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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천만 원 주면 집 빼줄게요"…전세 찾아 삼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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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란(大亂)-크게 일어난 난리. 크게 어지러움. 오해할 여지 없이, 사전적 의미 그대로입니다. 7월 말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일어난 '전세 대란(大亂)' 말입니다. 매물은 씨가 말랐고, 값은 천정부지 치솟고 있습니다.

실례로 서울 주요 대단지 아파트 전세 매물 현황을 보면(10월 17일 기준), 송파구 잠실의 A 아파트는 전체 2,678세대 가운데 전세 매물이 고작 1건 있습니다. 7월 중순 100개가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석 달 새 99% 이상 급감한 것입니다.

강남구 대치동 B 아파트는 7월 중순 전세 매물이 200건에서 1건으로, 서초구 C 아파트와 동작구 D 아파트는 각각 40여 개, 30여 개에서 아예 0건으로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시장에서는 임대차법 개정 후 두 달여 만에 서울 아파트 전세물건이 80%가량 급감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런 희귀한 현상, 왜 일어났을까요?

● "전세 찾아 삼만리"

1. 핵심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세입자들이 기존 계약을 갱신해 살던 집에서 2년 더 살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세입자들 입장에선 주거안정이 보장되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뜯어보면, 현실은 세입자들이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못 나가는' 상황입니다. 앞서 전세 계약할 2년 전 당시보다 집값은 물론 전셋값도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세입자 상당수는 현재 집값·전셋값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2년 추가 거주 이외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전세 매물,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2. 3기 신도시 등 공급 확대 정책에 수년 뒤 청약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전세 매물이 줄어든 요인입니다. 입지요건이 좋고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이 공급되기에 전세로 살며 청약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머무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3. 높아진 세금 부담도 '전세 선호'를 부추깁니다.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 집을 갖고 있을 때 내야 하는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집을 팔 때 내야 할 양도세, 모두 올랐습니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게 압박하려고 도입한 정책이지만, 1주택자의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세 부담을 고려하면 주거비용 측면에서 오히려 전세가 나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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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 (사진=연합뉴스)


● 급감한 공급 + 늘어난 수요 = 치솟는 가격

이처럼 전세 공급은 크게 줄었는데, 반대로 전세를 찾는 수요는 부쩍 늘어났습니다. 가격,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대차법 개정 전 6억 5천만 원이던 강동구 E 아파트 107㎡형은 개정 뒤 9억 원으로, 성동구 F 아파트 84㎡형은 5억 3천만 원에서 7억 5천만 원으로, 송파구 잠실동 G 아파트 131㎡형은 5억 3천만 원에서 7억 5천만 원으로 전세값이 빠르고 또 급격히 뛰어올랐습니다.

지난주 아파트 전셋값은 서울이 68주 연속, 수도권은 62주 연속 올랐습니다.공급은 씨가 마르고 수요는 대거 늘어나는 상황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결과입니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며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이 약자를 야심 차게 잡고 있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세 찾아 삼만리'라는 외침이 그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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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하면 통한다?

주역에는 '궁즉통' 즉,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오늘 전세 시장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이런 사례에 쓰라고 나온 말은 아니겠지만요.) 절박해진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서 그동안 없었던 다양한 방식의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1. 월세를 별도로 주는 전세 세입자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전셋집을 비워줄 수는 없는 세입자가 있습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며 나가 달라고 할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2년 전 냈던 전세 보증금이 11억 원이었는데 지금 주변 시세는 15억 원입니다. 새로 전세를 구하려면 최소 4억 원이 더 필요합니다. 물론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 전세 매물을 구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선 전세 보증금을 5%만 올리는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주변 전세 시세와의 차액을 월세로 따로 보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주변 시세와의 차액 4억 원에 해당하는 월세(120만 원 X 24개월=2,880만 원)는 2년 뒤 11억 보증금에서 제하기로 집주인과 합의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이면계약도 당연히 구속력이 있어야 하기에 차용증까지 써주기로 했습니다.

2. 수천만 원 '월세 + 이사비' 요구하는 세입자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하고 집을 비워주겠다. 대신, 월세와 이사비를 따로 달라"라고 요구하는 세입자들도 생겼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세입자는 '월세 + 이사비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집주인에게 요구했습니다. 이 계약을 맡았던 공인중개사는 "세입자가 이사비를 달라고 해서 200만 원 주기로 집주인과 합의했다. 그런 상태에서 '전세 보증금 시세가 2억 원 정도 올랐으니 4년 치 이자 4천만 원을 달라'고 별도로 또 요구했다. 화가 난 집주인이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난 법대로 할 테니'라고 말해 다툼이 생긴 상태다"라고 전했습니다.

3. '같은 성(姓)' 세입자를 찾는 집주인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크게 오른 시세대로 전셋값을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집주인도 생겼습니다. 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청구권을 거부할 수 있는 '직계 가족'이 입주하는 것처럼 성(姓)이 같은 세입자를 찾는 것입니다. 공인중개사에게 집을 내놓으면서 자신과 같은 성(姓)의 세입자를 찾아달라고 하는 요구하는 사례도 생겼습니다. 부모님 혹은 자식이 들어왔다고 말해 기존 세입자를 속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4. 까다로워진 집주인

전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집주인도 나타났습니다. 가령 어린아이가 있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는 받지 않겠다거나,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코로나 방역비' 등의 명목으로 집을 보는 데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는 집주인도 생겼습니다.

5. 담보대출 많은 전셋집도 인기

유례없는 전세난에, 종전에는 인기가 없던 '담보대출이 많은' 전셋집도 매물로 나오는 순간 거래가 일찍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세금을 떼일 위험을 감수하고도 계약하는 세입자가 늘어난 것입니다.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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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사과…"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책"

이 같은 대란(大亂)에, 정책을 이끄는 부처 수장들도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4일 부동산 시장 점검 회의에서"신규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전세 가격 상승요인 등에 대해 관계 부처 간 면밀히 점검·논의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김현미 장관도 그제(16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일정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라며"부동산 시장 안정과 주거복지를 위해 정부가 노력해왔는데, 국민이 걱정하는 것이 많은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 상황이 잘 해결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 전문가 반응은 하나로 귀결했습니다. 현재 정책을 되돌리거나 적어도 완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창무 교수(한양대 도시·부동산 경제학 연구실)는 "시장에서 주거 이동과 거래의 연쇄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장 홍남기 부총리도 뼈저리게 느끼겠지만, 주거 소비와 이동이 억제되며 자연스러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졌다. 그러면 집은 없는데 값은 오르는 최악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책은 선의로 만들었겠지만, 충분한 시뮬레이션도 없이 급격하게 적용했다. 이런 극약처방은 영구적으로 지속할 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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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부동산(Triste immobilier)'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1930년대 브라질을 여행한 뒤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라는 기행문을 남겼습니다.그는 브라질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삶을 관찰한 뒤, 그들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관점이 얼마나 경박했는지 성찰했습니다. "식인 풍습 등은 시대착오적인 편견일 뿐이며 원주민의 진면모를 이해하는 데는 방해만 된다"라고 역설했습니다. 나아가 그들에 대한 피상적이고 왜곡된 정보는 서양인들의 자기만족적인 편견을 강화시킨다며, 원주민들에게 풍요로운 지혜가 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2020년 국토교통부를 출입하며 저는 이 '슬픈 열대'라는 책을 종종 떠올립니다. 당시의 서구인들이 브라질 원주인을 열등한, 그래서 자신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했듯이,현 정부와 여당도 시장을 그렇게 소위 '손을 봐야 할' 대상으로 보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시장을 '바꾸고, 뜯어고치고, 이끌어가야 할 문제투성이'로 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겨둬야 한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정부실패'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시장실패'이기도 합니다. '정부실패'와 '시장실패'의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가는 정부가 실력 있는 훌륭한 정부일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은 '정부실패가 아니냐?'라는 질문에 정책 도입의 '진정성'을 강조했습니다. 집을 경제적 관점이 아닌 주거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신의 노동에 기초하지 않은 부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며, 부모의 재력으로 자식의 출발점이 결정되지 않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백번 옳은 말이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국민도 그런 철학과 관점, 진정성을 높이 평가해 국회의원 180명이라는 선물도 안겨줬을 것입니다.

문제는 '방법론'입니다. 신념은 정의로운데, 그것을 구현해낼 정책이 정교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전문가의 우려에도, 설익은 정책은 충분한 검증 없이 거칠고 또 투박하게 시장에 적용됐습니다. 그렇다 보니, 약자를 위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중저가 집값 상승과 전세 매물 실종을 불러왔고, 오히려 약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공정한 시장을 만들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앞서 설명드린 편법과 꼼수가 판치는 곳을 만들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을 통해 나름 정교하게 움직이는 시장을 정교하지 못한 신념으로만 접근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오늘 우리는 적나라하게 보고 있습니다.만약, 레비-스트로스가 2020년 대한민국을 여행했다면, 슬픈 열대가 아닌 '슬픈 부동산(Triste immobilier)'이란 책이 나오지는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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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작용을 충분히 고민하고 대책을 세웠는가?"

집주인, 기존세입자, 그리고 새로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 모두 서로 불신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더 각박해졌습니다.국민은 묻습니다. '새로운 제도의 취지가 옳더라도, 그것이 야기할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그에 따른 정교한 대책을 세웠는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평론가이자 작가인 앙드레 모루아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친한 사람들의 솔직한 말을 고맙게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의 솔직한 말은 거만하게 들린다". 정책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이제는 경제부총리가 아닌 '서울 마포구 전세 난민' 홍남기 씨의 솔직한 말을 고맙게 받아들여 주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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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기자(vetm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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