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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뇌, 잃어버린 감각… 마음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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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눈
올리버 색스 지음ㆍ이민아 옮김
알마 발행ㆍ288쪽ㆍ1만7,500원
'얼굴인식장애' 신경정신과의사 신경증장애 환자들 사례 에세이처럼 쉽게 풀어 소개
시력·기억력 사라진 뒤 생존의 길 찾은 '희망 스토리'
안면 인식 장애를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페이스 블라인드’의 한 장면.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게 된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면 인식 장애를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페이스 블라인드’의 한 장면.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게 된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안면 인식 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경정신과 의사 올리버 색스(미 컬럼비아대 신경정신과 임상교수)의 <마음의 눈>(원제 The Mind's Eye)은 시력, 기억력 등 필수적인 감각을 잃고도 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이들의 이야기다.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 환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처럼 뇌 손상 등으로 인해 인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신경증 장애 환자들의 사연을 소개한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의 책은 전문적 분야를 다루면서도 휴먼 스토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임상보고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환자들과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엮은 이 책 역시 우리 몸이 놀라운 자연 치유 능력 또는 적응력을 갖고 있음을 깨우치며 다시 한 번 감동을 선사한다.

뇌졸중을 앓은 캐나다 작가 하워드 앵겔은 평소와 다름없이 신문을 집어 든 어느 아침, 더 이상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황망했지만 다행히 글을 쓰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적응해 나간다. 이야기 전체 구조를 머릿속에 각인해서 재구성하는 법을 익히고, 초고를 읽어줄 편집자를 구해야 했지만 글쓰기를 놓지 않았고 그렇게 자신의 경험담을 쓴 <책, 못 읽는 남자> <메모리북>을 출간했다.

시력이 나빠진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악보를 읽지 못하게 된 피아니스트 릴리언 칼리르는 10여년 간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갔다. 복잡한 악보를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머릿속에서 재배열하거나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덕분이다.

영국 종교교육학 교수 존 헐은 열세 살에 백내장이 생겨 4년 만에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는데,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마흔 여덟에 완전히 잃었다. 시각적 표상과 기억이 사라지다가 결국 본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리는 과정에서 헐이 발견한 것은 주의를 집중하고 무게 중심을 다른 감각으로 이전해 보는 법이었다.

책에는 글자를 읽지 못하지만 위치나 색으로 물건을 구별하는 법을 익히거나, 빛조차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이지만 머릿속에서 공간을 이미지화한 뒤 직접 지붕에 올라가 말끔히 수선 작업을 해내는 등 장애를 지니고도 멋지게 일상을 영위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극복하기 힘든 장애를 안게 됐지만 결코 절망에 갇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색스는 이들이 장애를 통해 생존과 적응에 필요한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는 과정을 희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안구 출혈로 한 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두 눈에 의한 시차차(視差差)를 이용해 대상물의 3차원적 구조 요소를 느끼는 입체시를 얻은 신경생물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눈송이들 하나하나 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었고, 그 모든 눈송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게 3차원의 군무를 추고 있었어요. 과거에는 눈이 저보다 조금 앞에 있는 한 장의 평면 안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제 자신이 내리는 눈 속에, 눈송이들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꼈어요.'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장애를 극복해 나간다. 저자 역시 '턱수염이 덥수룩한 사내와 부딪칠 뻔했다가 사과한 일이 예닐곱 번은 되는데, 그러고 나서 보면 그 사내는 거울에 비친 나였다'는 고백을 담담하게 풀어 놓았다. 유리창 너머의 다른 남자를 자기 얼굴이 비친 줄 알고 수염을 매만지다 나중에야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때문에 슬쩍만 보고도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아내는 능력이 남보다 발달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안면 인식 장애는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들의 뇌는 비상한 창조적 전략을 구사해 잃어버린 능력을 대체한다. 특이하게 생긴 코나 수염, 안경 혹은 의복 형태, 목소리나 자세, 걸음걸이로 사람을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인간은 더욱 영리해지며, 신체 각 기관의 기능을 재할당함으로써 우리 몸은 상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응한다.

환자들의 사례를 풀어서 책으로 엮어온 그는 불편할 만큼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맹인이 지팡이를 통해 촉감과 움직임, 소리를 종합해 하나의 시각적 그림으로 변화해 주변을 살피듯 필수적 감각을 잃은 이들 또한 정상으로 돌아가려는 불가능한 몸부림에서 해방된 이후에는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연다. 책은 마음의 눈을 찾은 이들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세계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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