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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한 토막] 설거지와 설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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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어릴 적 학교에서 치른 첫 시험은 받아쓰기였다. 시험이 있는 날에는 아침부터 단어를 외우느라 부산을 떨었고, 시험 치기 직전에는 손바닥에 진땀이 배어 나올 정도로 긴장했다. 문법을 배우기도 전에 무조건 외워야 하는 단어라 더욱 그랬을까. 발음대로 쓰면 틀리기 일쑤였던 받아쓰기 시험은 어린 나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중 시험 때마다 매번 헷갈려 기억 속 깊이 자리잡은 단어가 있다. ‘설거지’다.

설겆이와 설거지 중 표준어를 고르라면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겠다. 1989년 개정된 한글맞춤법 규정에 따라 표준어로서 두 단어의 지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설겆이가 표준어였으나, 현재는 설거지가 표준어이다. 설겆이를 버리고 비표준어였던 설거지를 표준어로 인정한 이유는 뭘까.

단어 형성 과정을 살펴보면, 설겆이는 ‘먹고 난 뒤의 그릇을 씻어 정리하다’는 뜻인 ‘설겆다’의 어간 ‘설겆-’에 명사형 접미사 ‘이’가 결합한 형태이다. 설겆다가 기본형이므로 설겆으니, 설겆더니, 설겆어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설겆다’의 활용형이 언중 속에서 널리 쓰이지 못했다.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지 않으면 사어(死語)가 된다. 표준어규정은 사어가 된 단어를 고어(古語)로 처리하고 현재 널리 사용하고 있는 단어를 표준어로 쓰도록 하고 있다. 설겆다 역시 이에 해당하는 말로 고어가 돼 어간 ‘설겆-’은 단어 형성의 근거가 사라졌다. 설겆이가 표준어로서의 지위를 잃고 비표준어가 된 이유다. 대신 현재 널리 사용되는 ‘설거지’를 단일명사로서 인정해 표준어로 삼았다. 설거지를 하는 행위 역시 동사 ‘설거지하다’로 표준어에 함께 등재하고 있다.

‘설거지하다’와 바꿔 쓸 수 있는 우리말에 동사 ‘부시다’가 있다. “밥 먹고 나면 바로 그릇을 깨끗이 부셔라”와 같이 그릇 등을 씻어 깨끗하게 하다는 뜻이다. 간혹 ‘부수다’와 혼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활용형을 살피면 구분이 쉽다. ‘그릇 등을 깨뜨리다’는 뜻의 ‘부수다’는 부숴, 부수니, 부쉈다 등으로 활용한다. 반면 ‘부시다’는 부셔, 부시니, 부셨다 등으로 활용한다.

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kleinkind@

[이투데이/신미라 기자(kleinkind@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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