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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물리적 두께는 57㎜?…마음의 장벽을 넘어 지성을 쌓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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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0×90×57㎜.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벽돌의 크기입니다. 건축용 자재인 벽돌이 엉뚱한데 이름 붙기도 합니다. ‘벽돌책’입니다.

흔히 벽돌만큼 두껍다고, 두툼한 물성을 자랑하는 책에 붙는 이름입니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집을 짓듯, 책이 품고 있는 내용으로 지성을 쌓아올린다고 의미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압도적인 두께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 어려운 책을 의미하는데요. 문자주의적 해석을 따르면, 책 두께가 57㎜는 넘어야 하겠죠. 그런데 이 정도면 국어사전이나 한자자전 수준입니다.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니 대략 500쪽 안팎을 ‘마음의 두께’로 잡는 듯 합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코로나19 재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달라는 방역 당국의 당부가 있었습니다. 닷새나 이어지는 연휴 동안 벽돌책을 한번 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해 경향신문 ‘책과삶’ 지면에 소개된 두꺼운 책들을 골라봤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우선 펼치면 올해 안에는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숙면에도 어느정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지음·안준범 옮김·이정우 해제

문학동네 | 1300쪽 | 3만8000원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두께는 65㎜로 벽돌책 정의에 물리적으로도 부합하는 책입니다. <21세기 자본>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논의를 촉발한 토마 피케티의 신작입니다. 책에선 21세기 전 세계가 당면한 한층 심화된 불평등의 근원을 무수한 정치·사회·경제적 역사 자료와 통계들을 통해 살펴보고, ‘더 정의로운 미래사회’를 향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독자들에게 기쁜 소식은 책에 수식이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경제학 책보다는 사회과학도서로 읽힙니다. 나쁜 소식은 한국어판의 경우 전작보다 500쪽이 늘어 1300쪽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피케티는 서론에서 “성급한 독자들은 곧바로 종장과 결론으로 넘어가고 싶어할 것”이라고 선수를 칩니다. 실제 앞에서 논의되는 요소들이 뒤에서 하나둘 조립되며 의미가 확장되긴 합니다만, 분량이 부담스럽다면 프랑스와 영미 사례를 중심으로 훑으며 결론에 도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아마존 전자책 단말기 ‘킨들’에서 독자들이 <21세기 자본>을 전체 800여쪽 중 평균 26쪽을 읽었다는 분석이 있다네요.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생각보다 잘 읽히니까 지레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경제학적 차원을 넘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요인을 중심으로 불평등 문제를 살펴봅니다. 책에선 한국의 ‘강남 좌파’를 떠올리게 하는 ‘브라만 좌파’와 보수적인 자산가를 의미하는 ‘상인 우파’라는 엘리트집단에 대한 분석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함께 고민하도록 합니다.

▶[책과 삶]한 발 더 나가 겨눈 ‘정치적 불평등’



소금 지방 산 열

사민 노스랏 지음·웬디 맥노튼 그림

제효영 옮김·한글 캘리그래피 황의정

세미콜론 | 470쪽 | 3만3000원


<소금 지방 산 열>은 보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미국의 요리사이사 강사, 저술가인 사민 노스랏이 요리의 원리를 아주 쉽게 설명합니다. 술술 읽다보면 지금까지 먹고 마셨던 음식이 달리 보이는데요. 요리에 원래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앎과 솜씨의 폭을 넓혀줄 것이고, 요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면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책입니다.

노스랏은 꾸준히 요리를 공부한 끝에 모든 요리에서 의사결정의 바탕이 되는 것은 ‘네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쓴맛을 최소화하고 단맛의 균형을 잡는 소금’, ‘풍미를 강화하고 질감을 형성하는 지방’, ‘음식의 균형을 잡는 산’, ‘다양한 풍미와 질감의 변형을 일으키는 열’입니다. 책은 1부에서 요리 원리를 배운 뒤 2부에서 레시피를 이용해 실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단순하게 레시피를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합니다.


노스랏의 격려와 함께 주방으로 가볼까요. “요리할 때마다 소금, 지방, 산, 열을 떠올리자. 지금 만드는 음식에 어떤 열원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생각하고, 요리를 해 나가면서 맛을 보고 소금과 지방, 산을 조절하자. 신중하게 판단하고 감각을 활용하자. 수백 번 만들어 본 음식을 만들 때도 이 네 가지를 떠올리고, 생전 처음 만드는 이국적인 음식도 이 네 가지를 토대로 방향을 잡으면 된다. 그러면 절대 실망스러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넷플릭스에 동명의 다큐멘터리도 있습니다.

▶[책과 삶]‘네 가지’를 알면 요리가 다르게 보인다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김명남 옮김

사이언스 북스 | 464쪽 | 2만2000원


1980년 출간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우주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코스모스>가 새롭게 돌아왔습니다. 첫 책 출판과 첫 다큐멘터리 방영 40년을 맞아 최신 과학의 성과를 반영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인데요. 1996년 칼 세이건이 세상을 떠난 뒤 <코스모스>의 후속작을 자처한 책들이 있었지만, 이번 책은 ‘정통’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세이건과 함께 저술 작업을 벌이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그의 부인 앤 드루얀이 썼기 때문입니다.

719쪽에 달하는 <코스모스>는 벽돌책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막상 읽기 시작하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데요. 2020년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역시 13장으로 구성됐습니다. ‘코스모스’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책의 묵직한 메시지도 여전하고, 우주의 경이와 신비 역시 가득합니다. ‘플랫랜더’에 대한 묘사 등 앞선 책과 이어지는 내용도 반갑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기운이 깔려있습니다. 수십년 전 기후위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오만한 인간에 대한 경고입니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에서 말했습니다. “수많은 결함, 한계,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위대한 일을 해낼 능력을 갖추고 있다. … 방랑하는 우리 종은 다음 세기말까지 얼마나 멀리 나아갈까? 다음 1000년 동안에는?” 앤 드루얀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 미래의 재앙을 경고하는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을 말합니다. “아직은 너무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것과는 다른 미래, 다른 가능한 세계가 있다. … 우리가 아직 이뤄낼 기회가 있는 그 미래로, 나와 함께 가자.”

▶[책과 삶]창백한 푸른 점의 미래, 우주의 커튼을 들추다



좁은 회랑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지음·장경덕 옮김

시공사 | 896쪽 | 3만6000원


국가는 개인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가. 반대로 자유는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을까. <좁은 회랑>은 국가와 사회 사이 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탐구하는 책입니다. 17세기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벗어나려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의 강력한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이 낫다는 건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를 누리려면 국가와 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이 강력한 국가에는 족쇄를 채워야 합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유명한 두 저자는 이 어려운 과제를 ‘좁은 회랑’이라는 개념으로 풀어갑니다. 독재국가가 불러오는 공포와 억압 그리고 국가의 부재로 나타나는 폭력과 무법 사이에 자유로 가는 좁은 회랑이 끼어있고, 바로 이 회랑에서 국가와 사회는 균형을 맞춰간다는 겁니다. 중국과 같은 ‘독재적 리바이어던’, 국가가 없는 ‘부재하는 리바이어던’, 미국과 영국처럼 균형을 잡아가는 ‘족쇄 찬 리바이어던’ 세 가지로 국가와 사회의 균형을 탐구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선 중국과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며 한국의 대응에 주목합니다. 시민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기관이 역량을 발휘한 모습이 회랑 안에서 이룬 적극적인 균형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진보는 국가 역량을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달려 있지만,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결집하지 않으면 진보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책과 삶]진정한 자유? 강력한 국가에 족쇄를 채워라


강철왕국 프로이센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박병화 옮김

마티 | 1056쪽 | 4만9000원


잘 쓴 역사서입니다. 묵직한 역사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다면 도전해 볼만합니다. 프로이센은 유럽 동북부와 중부에 있던 왕국으로, 독일제국의 중심을 이룬 국가인데요. 독일 근대사에선 비스마르크와 히틀러를 연결하고, 독일제국에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거쳐) 나치의 제3제국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언급되지만, 막상 프로이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제국의 핵심 국가이자 공화국의 핵심 주였으며, 한때 독일 인구의 62%, 면적의 65%를 차지한 거대한 땅이자 권력이었던 흔적은 오늘날 세계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과거의 유산과 기억을 중요시하는 유럽 역사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일인데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군 점령 당국은 프로이센을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내 주범으로 지목해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이 모두 지워지게 됐다고 하네요. 그 말인즉슨 프로이센이 남긴 유산과 역사적 의미가 엄청나다는 의미도 되겠죠.

저자는 프로이센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단어들인 경건주의, 고루하며 근대화의 훼방꾼인 융커 계급, 군국주의와 권위주의, 엄격하고 효율적인 행정 등을 피상적으로 정의하거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단어들에 얼마나 복잡한 역사적 의미와 다양한 형태들이 있었는지를 독자들에게 펼쳐 제시합니다. 역사를 읽는 재미와 층위를 느끼도록 하는 책입니다.

▶[책과 삶]베를린의 강철왕국 217년, 역사적 의미를 톺아볼 수 있는 ‘프로이센 통사’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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