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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꿈 앗아간 화마…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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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아파트 화재 현장감식
현장 전기난로 발화지점 지목
주변에 가연성 우레탄폼 발견
유독가스에 인명피해 더 커진 듯
비상구 착각 주민 2명 가스 사망
추락사한 30대 겉옷선 약혼반지
유족 “업체 관리소홀 참사” 울분
세계일보

참담한 현장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 화재현장에서 2일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원인 파악 등을 위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군포=서상배 선임기자


“겉옷에서 약혼반지와 동전 3개만 나왔어요. 내년 2월 결혼할 아이인데….”

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백두한양9단지 아파트 화재현장에서 유족들은 하염없이 울음을 쏟아냈다. 전날 숨진 근로자 A(32)씨의 어머니와 가족은 찬 바닥에 주저앉아 넋이 나간 표정으로 12층을 멍하니 바라봤다. A씨의 고모부는 “두달 뒤에 결혼하는 조카가 수년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인테리어 공사를) 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늘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출근하곤 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장에서 함께 추락해 사망한 태국인 B(38)씨 등 외국인 근로자 4명에게 섀시 교체 관련 작업 내용을 전달하는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유족은 시공업체가 난로 사용에 대한 안내와 제대로 된 조처를 하지 않는 등 관리소홀로 참사가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이날 합동감식을 벌인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현장에 켜둔 전기난로를 발화지점으로 지목했다. 목숨을 건진 3명의 근로자 모두 아파트 거실에 켜둔 전기난로에서 처음 불이 붙었다고 증언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현장감식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공사 현장에는 모두 8명이 있었다”면서 “추락해 사망한 근로자 2명은 베란다에서 섀시작업 중이라 피할 수 없었으며 다른 근로자와 집주인 등 6명은 불이 난 직후 계단을 통해 아래로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화재현장에서 우레탄폼 15통과 스프레이건, 시너 통(1ℓ) 등을 발견했다. 시너 통은 섀시작업 중 생기는 오염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다. 한 소방관계자는 “발화성이 강한 우레탄폼이 난로 주변에 놓인 것으로 미뤄 섀시 공사를 위해 우레탄폼을 상온에서 데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1차 폭발 이후 잇달아 강력한 2차 폭발이 일어나 베란다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피할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난로 주변에 있던 가연성 물질들에 열기가 전해져 불이 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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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경기 군포시 산본동에 있는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검붉은 화염이 치솟고 있다. 군포=연합뉴스


화재 당시 13층과 15층 주민 3명은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지나 엘리베이터 기계실까지 갔다가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다. 숨진 C(35·여)씨는 여섯 살 아들을 태권도장에 보내고 혼자 있다가 변을 당했다. D(51·여)씨는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화를 입었으며 20대 아들도 유독가스를 흡입해 위중한 상태다. 소방 관계자는 “이들 주민은 엘리베이터 기계실 쪽 좁은 문이 비상구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연기에 질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서 수색작업을 했던 소방관들은 방화문이 정상 작동했고, 옥상 문이 열려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지어진 이 아파트는 옥상 자동개폐 장치가 설치됐다. 해당 아파트 경비원은 “옥상 문이 잠겨 있지만 불이 나면 센서가 감지해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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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아파트 주민들이 불이 난 화재 현장 앞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 플래카드를 내걸고 있다. 군포=오상도 기자


경찰은 비상등 작동 여부 등은 화재로 소실된 상태라 추후 수사를 통해 확인할 계획이다. 또 사망한 B씨를 포함해 해당 인테리어업체에서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4명이 모두 불법체류 상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업체 대표를 불러 조사 중이다.

전날 화재의 피해가 컸던 데는 우레탄폼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섀시작업에서 마감재로 사용하는 우레탄폼은 가격이 저렴하고 단열 효과가 뛰어난 반면 불이 쉽게 붙고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특징을 갖는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방당국은 해당 작업 현장에서 현관문이 열린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유독가스가 위층 계단으로 퍼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이날 공원에 마련돼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군포=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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