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총리, 고이케 도쿄지사. /로이터 연합뉴스·AP 연합뉴스 |
올해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가 일본 총리보다 한발 빨랐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초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를 압박해 긴급 사태를 끌어낸 고이케는 2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게도 같은 요구를 하고 나섰다.
그는 수도권의 가나가와·사이타마·지바현 지사 3명과 함께 일본의 ‘코로나 사령탑’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상을 만나 긴급 사태 발령을 요구했다. 일본에서 코로나 환자가 매일 3000명 이상 발생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선 비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니시무라는 “(긴급 사태) 발령이 정부의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며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사회적·경제적 계엄을 의미하는 긴급 사태가 조만간 발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4월부터 한 달 넘게 이어진 긴급 사태 발령으로 대부분 기업이 재택근무에 들어갔으며 대형 백화점, 공연장이 휴업했다. 음식점도 저녁 8시 이후엔 사실상 영업을 하지 못했다.
고이케의 움직임은 지난해와 비슷하다. 당시 그는 4월 첫 주말에 도쿄의 누적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5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아베에게 “하루속히 긴급 사태를 선포하라”고 촉구했다. 아베는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소극적이었지만, 고이케의 회견이 국민의 여론을 집중시키자 다음 날인 6일 도쿄도를 비롯한 7곳에 긴급 사태를 선포했다. 이로써 고이케는 도쿄의 코로나 확산 책임을 중앙정부에 돌리고 7월 실시된 도지사 선거에서 무난히 재선될 수 있었다.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 고이케는 이번에도 코로나 확산에 불안해하는 여론을 놓치지 않았다. NHK의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긴급 사태를 지지하는 여론은 57%로 ‘필요없다(30%)’는 응답의 두 배에 육박했다.
형식상으로만 보면 고이케가 긴급 사태를 요청한 듯하지만 코로나 대응에 관한 주도권 다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이케가 스가 정권을 기습한 모양새다. 스가는 그동안 경기 부양을 중시해 긴급 사태 발령과 거리를 둬왔다. 지난해 관방장관으로 있으면서 긴급 사태가 경기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지를 지켜본 그는 경제 활성화와 방역을 병행하는 정책을 펴왔다. 실제 지난해 긴급 사태로 2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연율로 환산할 때 -28%라는 전후 최악의 실적이 나왔다.
고이케의 요구로 스가 총리는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확진자가 연일 증가하는 상황에서 긴급 사태 발령 요구를 거절했다가 상황이 더 악화하면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 가뜩이나 그는 코로나 대응 실패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이다. 반대로 긴급 사태를 다시 선언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이번 발표로 고이케는 도쿄의 확진자가 6만명이 넘는 책임을 중앙정부에 떠넘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계에서 스가와 고이케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가는 고이케가 2016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자 그를 “(퍼포먼스를 앞세운) 극장형 인간에게 도쿄 도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고이케가 2017년 ‘희망의 당’을 만들어 중의원 선거에 뛰어들자 아베 정권의 2인자로 관방장관을 맡고 있던 그는 고이케에 대한 경계감을 강화했다. 지난해 도쿄에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자 스가는 “이는 전적으로 도쿄 문제”라며 고이케를 몰아세웠고, 고이케는 아베 내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맞받아쳤다.
고이케의 갑작스러운 긴급 사태 발령 요구엔 이런 관계도 원인이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둘의 사이가 원만했다면 긴급 사태 요구 전에 먼저 협의를 했지 이런 식으로 공개 압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이 때문에 둘 사이가 앞으로 더 악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 제3파’가 닥친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환자가 8만6000여 명 발생했다. 3일까지 6일 연속으로 코로나 환자가 3000명을 넘겼다. 3일 현재 누적 확진자 24만5913명, 사망자 3634명을 기록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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