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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 교도소장, 77세로 사망

파이낸셜뉴스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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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5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법정에 섰던 투올 슬렝 교도소장 카잉 구엑 에아브(가운데).로이터뉴스1

2008년 12월 5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법정에 섰던 투올 슬렝 교도소장 카잉 구엑 에아브(가운데).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 사건 당시 악명높은 ‘S-21’ 교도소에서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던 교도소장 카잉 구엑 에아브가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B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일명 ‘도이크’로 불렸던 그는 2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

캄보디아 급진 공산조직이었던 크메르 루즈는 1975년 4월 친미 우익정권을 몰아낸 뒤 1979년 베트남군의 침략으로 몰락할 때까지 170만명에 달하는 자국민을 학살했다. 중앙은행을 폭파할 정도로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추구했던 크메르 루즈는 부르주아와 지식인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수용과 무차별 학살을 벌였으며 안경을 끼거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조차 지식인으로 몰아 강제수용소에 수감했다. 크메르 루즈는 베트남 교포 학살에 분노한 공산 베트남군의 침략으로 1979년 수도에서 밀려날때까지 학살을 자행했고 해당 사건은 훗날 발견된 집단 매장지의 이름을 따 킬링필드라고 불렸다.

프놈펜에 위치한 S-21은 이러한 강제수용과 고문, 학살의 중심지였다. 현지에서 투올 슬렝으로 불렸던 S-21은 원래 학교였으나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비밀 교도소로 쓰였다. 에아브는 교도소장을 지내면서 고문과 집단 학살을 주도했고 교도소 운영 당시 수용된 1만4000명 가운데 확인된 생존자는 14명에 불과했다.

전직 교사였던 에아브는 2014년 유엔이 지원하는 캄보디아 국제전범재판소(ECCC)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자신의 범행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가족이 해를 입을까봐 두려워 학살극을 자행했다고 진술했다. 에아브는 2009년 법정에서는 "적어도 1만2380명의 생명을 앗아간 데 대해 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며칠 뒤 무죄판결과 석방을 요청해 여론의 공분을 샀다.

크메르 루즈는 베트남에 의해 국경 지역으로 쫓겨난 뒤에도 반군 활동을 계속했고 1999년에야 현 캄보디아 정부에 항복한 뒤 해산했다. 킬링필드에 책임이 있는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에아브를 포함해 ECCC에 기소된 전범 5명 중 현재 생존한 건 삼판 전 주석뿐이다.


크메르 루주 정권의 2인자였던 체아는 지난해 93세로 사망했다. 다른 피고인 2명도 재판 도중 숨졌다. 크메르 루즈 지도자로서 학살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폴 포트는 법정에 서 보지도 않은 채 1998년 세상을 떠났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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