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단편소설 '두 정원 이야기'
10년 전 서울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처음으로 ‘타워팰리스’를 봤다. 당시 타워팰리스는 가장 비싼 주상복합빌딩의 대명사였다. 학원 근처 어딜 가든, 높이 솟아 있었다. 저렇게 높은 집에 살며 아래를 굽어보며 살면, 말 그대로 ‘세상이 다 내 발 아래’ 같은 기분일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건설사의 유명한 광고 카피는 괜히 나온게 아닐 게다.
2020년 릿터 8/9월호에 실린 김사과의 단편 ‘두 정원 이야기’는 '사는 곳'을 통해 '누구인지' 증명하고픈 그 오랜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예쁘고 애교 많은 딸 '정원'을 둔 김은영은 15년간 ‘피나는 절약의 가시밭길’을 걷고, 치열한 청약 전쟁을 뚫고 A아파트에 입주한다. 판자촌으로 가득했던 한강 남쪽의 산비탈 동네가, 재개발을 통해 세련된 거주지로 바뀐 곳이다. 단지 입구에서 들어서는 입주자들에게 '중산층 인정' 도장이라도 찍어줄 것만 같은, 그런 아파트다.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
10년 전 서울 대치동의 한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처음으로 ‘타워팰리스’를 봤다. 당시 타워팰리스는 가장 비싼 주상복합빌딩의 대명사였다. 학원 근처 어딜 가든, 높이 솟아 있었다. 저렇게 높은 집에 살며 아래를 굽어보며 살면, 말 그대로 ‘세상이 다 내 발 아래’ 같은 기분일까.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어느 건설사의 유명한 광고 카피는 괜히 나온게 아닐 게다.
2020년 릿터 8/9월호에 실린 김사과의 단편 ‘두 정원 이야기’는 '사는 곳'을 통해 '누구인지' 증명하고픈 그 오랜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 예쁘고 애교 많은 딸 '정원'을 둔 김은영은 15년간 ‘피나는 절약의 가시밭길’을 걷고, 치열한 청약 전쟁을 뚫고 A아파트에 입주한다. 판자촌으로 가득했던 한강 남쪽의 산비탈 동네가, 재개발을 통해 세련된 거주지로 바뀐 곳이다. 단지 입구에서 들어서는 입주자들에게 '중산층 인정' 도장이라도 찍어줄 것만 같은, 그런 아파트다.
김사과 작가. 민음사 제공 |
중산층에 걸맞는, 그런 삶의 태도와 조건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김은영 앞에 골칫거리가 나타난다. 자신과 동갑에다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나이에 결혼하고 같은 해 같은 달에 ‘정원’이라는 이름의 아들까지 낳은, 이름마저 ‘윤은영’인 여자가 A아파트로 이사온 것이다. "세련된 동시에 자연친화적이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시에 인생을 즐기는" 윤은영은, 김은영이 그간 분투한 모든 것을 한순간 '안간힘'쯤으로 보이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김은영과 윤은영의 삶은 놀라울 만치 달랐다. 김은영이 절약의 화신이라면, 윤은영은 소비의 화신이었다(…) 김은영이 틈틈이 알바까지 해 가며 남편 월급의 80퍼센트를 모으는 동안, 윤은영은 매달 남편의 월급날 직전까지 한 푼도 남김없이 써 버렸다." 윤은영은 ‘넉넉한 식탁과 엄마의 새로운 스타일, 떠들썩한 모임과 추억으로 가득한 여행’을, 그리고 '가족 간의 돈독한 우애'까지 선보인다.
이쯤이면 김은영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과연 언제쯤 윤은영의 진실이 폭로될 것인지”다. 윤은영에게, 분명히 알려지지 않은 그 무언가가 있으리라 확신한다.
똑같으면서도 상반된 두 여자의 삶은 중산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설정된 이 장치가 못내 씁쓸한 건, 이 이야기가 그저 소설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무슨 동 무슨 아파트'는 이미 우리 사회 신분 지표다.
돈은 김은영만큼 안될 지 몰라도 절약정신만큼은 김은영처럼, 나 또한 지난 10년간 치열하게 노력해 월세에서 전세로 옮겼다. 뿌듯한 마음도 잠시, 그러고보니 지금 나의 계급은 '서울 변두리 실평수 8평 빌라 전세 거주자'다.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봤다. 요즘 한 물 갔다고들 하지만, 그 10년 사이 타워팰리스는 6억원이 올랐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