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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文은 이재명을 믿어야만 할까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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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 기관, 조직, 기업 등등에서 그곳의 최고 책임자가 되면, 즉 기관장(機關長)이 되면 두 가지 임무가 주어진다. 아니 두 가지 ‘운명’ 위에 올라타게 된다. 하나는 자신의 임기 동안 어떤 성과를 이룰 것인가,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떤 후임을 뽑을 것인가, 어떤 후임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직 대통령도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을 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임무가 수천 가지로 복잡에게 얽혀 있는 것 같지만,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자신의 임기 동안에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첫째이고, 그에 못지않은 다음 숙제는 어떤 후임 대통령에게 자리를 넘기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때로는 둘째 문제가 훨씬 커다란 운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아마 똑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80% 이상이 결정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경제 문제, 부동산 문제, 탈원전 문제, 남북문제, 그중에서도 북한 핵문제, 외교문제, 한미 동맹 문제, 한일 외교 정상화 문제, 코로나 대응 문제에 있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채점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비교적 점수를 후하게 주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아주 박하게 낙제점을 매기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어떤 국민들이든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앞으로 1년 크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대로 괜찮은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역사책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나라 발전에 크게 해악을 끼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냐 하는 평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고 할 때, 그에게 남은 운명은 어떤 후임 대통령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후임 대통령이 앞으로 수십 년 이상 남은 문재인 대통령의 여생(餘生)과 역사적 평가를 결정짓는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후임 대통령이 될 것인가. 그 과정에 현직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가. 이 때문에 잠이 안 올 것이다.

이와 관련 오늘 조선일보에는 아주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이 쓴 칼럼인데, 제목이 이렇다. " ‘이재명 차기(次期)’ 괜찮을까, 문(文)(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밤”. 요즘 신문 지면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국정 현안들, 예를 들어 공수처 출범, 검찰 개혁, 사법 개혁, 그리고 이번 주 가장 큰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 같은 쟁점 등도 그 본질적은 핵심은, 사실은 1년 뒤부터 차기 정권 하에서 살아가게 될 ‘문재인 전임 대통령’의 운명과 관련돼 있다고 봐야 한다.

방금 말씀 드린 칼럼의 한 대목은 이렇게 돼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차기 주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마다 전 정권 사냥이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아무 혐의점 없이 물러난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 입장은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울산 선거 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옵티머스·라임 사기 같은 정권 비위가 터져 나오는 것을 권력의 힘으로 틀어막고 있다. 임기가 끝나면 억눌렸던 마그마가 분출하게 마련이다. 문 대통령이 차기 주자에게 요구하는 필수 덕목은 퇴임 후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뢰다.”

올 7월에 새로 임명하게 될 차기 검찰총장을 문재인 정부 사람으로 앉히고, 그가 ‘검찰청 법’에 정해진 2년 임기를 보장 받는다고 해도, 그리고 이제 막 출범한 공수처를 맡아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사람이 앞으로 3년 동안, 그러니까 문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2년 동안 그에게 변치 않는 충성심을 지킨다고 해도,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범죄수사청이 탄생하고, 그 책임자 역시 문재인 사람이 임명되어 임기 3년을 또 보장받고 충성한다고 해도, 그렇게 된다고 해도, 내년 5월에 들어설 새로운 대통령이 ‘제2의 적폐청산’에 시동을 걸고, 앞선 정권을 사냥하기 시작하면 문 대통령의 운명도 매우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 정권의 핵심 비위라고 하는 울산 선거공작,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옵티머스·라임 사기사건 등의 불길이 어느 집 처마 밑에 옮겨 붙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지금의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여당 후보가 당선되어 이른바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결코 안심 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지금의 여권 후보가 차기 대권에 성공한다고 가정한다면, 다시 말해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임종석, 김경수,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가 여권에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그 차기 대통령은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때,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권력의 힘으로 틀어막아 놓았던 마그마가 분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과히 멀지 않은 역사에서 우리는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었는데, 바로 1990년대 민자당의 노태우·김영삼 정권 이양 모델이다.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형식상 두 사람은 같은 민자당이었고, 사실상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 연장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측근들은 YS에게 권력을 넘기면 “반드시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며 만류했었다. 하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YS, 사람 많이 달라졌다.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여러분 다 아시는 것처럼,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정권 3년 차였던 1995년 비자금 혐의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이 되는 전직 대통령이 됐으며, 12·12 군사반란 혐의까지 겹쳐지면서 17년 형을 선고받는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볼 때 노태우·김영삼 두 대통령 중에 누가 더 나라 발전에 기여했느냐, 하는 평가와는 전혀 별도로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그토록 믿었던” 같은 민자당의 후임인 YS 정권에 의해 죄수복을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30년 전 얘기에서 다시 지금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다. 현재 이재명 경기지사는 차기 대선 주자 중에 단연 앞서 있다. ‘3강(强) 구도’니, ‘2강 구도’니, 하는 말은 어색해졌다. 야당 후보는 물론, 같은 여당의 이낙연 민주당 대표마저 더블 스코어 차이로 따돌리며 압도적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재명 지사는 두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첫 번째 전략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점을 기정사실화 하는 전략이다. 한때 ‘이재명 탈당설’이 불거지자 절대 그럴 일 없다며 불을 끄고 있다. 이 지사는 “대통령 지지자들이 나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데 왜 당을 나가겠느냐”고 강조하고 있다. 자신과 친문 세력이 ‘한 몸’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전략이다. 최근 문 대통령이 코로나 위안금을 제안하자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 “기재부 사무관만도 못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망언이다” “상식 밖의 모독이다”라면서 문 대통령의 심기 옹호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 역시 친문 세력들의 거부감을 의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재명 지사의 두 번째 전략은 자신을 선두 주자 자리에서 제치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선다는 것이다. 가령 친문 진영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 같은 ‘확실한 내 편’이 대법원 판결까지 무사히 넘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다시 말해 강력한 ‘제3 후보’로 떠오르려면 절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보 선출 시기를 미루자는 ‘경선 연기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러자 이재명 지사 측은 원래 당헌당규를 지키라면서 경선 연기론 자들에게 “내전(內戰)을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선전포고라고도 할 수 있다.

자,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현 상황을 봐야 한다. 2022년5월 청와대를 떠난 뒤에는 “잊혀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지만, 본인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퇴임 후 안전’을 생각할 때 여러 방패막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할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 대통령이 물러난 1년 뒤인 2023년8월까지가 임기다. 새로운 임기 2년의 검찰총장, 임기 3년의 공수처장, 임기 3년의 중대범죄수사청장 등등에 ‘문재인 사람’이 임명되어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더군다나 차기 대통령이 누구로 바뀌든 더불어민주당은 ’180석 슈퍼 정당'으로서 국회를 지배하고 있을 테니 그 역시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그런 방향으로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 ‘문재인 보호막’인 줄 알았던 조직이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는 순간 2022년 여름부터 ‘제2차 적폐청산의 선봉대’가 될 지도 모른다. 정권의 속성이란 그런 것이다. 앞서 말씀 드린 ‘김창균 칼럼’의 결론 부분을 다시 인용하면 이렇다. “권력 비리를 캐려는 검찰을 찍어 누르는 ‘윤석열 문제’는 단순한 1차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미덥지 않은 차기 선두 주자 (이재명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김경수 후보로) 교체에 나설 것이냐 하는 ‘이재명 문제’는 통제 안 되는 변수들이 작동하는 고차 방정식이다. 문 대통령은 요즘 ‘이재명 차기 (대권 후보)’ 정말 괜찮을까를 고민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맞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특히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재명 문제는 “통제가 안 되는 변수”라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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