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고 말해 법정을 발칵 뒤집히게 한 동양대 조교 김모 씨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살펴봤다. /뉴시스 |
정경심 1심 쟁점…재판부 "아 다르고 어 달라도 내용 차이 없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 재판이 마무리된 지 2주를 바라보고 있다. 정 교수 재판은 수십 가지 혐의를 둘러싼 법리 공방도 치열했지만 검찰의 무리한 수사 논란도 한 축을 차지했다. 검찰 수사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밝힌 증인이 있었다.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고 말해 법정을 발칵 뒤집히게 한 동양대 조교 김모 씨였다. 법원은 이 조교의 폭로를 어떻게 판단했을까? 정 교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검찰 관계자의 '징계 발언'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지만, 이 때문에 김 씨가 겁먹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검찰, 참고인에 '징계 줘야겠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진술서를 쓰게 된 상황은 이렇다. 검찰은 강사휴게실 컴퓨터를 서울로 가져가겠다며 김 씨, 당시 동양대 행정지원처장 정모 씨에게 임의제출동의서를 작성해달라고 했다.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함께 서울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김 씨와 정 씨는 검찰이 건넨 임의제출 동의서 등 서류에 서명했다. 문제는 진술서를 작성할 때 발생했다. 김 씨가 컴퓨터를 보관하고 있었고 자발적으로 검찰에 임의제출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김 씨는 보관 경위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다른 내용을 진술서에 쓰도록 검찰이 요구했다고 기억했다.
김 씨는 법정을 떠나 유튜버 '빨간 아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관이 '얘 징계 줘야 되겠네. 관리자가 관리도 못 하고, 관리 미숙이다'라고 말해 겁을 먹었다는 내용을 추가로 폭로했다. 검찰이 확보한 강사휴게실 컴퓨터에서는 정 교수 혐의 중 자녀 입시비리 관련 증거 대부분이 나왔다. 김 씨가 수사관의 발언으로 겁먹고, 즉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컴퓨터를 제출했다면 이 모든 공소사실을 떠받치고 있는 증거 능력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재판부는 2019년 9월 검찰이 동양대 강사휴게실 컴퓨터를 임의제출 받을 당시 김 씨에게 '징계를 줘야겠다'고 말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 씨가 수사관으로부터 징계 발언을 들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겁먹었다'는 김 씨의 당시 심경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김OO의 제1, 2차 증언을 종합하면, 김OO가 2020. 3. 27 유튜버와 전화 인터뷰를 할 당시 진술한 것과 같이 2019. 9. 10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과 가벼운 언쟁을 했고, 그 과정에서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징계를 줘야겠다는 말을 들은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면, 김OO가 2020. 3. 27 유튜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 진술 중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징계와 관련된 말을 듣고 겁을 먹어 진술서를 작성하게 되었다는 부분은 믿기 어렵다. (정 교수 판결문 중)
김 씨가 법정을 떠나 유튜버와의 인터뷰에서 수사관이 '얘 징계 줘야 되겠네. 관리자가 관리도 못 하고, 관리 미숙이다'라고 말해 겁을 먹었다는 내용을 추가로 폭로한 건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유튜브 |
◆유튜브 폭로, 득보다 실이 많았다
법원은 검찰의 징계 발언은 인정하면서도 김 씨가 겁을 먹었다는 부분은 왜 믿지 않은 걸까? 재판부는 가장 첫 번째 이유로 '겁먹었다'는 진술이 법정이 아닌 유튜브에서 최초로 나온 것을 들었다. 재판부는 "증인이 법정에서 진술한 뒤 법정 밖에서 한 진술을 근거로 이미 이뤄진 법정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것은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하는 현행 형사소송법 원칙에 배치된다"며 "증인이 증언한 뒤 법정 밖에서 한 진술에 대해 원칙적으로 법정 진술에 비해 높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씨는 2020년 3월 증인신문 때 왜 '징계 발언을 듣고 겁먹었다'는 내용을 말하지 않았을까. 2020년 7월 2일 2차 증언에 나선 김 씨는 공판 검사들 때문에 겁을 먹었고 혹시 법정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경우 동양대에서 징계를 받거나 해고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차마 말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1차 증언에서 검찰 수사관과 진술서 기재 내용에 관해 실랑이한 사실을 자유롭게 진술한 점, 1차 증언 당시 법정에 있던 검사들로부터 위압감을 느낄 상황이 없었던 점에 비춰 김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했다. 동양대 해고와 징계 우려에 대해서도 "법정에서 솔직하게 증언한 사실이 징계, 해고 사유가 되기 어렵다"고 했다.
유튜브 폭로가 발목을 잡은 대목은 또 있었다. 김 씨는 유튜브 인터뷰에서 2019년 10월 1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석했을 때 검사로부터 '강압 수사를 느낀 적 있느냐'라는 질문사항에 대해 자필로 '네'라고 기재했다고 말했다. 당시 조서를 살펴본 재판부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가 유튜버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의 진술을 한 것은 서울중앙지검에서의 검찰 조사 분위기가 강압적이었다는 점을 부풀려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이 조서에는 '(컴퓨터) 제출을 강요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김 씨가 '강압적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고 답한 내용이 기재돼 있다. 재판부는 이 부분을 통해 김 씨에 대한 강압 수사가 없었다는 점을 더 확신했다.
◆'검찰 말대로 쓴' 진술서에 법원 "사실과 차이 없다"
법원은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썼다는 진술서도 문제점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 씨가 진술서에 기재하려고 생각했던 내용과 검찰 수사관 요구에 따라 진술서에 기재한 내용은 일부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 내용상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했다. 김 씨는 1차 증언에서 진술서를 놓고 "표현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말했는데 재판부는 '아', '어' 달라도 내용에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본 것이다.
"'아' 다르고 '어'다른 부분이 많았습니다. 전임자가 구두로 이야기해줬다고 진술했는데, '인수·인계받았다고 써라'해서 그렇게 썼습니다. 저는 (본체를) 그냥 휴게실에 뒀다고 말했는데, 검사님은 '그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적었습니다. (중략) 나중에 제가 거짓말한 게 되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럴 일 없다'고 하셨습니다." (2020. 3. 25 공판에서 김 씨의 증언)
김 씨의 1차 증언 당시 검찰은 "참고인들은 대부분 처음 수사를 받는 사람들이라 자신의 진술을 어떻게 써야 제대로 전달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내해드린 것"이라며 "증인이 하지도 않은 말을 진술서에 쓰게 하거나 그런 일은 절대 없다"라고 해명했다. 판결문에는 이런 해명에 관한 판단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검찰의 해명은 먹혀들었다.
재판 내용을 종합하면 김 씨는 진술서를 작성한 뒤 검찰 관계자들에게 다과를 내줬다. 김 씨는 2019년 10월 참고인 조사에서 "검사님과 수사관들이 제가 보기에도 너무 피곤해 보여서, 제가 직접 비타민과 포도당 캔디를 드리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진술했고 법정에서도 이 진술을 유지했다. 이 다과는 김 씨의 폭로가 받아들여지지 못한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됐다. 재판부가 김 씨의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진술서를 작성한 뒤 다과를 제공한 점을 들었기 때문이다.
ilraoh@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