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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스터디] "문모닝" 하던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되자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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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후보자 박지원의 말말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문재인 대통령은 한때 정치권에서 유명한 앙숙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3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정원장 후보자가 되면서 이제 문 대통령과 운명 공동체가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최대 국정 성과였던 남북 관계가 주춤하면서 정권이 위기를 맞은 상황이기에 국정원장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을 정계로 이끈 고(故)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치적 중 하나였던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문 대통령과 박 후보자의 손에 달리게 됐죠. 5년 전 당대표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인 두 사람이었지만, 박 후보자는 이제 문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가 돼야 합니다. 문 대통령과 박 후보자가 과거 앙금을 털어내고 둘 도 없는 정치적 케미스트리(화학적 결합)를 발휘할 수 있을지, 박 후보자의 과거 발언들을 살펴 보죠.

"문 의원, 한 번 세게 붙어 보자."

한국일보

2015년 2월 5일 새정치민주연합 2·8전당대회 당대표에 출마한 박지원(왼쪽부터)·이인영·문재인 후보가 국회 도서관에서 '을'을 위한 민생정당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을지로위원회 당대표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2014년 10월, 당시 박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준비하며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했던 말입니다. 이듬해 열릴 2ㆍ8 전당대회가 4개월이나 남았지만 '김대중 대 노무현'의 대결로 불릴 만큼, 전대 분위기는 이미 달아오른 상태였습니다. 당시 박 의원의 발언은 4개월 동안 당내 최대 계파였던 친문재인계와 비주류인 비문재인계의 사활을 건 혈투가 벌어질 것이란 걸 짐작케하는 예고편이었는데요.

전당대회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비방전은 거칠어졌습니다. 박 의원은 시종일관 '강한 리더십으로 2016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외쳤던 문 의원을 향해 "대표와 대선후보, 공천권까지 다 갖겠다는 오만과 독선"이라며 직격탄을 날렸죠.


"경선 룰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비열한 것이다. 친노의 횡포다."

한국일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오른쪽) 대표와 박지원 한반도평화안전보장특위원장이 2015년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서로를 향한 거침 없는 공세로 전당대회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습니다. 박 의원은 2015년 1월 15일 광주MBC에서 열린 초청 토론회에서 "문 의원은 당 생활도 일천하며 늘 좌고우면하는 성격이다. 위기의 당을 이끌어 갈 리더십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당을 위기로 몰고 갈 위험한 발상"이라고 날을 세웠죠.

두 사람의 말폭탄은 전당대회를 5일 앞둔 2015년 2월 3일 TV토론회에서 터졌습니다. 룰 변경 문제로 두 후보가 첨예한 공방을 벌였던 터라 상대를 향한 독설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박 의원은 문 의원을 향해 "문 후보는 (경선 룰을 유리하게 바꿔) 꼭 이렇게까지 해서 대표가 되려는 건지 답답하다. 만약 지난해 12월 29일에 통과된 경선안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비열한 것"이라며 힐난했습니다. 문 의원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상기된 얼굴로 "가장 저질의 토론이 되고 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죠.

문 의원의 승리로 끝났지만,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벽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당대회 5일 뒤인 2015년 2월 13일 문 대표는 당 원로를 초청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경쟁자였던 박 의원도 초대됐죠. 싸웠던 과거는 털어내고 함께 미래를 도모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문 대표와 박 의원의 만남은 '어색한 회동'으로 끝이 났습니다. 박 의원은 국무총리 인준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문 대표의 제안에 부정적으로 반응했고, 지명직 최고위원 결정 문제를 두고도 불만스러워 했죠.

"함께 하자는 문 대표의 제안은 분열을 막을 명분이 없었기에 탈당한다."

한국일보

2016년 당시 문재인(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린 성균관유도회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마주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당대회로 생긴 문 대표와 박 의원의 앙금은 회복불능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2016년 1월 20대 총선 공천을 두고 친문계와 비문계 간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비주류 간판이었던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비문계는 집단탈당을 감행했고, 박 의원도 탈당열차에 합류했습니다.

박 의원은 2016년 1월 민주당을 탈당해 3월 국민의당에 합류했습니다. 박 의원은 탈당하면서도 문 대표를 정조준했습니다. 그는 같은 해 1월 22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고 승리하기 위해 잠시 당을 떠난다. 문 대표는 저와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함께 하자는 문 대표 제안은 분열을 막을 명분이 없어 결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해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총선을 뛰었고, '호남심판론'을 이끌며 문 대표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2017년 대선에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함께 문 대통령에게 끊임 없는 견제구를 날렸죠. 박 의원은 그해 3월 페이스북에 "영혼이 맑았다는 평을 받던 문 후보가 이렇게 탐욕스럽게 변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비난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문모닝이었지만, 오늘 아침은 굿모닝이다. 문 대통령, 굿모닝."

한국일보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국민의당을 방문해 박지원 대표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2015년 5월부터 2017년 5월 대선까지 2년 내내 독설을 쏟아내던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달라집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당선 공식 일정 첫날 협치를 위해 여야 대표들을 찾았고.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던 박 의원도 만났죠. 정치 9단인 박 의원은 '문모닝'을 활용해 문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농담도 건냈습니다.

문모닝은 박 대표가 아침 최고위원회의 때마다 문 대통령을 비판했는데, 아침부터 문 대통령 비판을 시작한다고 생긴 조어입니다. 박 의원은 이에 "오늘 아침은 굿모닝으로 시작한다"며 "앞으로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을 위한 협치를 해 주시고 경제와 민생을 챙겨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박 의원의 농담에 "하여튼 오늘은 굿모닝이다. 감사하다"며 화기애해한 분위기를 만들었죠.

문 대통령을 향한 박 후보자의 애정공세는 2018년 4월부터 연이어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그는 같은해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저래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구나. 역시 나보다 낫다고 인정한다"며 높게 평가했습니다. 5월 3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문 대통령이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데 아주 잘 하고 성공했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역사와 대한민국, 문 대통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

한국일보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인 박지원 전 의원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열린 ' 6·15 남북정상회담 20주년 기념식 및 학술회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부터는 문 대통령의 참모 역할을 자처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7월 21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청와대 비서관들이 줄이어 사표를 내자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야당 복은 있는데 참모 복이 없다. 참모들이 보신처를 찾기만 한다"며 대신 쓴소리를 날렸죠. 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의 도발이 이어진 지난달 17일에는 "문 대통령이 북한에 특사 파견을 통보한 건 아주 잘한 일이지만, 김 부부장이 거절한 건 아주 잘못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감쌌습니다.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이날 페이스북에 마지막 글을 올렸습니다. 메시지는 문 대통령을 향한 '충성 결의'였습니다. 박 후보자는 이날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적었습니다.

박 후보자는 과거 '평양특사'를 자신의 꿈이라고 밝혀왔습니다. 국정원장이 되면 대북정책 실무작업을 총괄하는 일종의 평양특사 역할을 맡게 됩니다. 이를 예측했었는지 2011년부터 자주 "평양특사를 하고 싶다"고 발언해 왔습니다. 2017년 7월에는 "북한에선 아마 문 대통령의 가장 최측근, 5년 임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문 대통령의 음성'을 듣고 싶어할 것"이라며 "저 같은 사람이 옆에서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습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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