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가 거래액 측면에서 덩치는 커졌지만 내실은 허약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보호, 사기 사건 연루 등 각종 악재도 잇따른다. 이런 추문이 이어지면 결국 소비자 신뢰도 무너져 사업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국내용’이라는 오명도 벗어야 한다.
▶무분별한 상장…‘모럴 해저드’ 어쩌나
▷사기 코인 감별 못해 사실상 공범 취급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에는 평균 100개가 넘는 암호화폐가 상장돼 있다. 거래소는 저마다 자체 상장 심사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스캠’에 따른 투자자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매경DB> |
▶무분별한 상장…‘모럴 해저드’ 어쩌나
▷사기 코인 감별 못해 사실상 공범 취급
230개.
지난해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에 신규 상장된 코인 개수다. 2018년(116개)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상장폐지된 코인 역시 같은 기간 11개에서 97개로 급증했다.
사업 계획과 기술력을 검증받지 못한 이른바 ‘잡코인’ 상장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코인 사업자가 너도나도 거래소 문을 두드리고 거래소가 무분별하게 상장을 허용하면서 투자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코인 사업자들은 그럴듯한 사업 계획과 허위 공시로 투자자를 현혹, 코인 가치를 부풀린 뒤 보유한 코인을 팔아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일차 원인은 악의적으로 ‘스캠’을 양산하는 코인 사업자에 있다. 하지만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애초에 해당 코인이 제대로 된 사업인지 철저한 검증을 거친 후 상장했다면 피해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잡코인 상장에 따른 대표적인 투자자 피해 사례는 지난해 12월, 한 소형 거래소에 상장한 ‘얼랏코인’이다. 얼랏은 상장 이후 77일 연속 가격이 상승했지만 지난 3월 4일 하루 만에 98% 폭락했다. 상승세를 보고 투자한 이들은 하루 만에 대부분의 투자금을 잃었다. 증권 시장이었다면 당장 ‘이상 거래’로 지목돼 조사를 받을 만한 가격 움직임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그 어떤 처벌 근거나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일부 거래소는 거래량을 부풀리기 위해 무분별하게 상장 코인 수를 늘린다. 거래에 따른 수수료 수입을 둔다는 점을 감안하면 입장에서 단순 도덕적 해이를 넘어 ‘공범’에 가깝다”고 말했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장)는 “물론 가상자산 거래소마다 내부 상장 심사 기준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어떤 항목을 심사하는지 구체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전혀 없다. 코인 사업자와 거래소를 이어주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는 등 현재 가상자산 거래 시장은 무법 지대나 마찬가지다. 금융당국과 협의하에 구체적인 상장 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정확한 투자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내재 가치나 비전이 전혀 없는 코인이 많다. 하지만 투자자가 일일이 이를 찾아보고 검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래소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코인 사업자가 공개하는 백서나 허위 공시를 자체 검증할 만한 역량이나 의지가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해킹 예방·피해 구제 ‘숙제’
▷범죄 피해 책임, 투자자가 고스란히
잡코인 상장에 따른 투자자 손실이 전부가 아니다. 암호화폐 시세가 급증하면서 이를 노린 해킹·피싱 공격도 급증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3월부터 지난 5월 4일까지 암호화폐를 노린 정보통신망 침해형 범죄(해킹)는 114건이 발생했다. 개인 거래소 계정에 침입해 암호화폐를 임의 매도한 사건도 21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사칭해 가짜 사이트 접속을 유도하는 ‘피싱’ 범죄 역시 최근 3개월간 32건이나 일어났다. 2020년 전체 피싱 범죄가 41건인 점을 고려하면 완연한 증가세다.
문제는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어도 ‘책임’을 고스란히 투자자가 진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해서 별다른 규제가 없어서다. 해킹이나 무단출금 등 사건이 발생하면 이용자가 거래소의 고의·과실 등을 모두 증빙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가 해킹 여부·거래소 보안 수준까지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더불어 거래소 잘못으로 앱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입더라도 구제 방법이 모호하다. 가상자산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순식간에 주문이 몰리면 수시로 서버 장애나 오류가 발생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매매가 안 될 수 있다. 이때 각 거래소는 피해 보상 기준을 회사 고의나 과실이 입증된 때로 한정해 제한적으로 보상하고 있다. ‘서버 장애나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회사가 관리자 주의를 다했음을 입증할 때는 손해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어 도망갈 구석도 마련해뒀다.
증권사의 경우 HTS·MTS 장애 배상 시 명확한 근거를 마련, 소비자 보상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과 크게 비교된다.
그나마 업비트가 100억원을 투자해 ‘디지털자산 투자자 보호센터’를 설립, 가상화폐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센터에 신청하면 피해금 일부를 지원받고 법률 상담을 해주는 정도가 진일보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거래소를 제도권으로 받아들여 소비자 보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환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7년 이후 거래소 해킹과 시세 조종 등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 소관 부처·정책 방향·과세 방안·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 확립·피해자 보호 방안 등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글로벌 거래소까지 ‘구만리’
▷원화만 취급…실명 계좌 원칙에 발목
2018년만 해도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 시장을 이끌었던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2018년 1월 업비트·빗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거래량을 보유한 거래소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 금지’를 시사하면서 불과 3년 사이 주도권은 완전히 해외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한국 거래소들은 ‘국내용’으로 전락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거래소가 ‘글로벌 거래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법정 화폐를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현재 전 세계 1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가 취급하는 화폐는 달러, 유로화를 포함해 46종에 달한다. ‘후오비’는 50종, ‘크라켄’ 7종,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코인베이스 역시 3종의 화폐를 받는다.
하지만 국내 메이저 가상자산 거래소는 오직 ‘원화’만 취급한다. 해외 투자자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가 국내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아 투자에 나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로벌 거래소로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수호·나건웅·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0호 (2021.05.26~2021.06.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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