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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칼럼]윤진숙, 당신은 나의 스승입니다

경향신문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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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내 주변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 못생긴 외모와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던 말주변 때문이었는데 그 당시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래서 늘 여자들 틈에 둘러싸여 다니던 친구는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유머에 뜻을 두고 수십년을 정진하게 된 것도 그때 겪었던 외로움이 너무 컸던 까닭이었다.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우는 대신 혼자서 유머를 연마했기에 수련시간에 비하면 유머가 별로 대단치 않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씩은 주변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유머수련을 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그 첫 번째는 “자신은 절대 웃지 마라”다. 자기가 웃겨놓고 자기가 더 크게 웃는 사람은 진수성찬을 차려 사람들을 초대한 후 자기가 다 먹어버리는 사람과 같다.

윤진숙 해수부장관 후보자.


두 번째, ‘무식을 가장한 유머는 구시대적이다’. 영구의 시대는 갔다. 요즘 개콘에서 뜨는 박영진을 보시라. 깨알같은 말로 핵심을 찔러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가. 공부하는 자만이 고차원적이 웃음을 줄 수 있다.

셋째, ‘오버하지 말자’. 너무 웃기려는 티가 역력하면 사람들이 웃기보다는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 오버보단 다소곳한 유머가 제일이다.

장관에 임명되는 사람들의 언행은 뜻밖의 웃음을 준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웃긴다는 그 의외성이 웃음의 포인트.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대박 웃음 중 하나는 1999년 자민련 몫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이 된 정상천의 말이다. 그는 아무리 봐도 전문성이 없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평소 생선반찬을 좋아한다.”


비웃는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모든 사람이 이 정도의 유머감각만 갖춘다면 사회가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수부장관이 생선반찬을 좋아하니까 전문성이 있다니, 얼마나 기발한가.



두 번째로 기억나는 장관은 땅투기 의혹이 일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라고 했던 환경부 박은경 내정자였다. 환경부장관--> 땅투기--> 땅사랑, 정말 어떻게 이런 멋진 유머를 할 수 있는지 부러움마저 일었다.

하지만 이 두 명 모두 이번에 해수부 장관에 임명될 것이 유력시되는 윤진숙 내정자에 비하면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오죽하면 그의 청문회 동영상이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다고 하겠는가.


윤진숙으로 인해 난 평생 지키고자 했던 저 원칙들이 하나도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됐다.



1) 자신은 웃지 마라

김춘진 의원(민): 우리 어업 GDP 비율은 아세요?


윤진숙 내정자: GDP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하태경 의원(새): 해양수도가 되기 위한 비전이 뭡니까?

윤진숙 내정자: 해양~ 크크크



윤 내정자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 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웃음은 연쇄효과가 있는 지라 한 명이 웃으면 괜히 따라서 웃게 되니. 자기 유머에 자기가 웃는 것도 때에 따라선 필요한 법이다. 유머 프로그램에서 잘 웃는 여성들을 방청객으로 쓰는 것도 이런 이유. 앞으로는 허벅지를 꼬집는 대신 내키는대로 웃을 생각이다.



2) 무식을 가장하지 말라.

경대수 의원(새): 지금 수산업의 중점 추진분야는 뭔가요?

윤진숙 내정자: 지금 답변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김춘진 의원(민): 수산은 전혀 모르나요?

윤진숙 내정자: 전혀 모르는 건 아니고요

김춘진 의원(민): 큰일 났네.

하태경 의원(새): 부산항 개발 예산은 어느 정도로?

윤진숙 내정자: 부산 북항 재개발인가, 공부 해놓고 잊어버렸네요

홍문표 의원(새): 지금 항만 권역이 몇 개죠?

윤진숙 내정자: 항만 권역이요? 권역까지는 잘..

홍문표 의원(새): 전부 모르면 어떻게 하려고 여기 오셨어요?

김재원 의원(새): 서면질문을 했는데 답변서는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쓰시지는 못했죠?

윤진숙 내정자: 네

김재원 의원(새): 읽어보긴 다 읽어봤나요?

윤진숙 내정자: 다는 못 읽어보고. 어떤 거는 읽어보고 못 읽어본 거도 있습니다.

김재원 의원(새): 못 읽어보면 어떻게 하나요.



이 대화록에서 보듯 윤진숙은 두 번째 원칙마저 가뿐히 제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보면 굉장히 웃긴다. 그간 윤진숙이 쌓은 경력이 허당이 아니라면. 윤진숙은 일부러 웃기려고 무식을 가장한 것. 새삼 깨닫는다. 시대가 더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할수록. 바보 흉내를 내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3) 오버하지 말자

다소곳한 유머도 윤진숙에겐 필요없다. 그녀는 아예 웃기려고 작정한 듯 모든 답변에서 오버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웃긴다. 그녀를 어찌 유머의 신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윤진숙에게 모래 속의 진주라고 한 대통령의 혜안이 정말이지 돋보인다.

여기에 더해 윤진숙은 다른 이의 주무기를 활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청문회를 시작하기 전 윤진숙의 말, “떨리는 건 별로 없고요. 죄송합니다, 떨려야 한다고 해야 하는데. 제가 워낙 발표같은 걸 많이 했기 때문에….”

하지만 동영상이 대박을 치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말한다. “저로서는 경험해보지 못한…당황해서 충실한 답변을 못드려 송구….” 컬투가 자주 구사했던 ‘그때그때 달라요’가 아닌가. 그녀를 보고나니 수십년간의 수련은 말짱 헛것이었다. 윤진숙, 난 앞으로 그녀를 스승으로 모실 것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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