박 전 대통령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尹 “당선되니 잠 안 온다” 朴 “크고 무거운 자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이날 "당선되니까 잠이 안 온다"는 윤 당선인의 말에 박 전 대통령은 "크고 무거운 자리이고, 정말 사명감이 있었다"고 답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에 도착,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이날 "당선되니까 잠이 안 온다"는 윤 당선인의 말에 박 전 대통령은 "크고 무거운 자리이고, 정말 사명감이 있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대구 지역을 주제로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윤 당선인이 “대구·경북(TK)에서 몰표를 줘서 당선됐다. 표 차이가 얼마 안 됐지만, 대구 개표가 늦어지는 것을 보고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자, 박 전 대통령은 “지역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윤 당선인은 또 ‘40년 지기’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거론하며 “경북대학병원장 출신이 장관 후보자가 됐으니 복지가 해결이 잘 될 것”이라고 말하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도 테이블에 올랐다. 윤 당선인은 “서울의 병원에 다니실 때 전직 대통령으로서 경호 등 문제가 없도록 최대한 조처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박 전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도 언급했다. 윤 당선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내각과 청와대를 어떻게 운영했는지 자료를 보기도 하고, 당시 근무한 분들을 찾아뵙고 국정을 배우고 있다”며 “당선되니까 걱정돼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자리는 크고 무거운 자리다. (재임시에) 정말 사명감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사저 주변은 1500여명의 시민으로 북적였고, 윤 당선인의 방문과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입주를 축하하는 화환과 현수막이 늘어섰다.



질긴 9년 악연…尹 측 “이번 만남 국민통합 상징”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출두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출두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윤 당선인이 “지나간 과거”라고 표현한 두 사람의 관계는 질긴 ‘악연’으로 뒤엉켜 있다. 2013년 윤 당선인이 국정원 댓글 공작사건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9년간의 악연이 시작됐다.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댓글 공작을 벌였다는 의혹으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다. 윤 당선인은 당시 혐의자에 대한 압수 수색과 체포를 두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충돌해 ‘수사 외압’을 주장했다가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한직을 맴돌았다. 그해 국정감사장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당선인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좌천당한 윤 당선인은 공교롭게도 3년 뒤 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을 맡아 부활했다. 그는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임명돼 박 전 대통령 구속 수감에 관여했고,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인사들에 대한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시절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고, 이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직자 직분에 의한 일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3월 24일 박 전 대통령이 퇴원했을 때는 “건강이 회복돼 사저에 가셔서 참 다행”이라고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윤 당선인 측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권영세 의원이 유 변호사와 연락을 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안부를 묻거나, 만나고 싶다는 윤 당선인의 뜻을 전하는 등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

윤 당선인 측은 이날 만남이 두 사람의 구원(舊怨)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서 국민 통합의 상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이념과 갈등을 넘어서는 국민 통합이 윤석열 정부의 핵심 가치인데, 박 전 대통령과의 화해가 갖는 통합의 의미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전날 TK 지역을 순회한 뒤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을 놓고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의미도 있다”(국민의힘 관계자)는 반응도 나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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