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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왕건의 만부교 사건… 자주냐, 실리냐

동아일보 김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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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본 고려/박종기 지음/300쪽·1만8000원·휴머니스트
“태조의 뜻은 옛 고구려 땅을 대대로 전해온 보배로 생각하고 석권하려 한 것이다.”(충선왕)

“거란 사신을 정성으로 접대해 동맹을 맺는 게 나라를 보호하는 방책이었다.”(유계)

만부교 사건에 대한 고려시대 충선왕(1275∼1325)과 조선시대 유계(1607∼1664)의 역사적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이었다. 만부교 사건이란 942년 태조 왕건이 거란 사신들을 유배에 처하고, 이들이 가져온 낙타 50필을 만부교 아래 묶어 놓아 굶겨 죽인 사건이다. 당시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원으로 뻗어나가던 거란을 상대로 한 왕건의 외교 행태는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충선왕을 비롯한 고려인들은 왕건의 강경 대응을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북진정책’으로 보고 높게 평가했다. 이는 변태섭 등 현대 사가들도 공유하는 시각이다.

반면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외교의 근본으로 여긴 조선 전기 역사가들은 왕건의 대응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며 비판했다. 실제로 이후 고려는 세 차례에 걸친 거란 침입을 받아 1011년(현종 2년) 수도 개경이 함락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조선인들의 꽉 막힌 성리학 사변주의로만 치부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다양한 인물을 당대인과 조선인의 시각에서 비교 재평가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여기에 현대 역사학계의 시각도 곁들여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어떤 변천을 겪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로 고려 왕권을 단단히 다진 인물로 여겨지는 광종에 대한 평가도 큰 변화를 겪었다. 예컨대 광종 재위 기간 고위 관료였던 최승로와 서필은 광종이 지방호족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했다며 비판적이었다. 반면 조선 후기 문인 이종휘는 “쌍기 같은 외국인까지 중용하는 등 재능 있는 인재를 널리 구했다”며 광종을 칭찬했다. 한 인물을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궤적을 재단하는 시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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