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에서 ‘고래’로.
지난해 상장한 카카오뱅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의 혁신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창립 4년 만에 시중은행 시가총액을 넘어서며 업계 1위 ‘빅테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금융에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 ‘핀테크’ 시대가 펼쳐졌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열풍으로 두나무, K뱅크가 약진했고 ‘MZ세대의 은행’ 토스뱅크도 화려하게 출범했다.
그간 금융업은 정부 규제가 까다로워 가장 혁신이 더딘 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제는 시중은행이 빅테크와의 경쟁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정도로 핀테크 스타트업이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는 소비자에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돌려주는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화되며 핀테크 스타트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상장한 카카오뱅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의 혁신을 촉진하는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창립 4년 만에 시중은행 시가총액을 넘어서며 업계 1위 ‘빅테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금융에 기술을 접목한 스타트업 ‘핀테크’ 시대가 펼쳐졌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열풍으로 두나무, K뱅크가 약진했고 ‘MZ세대의 은행’ 토스뱅크도 화려하게 출범했다.
그간 금융업은 정부 규제가 까다로워 가장 혁신이 더딘 산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제는 시중은행이 빅테크와의 경쟁을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정도로 핀테크 스타트업이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는 소비자에게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돌려주는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본격화되며 핀테크 스타트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주요 핀테크 스타트업은 어떤 곳들이 있을까.
음원 저작권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 화면. 거래량, 투자 시세 차트 같은 투자 정보도 확인 가능하다. (뮤직카우 캡처) |
▶대출 비교부터 조각 투자까지
▷뮤직카우, 누적 회원 100만명 돌파
지난해 1월 설립된 ‘베스트핀’은 온·오프라인 연계 담보대출 비교 플랫폼 ‘담비’를 운영한다. 국내 대출 시장은 5대 시중은행(우리, KB, 신한, 하나, 농협)이 주택담보대출에서 82%, 가계신용대출에서 73%를 차지하고 있다(2020년 3월 기준). 담비는 이들 금융기관 방문 없이도 원스톱으로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금리 비교, 대출 실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금융기관이 지정한 대출 상담사가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맞춰 방문해 대출 절차를 완료할 수 있는 ‘찾아가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향후 2금융권과도 제휴해 사업자대출, 신용대출로도 사업 영역을 넓히고, 보험·신용카드 등과 연계할 수 있는 상품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고위드’는 스타트업 전문은행이다. 실리콘밸리 지역 스타트업에 전문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롤모델이다. 국내 최초의 스타트업 법인 신용카드를 선보인 지 1년여 만에 3000여개 고객사를 확보하는 등 스타트업 대상 금융 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지출경비관리·현금흐름 서비스 등 스타트업 비용관리에 최적화된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위드는 향후 법인 신용카드 사업에서 획득한 스타트업 재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IT 기기 구독 서비스, 대출 등 스타트업 성장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B2B(기업 간) 금융 서비스로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차이코퍼레이션(이하 ‘차이’)은 티몬 창업자인 신현성 대표가 설립했다. 게임 요소를 입힌 선불형 체크카드 ‘차이카드’와 B2B 결제 플랫폼 ‘아임포트’를 운영한다. 2019년 6월 출시한 차이카드는 결제 시 제공되는 ‘번개’ 아이템과 게임처럼 번개를 차감해 할인받는 ‘부스트’로 MZ세대 이용자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차이 체크카드 할인과 캐시백 혜택을 늘린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차이 신용카드’ 출시 소식도 알렸다. 아임포트는 현재 크림, 나이키코리아, 오늘의집, 젠틀몬스터 등 국내외 2200여개 업체에 적용됐다. 차이는 지난해 말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유치한 530억원 규모 투자금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계획이다.
‘뮤직카우’는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 투자 플랫폼이다. 과거 투자 대상이 아니었던 음악 저작권료 시장 문호를 개인에게 활짝 열어줬다. 2018년 출범 당시 첫해 회원 수 9996명, 누적 거래액 10억여원이었던 이 플랫폼은 최근 누적 회원 수 100만명을 넘어섰다. 성공 비결은 금융에 기술을 접목한 것. 뮤직카우는 과거 저작권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저작권료 예측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이를 활용해 미래 저작권료 누적 수익을 현재 적정 가치로 환산했다. 그리고 이 권리를 작게 분할해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금융 상품으로 만들었다. 뮤직카우가 개척한 ‘조각 투자’ 시장은 이후 ‘뱅카우(한우)’ ‘카사코리아(부동산)’ ‘아트투게더’ ‘테사(이상 미술품)’ 등으로 이어졌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국내 인공지능 기반 ETF 최초로 뉴욕거래소 상장에 성공한 핀테크 스타트업이다.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 제공) |
▶인공지능(AI) 자산관리
▷금융권도 개인도 ‘로보어드바이저’ 열풍
과거 고액 자산가 정도가 아니면 꿈도 못 꿨을 ‘개인 자산관리’가 이제는 일상이 된 모습이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RA)’가 대중화된 덕분이다. 로보어드바이저 핀테크 스타트업이 내놓는 서비스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개인 투자 성향과 투자 목적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준다.
김영빈 대표가 2018년 설립한 ‘파운트’가 대표적이다. 파운트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가 엔젤 투자자 겸 투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도 잘 알려진 스타트업이다. 파운트가 자체 개발한 AI가 글로벌 주식,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재 파운트가 관리 중인 자산 총액(AUM)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올해 2월 기준 AUM이 1조3570억원 수준으로 전년(8227억원) 대비 65% 증가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디셈버앤컴퍼니가 운영하는 ‘핀트’는 소액 투자 수요에 힘입어 몸집을 키웠다. 핀트에서는 최소 운용금 20만원만 있으면 앱으로 쉽고 간편하게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투자를 경험할 수 있다. 아직 목돈 투자가 부담스러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을 위한 적립식 투자 서비스 ‘꾸준히 목표 달성’, ‘꾸준히 차곡차곡’과 같은 서비스가 관심을 받으며 회원 수가 크게 늘었다. 2019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3년 만인 올해 누적 회원 수가 70만명을 넘어섰다.
최초의 모바일 자산관리 앱 ‘에임’도 빼놓을 수 없다. ‘씨티그룹 최초 한국인 퀀트 애널리스트’로 유명한 이지혜 대표가 2015년 창업했다. 이 대표는 월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AI 자산관리 알고리즘 ‘에스더’를 개발했다. 전 세계 77개국 1만2700여개의 글로벌 ETF에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올해 2월 기준 회원 수는 100만명, 누적 계약금액은 7300억원에 달한다.
개인을 넘어 기존 금융사를 대상으로 투자 자문이나 AI 솔루션 설계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도 많다. 2016년 설립한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이하 크래프트)’가 대표적이다. 누적 투자 유치액으로만 따지면 모든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중 가장 많다. 현재까지 21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특히 올해 1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1750억원 투자를 유치, ‘쿠팡에 이은 소뱅의 두 번째 한국 기업 투자’로 주목받았다.
크래프트는 로보어드바이저를 기반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운용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100% AI가 운용하는 ETF를 상장시켰다. 미국 대형주 모멘텀 ETF인 ‘AMOM(티커명)’, 미국 대형 고배당주를 담은 ‘HDIV’ 등 총 4종의 액티브 ETF가 상장돼 있다. 특히 AMOM은 지난해 테슬라의 주가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해내며 ‘테슬라 족집게’로 전 세계 투자자로부터 주목받은 바 있다.
‘쿼터백그룹’ 역시 개인 자산관리보다 금융 상품 설계로 더 유명한 스타트업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업계에서는 ‘맏형’ 격이다. 자체 AI 알고리즘 ‘큐비스(QBIS)’는 금융위원회와 코스콤이 주관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 베드’를 최초로 통과했다. 현재는 은행과 보험사를 포함한 20여개 기관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투자금을 직접 운용하거나 주식·ETF 등을 포함한 펀드도 운용한다.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선보인 랩어카운트 상품 ‘테마로테이션랩’, 키움투자자산운용과 협업한 ‘키움쿼터백EMP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펀드’ 등이 유명하다.
천영록 대표가 이끄는 ‘불리오’도 비슷하다. 키움투자자산운용과 손잡고 내놓은 ‘키움불리오글로벌멀티에셋EMP펀드’가 대표 상품이다. 1900여개 미국 상장 ETF 데이터를 분석해 30여개 ETF에 분산 투자하는 상품으로, 최근 2년 수익률이 11%대로 선전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에 대한 대중 관심이 커지면서 유명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는 일도 적잖다. ‘핀트’는 배우 전지현을, ‘파운트’는 배우 변요한을 각각 광고 모델로 투입한 바 있다. (각 사 제공) |
▶핀테크 솔루션 지원
▷핀테크를 만들어주는 핀테크 기업
하나의 핀테크 서비스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과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데이터 수집·분석부터 시작해 인증, 프로그램 설계 등 셀 수도 없다. 핀테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술·인프라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 꽤 있는 이유다. 말하자면 ‘핀테크 기업을 만드는 핀테크 기업’인 셈이다.
‘쿠콘’은 금융사나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금융·공공 데이터들을 보다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제공한다. 쿠콘은 국내 500여개 금융·공공기관의 데이터는 물론 해외 40여개 국가 2000여개 금융기관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현재 수많은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이 쿠콘 API를 쓴다. ‘대출 상품 비교 서비스’를 예로 들면 카카오페이, 토스, 핀다 같은 기업들이 쿠콘 API를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당근마켓 자회사 당근페이의 간편송금과 결제 서비스 구축을 지원하기도 했다.
‘아데나소프트웨어’는 전 세계 외환마진거래(FX)와 지급결제 업체를 대상으로 자체 개발한 금융 거래 소프트웨어를 판매·공급한다. 매출은 대부분 해외에서 발생한다. 영국, 스위스 등 글로벌 외환 유동성공급자(LP) 업체와 해외 외환선물사들이 주요 거래처다. 단순히 프로그램 판매에 그쳤던 기존 업체들과 달리 거래량에 비례해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수익 구조를 짰다. 지난해에는 암호화폐 투자 정보 플랫폼 ‘코인니스’를 인수하며, 가상자산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블록체인 핀테크 스타트업 ‘아이콘루프’는 블록체인 분산신원(DID) 기술로 금융권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DID 기술은 한 번 인증된 신원정보를 사용자 스마트폰에 암호화해 저장했다, 개인정보 제출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인증 방식이다. 아이콘루프는 지난 2020년 신한은행과 협력해 금융권에서 사용되는 DID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했다. 아이콘루프는 최근 대선 관련 이슈로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아이콘루프가 기술 개발에 참여한 암호화폐 ‘아이콘(ICX)’이 ‘윤석열 테마코인’으로 분류되며 가격이 ‘껑충’ 뛰면서다. 윤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친필 서명이 담긴 방명록을 NFT로 발행했는데, 여기에 아이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NFT 마켓플레이스 ‘크래프트’가 활용된 바 있다.
인터뷰 |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국간편결제진흥원장)
“전금법 개정·망 분리 규제 완화에 속도 내야”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핀테크 네트워크 기관’이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파이낸셜, 토스 같은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약 500개 핀테크 기업이 회원사로 있다. 올해 2월 신임 협회장으로 선임된 이근주 한국간편결제진흥원장으로부터 국내 핀테크 산업의 현주소에 대해 물었다.
Q 국내 핀테크 산업 수준, 글로벌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을까.
A 기술력 자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핀테크 역량은 단순히 기술력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업 자체가 ‘규제 산업’이다 보니, 규제 수준이 결국 한 나라의 핀테크 수준을 좌우한다. 정부에서 핀테크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의지는 분명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논의가 생각보다 더디다. 여러 규제 완화를 위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기는 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Q 핀테크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주요 규제에는 무엇이 있을까.
A ‘망 분리 의무 규제’가 대표적이다. 망 분리는 해킹 방지를 위해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하도록 하는 규제다. 망이 분리돼 있다 보니 인터넷에 뛰어난 개발 소프트웨어나 개발 코드가 풀려 있는데도 개발자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즘처럼 재택근무가 일상화된 근무 환경에도 안 맞다. 가뜩이나 개발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망 분리에 한계를 느낀 개발자들이 핀테크 업계를 떠나는 경우가 워낙 많다.
Q 핀테크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A ‘소통 채널의 활성화’가 최우선 돼야 한다. 기존 금융권인 ‘빅뱅크’, 그리고 관계부처와 의견 조율을 통해 핀테크 관련 규제를 완화해나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소 핀테크 전용 소통 채널’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현재 빅뱅크와 빅테크 위주로 구성된 금융위 ‘디지털금융협의회’만으로는 중소 핀테크 목소리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빅테크 상황에만 입각해 규제 수준이 굳어져버리면 중소 핀테크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과 불안감이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Q 규제 완화뿐 아니라 육성 정책도 중요할 텐데.
A 핀테크 육성과 관련해 최근 ‘핫’한 키워드는 두 가지다. 첫째는 ‘해외 진출’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발맞춰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차세대 핵심 기술로, 이미 블록체인 기반 핀테크 서비스가 많이 나오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 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
[노승욱 기자, 나건웅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0호 (2022.03.16~2022.03.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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