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대전 중구청 관계자들이 중구 대흥동 일대에 붙어 있던 선거 벽보를 제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제20대 대선은 끝났지만 아직 '뒤처리'가 남아 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쓰인 무수한 공보물, 선거 용지 등 이른바 '선거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매번 수천톤의 선거 쓰레기가 발생하지만, 이를 수거해 재활용하는 방안은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환경단체는 선거를 보다 친환경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번 대선에서 발생한 선거 쓰레기의 양은 얼마나 될까.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숫자로 보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자료에 따르면, 각 후보자들의 선거 공부는 책자형 공보 2억9000만부, 점자형 공보 97만부, 전단형 공보 1억850만부로 총 4억부 발행됐으며, 투표용지 4400만여장이 쓰였고, 야외에 걸린 공보물은 총 118만장 첩부됐다.
이 수준의 공보물을 발행하는 데 쓰인 종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일례로 투표용지를 한 장 한 장 쌓으면 높이만 총 4400m로, 롯데월드타워(123층·554m)의 8배에 달한다. 길이로는 1만1880㎞로 서울에서 뉴욕까지 도달하고도 약 880㎞가 남는다.
건물 벽이나 울타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선거벽보는 총 8만4884곳에 첩부됐다. 14명의 후보자 선거 포스터를 이어붙인 형태인데, 이 벽보들을 한데 모아 길게 펼친다면 총 848㎞의 길이가 나온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거리(약 800㎞)보다도 훨씬 긴 수준이다.
대선 선거 운동 기간 중 거리에 걸려 있었던 대선 후보 홍보용 현수막. 현수막은 재활용이 힘든 소재로 알려져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선거 쓰레기를 두고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9대 대선 때 쓰인 선거 쓰레기는 공보 현수막만 총 5만2545장으로 집계됐으며, 무게는 수천톤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번 대선에 쓰인 선거홍보물 쓰레기 또한 약 5000여톤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5000톤의 쓰레기를 생산하면서 만들어진 탄소 배출량(CO2e)은 총 7312톤(t)으로 집계됐다.
오는 6월1일에는 제8차 전국동시지방선거(지선)가 열리면서 또 한 번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게다가 지방선거는 대선에 비해 경쟁 후보들도 훨씬 많다 보니, 공보물 숫자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녹색연합은 오는 지선에서만 2만772t의 CO2e가 배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선과 지선에서 배출될 CO2e를 모두 합치면 2만8884t에 달한다. 이 수준의 탄소를 자연적으로 소화하려면, 30년 된 소나무 약 310만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해야 한다.
시민들은 기후위기가 주요 정치적 안건으로 떠오르는 시기에, 정작 정치권은 선거 쓰레기에 무감각한 모습을 보인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당시 선거 운동 기간에 배출된 선거 공보물 쓰레기. / 사진=연합뉴스 |
20대 직장인 A씨는 "선거 운동 기간마다 거리 곳곳에 걸리는 공보물들을 보면서 폐기물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이 수준으로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줄은 몰랐다"라며 "대선 후보들은 TV 토론회에 나와서 기후위기 대책에 대해 논하던데, 정작 선거 유세 때마다 이렇게 막대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 놓으면 누가 신뢰할 수 있겠나"라고 질타했다.
또 다른 회사원 B씨(31)는 "공보물뿐만 아니라 선거 홍보용 현수막이나 책자 같은 것도 대선이 끝나면 길바닥에 버려져 있어 보기 흉하더라"라며 "선거 때마다 이 모양인데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76조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위해 선전물·시설물 등을 설치한 자는 지체없이 이를 철거해야 한다. 수거된 폐기물은 지방자치단체를 거쳐 장바구니, 잡화 등 다른 물품으로 재활용된다. 이와 관련해, 앞서 환경부는 지난 2020년 '선거용 인쇄물 분리배출 및 폐현수막 재활용 지침'을 배포하고 선거 현수막 재활용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조처만으로는 넘치는 선거 쓰레기를 완전히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녹색연합'은 14일 공식 홈페이지에 낸 성명에서 "지난 2018년 환경부가 선거현수막 재활용 시범사업을 진행한 바 있지만, 폐현수막으로 만든 장바구니를 무상으로 제공해도 원하는 시민들이 없어 배포하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다"라며 "지난 제21대 총선에서 폐현수막 재활용은 전체의 23.5%에 불과했고, 이 또한 다용도 주머니, 선풍기 커버, 청소용 마대 제작 정도에 그쳤다"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광주 한 행정복지센터 직원 및 봉사자들이 책자형 선거공보물 발송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총 4억부에 달하는 선거공보물이 발송됐다. / 사진=연합뉴스 |
국회에서는 선거 후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해 8월31일 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선거 공보물을 받는 세대원 모두가 전자선거공보 발송을 신청할 경우, 해당 세대에 책자형 선거공보는 전달하지 않는 내용이 골자다. 종이 책자보다 온라인 공보물에 중점을 두는 방식으로 선거 쓰레기를 줄이자는 취지다.
그런가 하면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7월 선거 운동 현수막에 이용되는 원단을 재활용이 쉬운 구조로 바꾸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엄 의원은 당시 "선거 때마다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막대한 양의 폐현수막은 자원낭비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라며 "당장 대선,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개정안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고 환경친화적 선거 문화를 선도하겠다"라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는 장기적으로는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순환경제'를 구축해야 하지만, 우선은 폐기물 자체를 줄이는 방안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허승은 녹색연합 녹색사회팀 팀장은 "자원을 절약하고 생산단계에서의 재활용은 고려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것"이라며 "감량 대책 다음으로 재사용, 재활용, 자원회수 등 방안이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분야에서의 책임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며 "행정안전부가 해야 하는 일은 재활용 지원 정책이 아닌 지금과 같은 공보용 현수막 등 사용을 금지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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