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는 지금 K팝의 세계시대를 맞고 있다. 이쯤에서 돌아보면 K팝의 서막은 1968년 펄 시스터즈의 '님아' '커피 한잔' '떠나야 할 그 사람'이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가요계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휩쓸던 트로트의 전성시대였다. 서구적 팝을 앞세운 펄 시스터즈의 히트는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펄 시스터즈는 배인순·배인숙 자매가 미8군 쇼에 오디션을 보러 가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노래를 해보라고 해서 응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신중현을 만나 킹레코드사에서 앨범을 냈다. 그때만 해도 대중에게 낯설었던 팝 계열, 실험적으로 만든 앨범이었는데 100만장이 넘는 천문학적 히트를 쳤다.
여대생 자매 펄 시스터즈의 신선한 이미지와 세련된 미모, 간결한 창법과 매력적인 몸매의 제스처가 대중을 사로잡고 단숨에 국민이 열광하는 듀오가 됐다. 그리고 1969년, 데뷔 1년 신인이 MBC TV 10대가수상에서 가수왕이 되는 이변을 낳았다. K팝의 서막이자 이정표였다.
펄 시스터즈는 1974년 팝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으로 간다. 펄 시스터즈 쇼를 만들어 NBC TV에 출연하고 세계적인 작곡가 러셀 브라운과 컬럼비아레코드사에서 음반을 내기로 했다. 꿈이 눈앞에 왔다. 그때 언니 배인순에게 재벌 건설회사 회장과 결혼 중매가 들어온다. 그리고 1976년 가을, 회장이 뉴욕에 와서 배인순을 데리고 귀국한다. 동생 배인숙은 그때의 심경을 "말할 수 없이 허탈했어요. 세계적인 팝가수의 꿈이 눈앞에서 무너졌어요"라고 했다. 펄 시스터즈의 '미완성의 꿈'을 이제, BTS 같은 후배들이 훌륭히 실현하고 있다.
그리고 배인숙은 1979년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로 솔로가수로 컴백한다. 나는 그때 배인숙을 인터뷰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프랑스의 알랭 바리에르가 무명 가수 생활 17년 만에 히트한 '시인'이라는 샹송의 번안곡이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마주 보며 속삭이던…. 시적인 가사의 명곡으로 낙엽 지는 가을이나 궂은비 내리는 날이면 라디오에서 단골로 흘러나온다.
배인숙은 자신의 컴백을 '펄 하나'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컴백 기사를 쓴 나를 고마워했던 것 같다. "언니도 고마워한다"며 "건설회사 과장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평기자 때였다. 말없이 웃었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며칠 전 전화에서 배인숙은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저는 미국을 오가며 지내요.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했다. 세월은 내게도 그렇게 흘렀습니다. 추억만 남기고. 배인숙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신대남 전 일간스포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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