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러시아 체조선수 이반 쿨리악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계체조 월드컵 동메달을 받기 위해 시상대에 올랐을 때 유니폼에 새겨진 'Z' 표식이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유로뉴스 유튜브 보도화면 갈무리. 2022. 3. 5. © 뉴스1 |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 5일 러시아 체조선수 이반 쿨리악이 카타르 도하 개최 기계체조 월드컵 동메달을 받기 위해 시상대에 올랐을 때 전 세계는 경악했다.
하얀색 유니폼 상의 가슴 한가운데에 또렷하게 보이는 'Z' 표식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영토를 유린하는 러시아 탱크마다 표시된 바로 그 Z다.
전쟁 초기 러군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됐던 Z는 이제 러시아내 전쟁찬성론자를 결집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어 '자 포베두'…"승리를 위해" 의미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에서 포착된 친러 반군 차량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원하는 Z 표식이 선명하다. 2022. 3. 1.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
Z가 처음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침공 준비를 하던 러군이 우크라 국경 지대에 결집하던 무렵이다. 전차와 탱크마다 Z 표식이 선명했고, 이는 전장에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한 표식일 것으로 인식됐다.
Z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 관심이 증폭하는 가운데, 지난 6일 러시아 국방부가 명확한 설명을 내놓았다.
러시아로 '승리를 위해(For victory)'를 뜻하는 '자 포베두(Za pobedu)'의 첫 글자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Z는 끔찍한 전쟁의 표식이지만, 이제 Z는 쿨리악뿐만 아니라 러시아 거리와 소셜미디어 등 곳곳에서 '밈(한국의 '짤')'처럼 등장하고 있다.
◇러시아 거리·방송·소셜미디어에 속속 등장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브스키가 대형 광고판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승리를 기원하는 'Z' 표식이 밤거리를 밝히고 있다. 2022. 3. 4.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
러시아 거리에는 요즘 자동차 뒷면에 Z 스티커를 붙인 차량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한다. 한 토크쇼에선 출연자가 흰색 Z가 크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르부르크 등 대도시 광고판에도 Z 표식이 등장했다. 원래 이름에 Z가 들어간 기업이나 신문은 로고에 Z 표시를 특별히 강조하기 시작했고, 지하철 광고판 등 거리 곳곳에 Z가 눈에 띈다.
전국 지자체 유리창에는 캄캄한 밤에도 Z 불빛이 빛난다고 한다.
아르한겔스크 북부 지역 공무원 이반 체르나코프는 현지 국영언론 인터뷰에서 "Z는 우리 군대에 대한 지지,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지지를 상징한다"며 "어려운 상황 속 국민을 단결시키기 위해 고안됐다"고 말했다.
◇'국가가 만든 밈'…전쟁 프로파간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한 버스 정류장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승리를 기원하는 Z 표식이 그려져 있다. 2022. 3. 4.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
전장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해 표식을 다는 건 흔한 일이다. 미군도 걸프전 때 아군 차량에 흰색 쉐브론을 표식으로 그렸다.
그러나 이런 전쟁의 표식이 민간인 사이에서 퍼지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NYT는 지적했다. 전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크렘린(러 대통령실)의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계 미국인 미디어 분석가 바실리 가토프는 NYT에 "이는 분명히 국가가 만든 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이런 종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했는데, 전략적으로 소셜미디어 상에 밈을 퍼트리면 누군가는 이를 수용해 결국 퍼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러 국가두마(하원) 의원이 양복 재킷 옷깃에 흰색 Z를 그린 모습으로 등장해 군을 응원하고 승리를 기원하는 영상이 올라오는가 하면, 국영방송 러시아투데이(RT)도 청년들이 Z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춤추는 영상을 전했다.
정부가 대중에게 마치 '유행처럼' Z를 퍼트리는 것이다.
◇전쟁 반대론자에게 위협 표식으로도
우크라이나 헤르손 거리에 Z 표식을 단 러시아군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2022. 3. 1.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
정부가 고안하고 친(親)푸틴 단체 등을 중심으로 수용해 퍼지기 시작한 Z는 이제 전쟁 반대론자들을 위협하는 표식으로도 쓰이고 있다.
수년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판해온 페미니스트 단체 푸시 라이엇의 한 활동가는 자신의 아파트 현관에 누군가가 그려놓은 Z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러시아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안톤 돌린도 라트비아로 떠나기 전 자택 현관문에 Z가 그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돌린은 "메시지는 분명했다"며 "Z를 그려놓은 사람들은 내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어디에 살고 내 가족은 어디 있는지 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건 협박 행위"라고 강조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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