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도 방역도 인사도 다 잘 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이 느끼는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은 왜 현실에 맞지도 않고 국민이 분노할 얘기를 자꾸 하는 것일까. 문 대통령이 강성 친문 비서관·행정관들인 이른바 ‘십상시’에 둘러싸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제·방역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비서실에서 현실과 괴리되거나 성과를 부풀린 보고서를 작성해 문 대통령에게 올리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경제가 OECD 국가 중 가장 빨리 회복하고 있다”거나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발언이다.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국민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는 얘기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거듭해 이 말을 했다. 회견 전날 기준으로 코로나 백신 1차 접종자는 단 3명에 그쳤다. 그런데도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이어지고 9월에 1차 접종이 다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백신 확보가 시급한 상황인데 시종 낙관론만 폈다.
정부 부처와 청와대 비서실이 그렇게 상황을 보고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듣기 싫어할 얘기는 의도적으로 보고서에서 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안 그래도 본인이 보고 싶어하는 대로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보고서까지 거기에 맞추면 실제 상황이나 국민 정서와 상반되는 발언을 쏟아내게 되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박 전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보좌했던 측근 부대인 ‘십상시’ 비서진들이 있었듯이 문재인 청와대에도 강성 친문 성향의 비서관·행정관 그룹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강성 친문 그룹에 둘러싸여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 주변에선 “늘공(공무원) 출신 수석은 물론이고 친문 성향이 약한 어공(정치권) 출신 수석급들도 이들 친문에게 ‘조리돌림’ 당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비친문 성향의 일부 고위급들도 애초엔 다른 목소리를 냈다가 친문들의 공세에 밀리면 결국 ‘문 코드’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철희 정무수석도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벌써부터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수석은 임명 당시 “대통령에게 할 말은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당청 간 소통을 강화하고 대야관계도 원만하게 풀려고 했다. 이번에 임혜숙·박준영·노형욱 장관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이 수석은 여당과 야당 내 반대 기류를 반영해 한두 명은 사퇴하거나 지명 철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청와대 친문 그룹도 ‘세 후보자 모두 살리자’는 쪽으로 기울자 더 이상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도 당초에는 임·박 후보자의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당 전략팀에서 송영길 대표에게 이 같은 보고서를 올렸고, 이런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정반대 입장을 밝히자 스텝이 완전히 꼬여 버렸다. 여당과 청와대 일각에선 현실을 오도하거나 제대로 짚지 못하는 왜곡된 보고서들이 올라가는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 관계자는 “청와대 일각에서도 경고 사이렌을 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현 여당 지도부도 위기의식이 심각하다”면서 “하지만 정작 대통령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혹여 보고서가 잘못 되었더라도 문 대통령이 언론 보도를 보거나 외부의 평가를 듣고 현실 인식을 정확히 조정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안되는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언론 보도를 제대로 보지 않거나 유리한 보도만 선별적으로 접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다방면의 소통이나 여론 수렴을 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여당 관계자는 “아직도 문 대통령이 혼밥한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여당에선 청와대에 대한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문 대통령 기자회견 전날 당정청 회의가 열렸다. 민주당은 그 자리에서 장관 후보자들 거취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고 방향을 결정하려 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장관 거취 문제는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날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준비와 실무 작업에 대한 얘기가 주로 나왔다. 여당 측 인사들은 당정청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청와대 내부에서나 할 얘기를 하니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지 않는 송 대표와 여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 기류가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배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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