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판읽기]죽고, 또 죽고…현장실습생 사망 왜 반복되나

댓글0
현장실습 중 사망 두고 교육·노동 당국 책임론 거세
실습계획서와 달리 잠수작업 지시…안전수칙도 무시
유명무실 '학습중심 현장실습' 저임금 노동 부추겨
현장실습생 사고 수년째 되풀이…근본 대책 찾아야
[편집자 주]
전남노컷의 '판읽기'는 전남CBS 기자들의 전남동부 지역의 이슈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이슈파이팅이 강한 언론, 깊이 있는 해설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역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노컷뉴스

'여수 홍정운군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와 홍군의 친구 등이 지난 8일 여수 웅천친수공원 요트선착장에서 기자회견 시작 전 묵념하고 있다. 유대용 기자


'여수 홍정운군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와 홍군의 친구 등이 지난 8일 여수 웅천친수공원 요트선착장에서 기자회견 시작 전 묵념하고 있다. 유대용 기자

물 무서워했던 고3 학생, 왜 잠수작업 내몰렸나

전남 여수의 특성화고교에 다니던 고(故) 홍정운군이 숨진 지 1주일이 흘렀습니다.

유명무실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대책은 안전보다는 취업에 급급한 허술한 교육행정으로 이어졌고 홍군은 12㎏에 달하는 납 벨트를 찬 채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따다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홍군은 지난 6일 오전 10시 40분쯤 여수시 웅천동 친수공원 요트정박장 해상에서 잠수복을 입고 요트 바닥을 청소하던 중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지난 9월 27일 해당 요트업체 현장실습에 투입돼 10일째 되던 날 사고를 당한 겁니다.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가 하는 잠수작업은 애초 홍군에게 해당된 사항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실습계획서에도 홍군은 요트 탑승객을 상대로 식사 보조 등의 업무를 맡게 돼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홍군은 2인1조 수칙 준수는 물론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계획에 없는 잠수작업을 한 겁니다.

홍군이 평소 물을 무서워했다는 진술도 이어져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홍군의 친구들은 과거 홍군이, 스쿠버 잠수 교육을 받던 중 사고가 발생해 이후부터 물을 무서워했다고 말했습니다.

홍군의 죽음 이후 현장실습의 민낯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세한 업체는 안전요원 없이 어린 학생을 위험한 잠수작업에 내몰았고 학교 측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학습중심 현장실습 사실상 저임금 노동 부추겨

유명무실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대책이 사실상 교육이 아닌, 또 다른 저임금 노동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홍군이 사고를 당한 업체는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애초 제대로 된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이같은 일이 수년째 되풀이되는 것도 문젭니다.

지난 2011년 영광의 한 고교 학생은 자동차 제조업체 현장실습 중 뇌사상태에 빠졌으며 이듬해인 2012년에는 순천의 한 고교 학생이 울산지역 현장실습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7년에는 여수와 전주로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2명이 각각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같은 해 제주에서는 생수 공장에서 홀로 일하던 학생이 압착기를 점검하다 몸이 끼이는 사고로 숨졌습니다.

2017년 제주 현장실습생 사고를 계기로 현장실습 규정이 강화됐지만 교육 당국은 2019년 슬그머니 제도를 완화해 화를 자초했습니다.

안전 수칙 준수 등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선도기업' 중심의 현장실습을 진행하다 학교에서 서류만으로 평가해 선정하는 '참여기업'으로 제도를 완화한 겁니다.

일선 교육청은 뒤늦게 현장 실습 실태를 조사하고 노동·인권 교육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컷뉴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석준 부산시 교육감과 대구, 광주, 울산, 제주,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시도교육청 교육감 등이 여수 요트업체 현장실습중 사망한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김석준 부산시 교육감과 대구, 광주, 울산, 제주, 전북, 전남, 경북, 경남 시도교육청 교육감 등이 여수 요트업체 현장실습중 사망한 고 홍정운 군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정감사서도 교육·노동 당국 향한 질타 이어져

홍군 사망사건은 국정감사장에서도 집중 논의되고 있습니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지난 12일 진행한 전남도교육청 등 9개 시·도교육청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은 "교육계와 산업계의 진심 어린 반성과 협력적 대안이 필요하다"며 "노동관계 법령 등 법령 위반만 최소 5개에 달한다"고 연이어 질타했습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현장실습 운영회의록과 현장실습 프로그램 구성, 운영계획서 등을 제시하며 홍군의 업무가 적절했는지, 업체자격 여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었는지 등을 장석웅 전남도교육감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장 교육감은 "재발 방지책을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습니다.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홍군 사망사건과 관련해 고용노동부에, 산안법 위반 여부를 물었지만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업체가 근로자 5인 미만 업체이고 산안법 위반 사항이 있다는 보고를 받지 못해 잘 알지 못한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해 비난을 샀습니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현장실습생 사고는 갑질로 인한 피해도 있기 때문에 노동부가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노컷뉴스

홍정운군이 여수시 웅천동 친수공원 요트정박장 해상에서 여수해경이 납벨트를 인양하고 있다. 여수해경 제공


홍정운군이 여수시 웅천동 친수공원 요트정박장 해상에서 여수해경이 납벨트를 인양하고 있다. 여수해경 제공

예견된 인재 왜 못 막나…근본 대책 절실

홍군 사망사건의 진상규명과 함께 근본적인 대책 마련 요구도 거셉니다.

사건을 수사중인 여수해양경찰서는 지난 12일 해당 요트업체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사고 당일 홍군은 업체 대표의 지를 받고 요트에 붙은 따개비를 제거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경은 요트 업체 대표를 상대로 홍군의 구체적인 업무범위와 작업 투입 적정성 여부, 작업 중 안전규칙 위반 등을 전반적으로 조사할 방침입니다.

또한 해경 수사와 별개로 노동 당국도 요트 업체 대표의 산업안전 보건법 위반 여부 등을 비롯해 자세한 사고경위를 파악 중입니다.

2017년 현장실습생 사망 사고를 겪은 제주에서는 4년 후 여수에서 재발한 이번 사고를 안타깝게 보고 있습니다.

'노동안전과 현장실습 정상화를 위한 제주네트워크'는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2017년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를 계기로 교육부는 파견형 현장실습을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바꿔 시행하고 있다"며 "현장실습 교육 프로그램을 기업현장 교사의 지도하에 운영하며 해당 업체의 안전관리를 사전에 점검한다는 것이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주요 골자"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어 "선도기업은 안전관리 점검을 위한 노무사 동행이 필수지만, 참여기업의 경우 학교 선택사항일 뿐"이라며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곳 역시 참여기업으로 5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인데다 안전관리가 허술한 상황에서 예견된 죽음에 내몰린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되풀이되는 안타까운 사고에도 불구, 이름만 바뀔 뿐 안전은 뒷전인 대책만 쏟아졌던 현장실습 대책.

홍군의 죽음이 촛불이 돼 다른 친구들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노컷뉴스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전체 댓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